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난생처음 집을 떠났다. 모든 일을 끝마친 것처럼 기뻤고 드디어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고등학교 3학년 큰 형에서 신입생으로 다시 동생이 되었다. 입학식 날에는 신입생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동아리 홍보 행렬이 즐비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신입생들을 귀신같이 알아 체고 말을 걸며 동아리 홍보를 하는 형, 누나들이 놀라웠다. 특히나 늦둥이 동생을 보듯 애처로운 눈빛은 내가 신입생임을 증명해 주었다. 어른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순식간에 야생으로 뛰어든 나이만 성인일 뿐인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처음 한 달은 여러 가지 행사와 선배들의 부름으로 쉴 틈 없이 술을 마셔댔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늦은 밤까지 선배들과 함께였다.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귀동냥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얼굴 모르는 선배들의 시험 합격과 취업 소식을 듣기도 했다. 거대한 산처럼 든든하게만 느껴졌던 선배들도 고민이 많았고 나 역시 머지않아 겪게 될 일임을 알았다. 즐겁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던 시간이 어느덧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으로 변모해 갔다. 선배들 역시 용돈 받고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생활을 한다고 했다. 선배들끼리 돌아가면서 술값을 계산했고 신입생인 나에게는 계산을 맡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때 신입생 시절에 받은 만큼 후배들을 챙기라고 당부를 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것. 조금 더 해석하여 많이 베풀고 도와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서 지내온 10대를 탈피해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신입생들의 적응을 돕고 소속감과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선배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함께 있는 선배들도 도움을 받기만 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하니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미래를 그리며 한 걸음씩 내딛으면 될 것이었다. 모두가 그러했듯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만 나도 언젠가 이렇게 멋진 선배들처럼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배워야겠다고 느꼈다. 모든 무형의 역사와 전통, 정신이 이렇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학기 초의 행사를 마치고 4월이 되었다. 학교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고 따듯한 기운이 파고 드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얼마 후 신입생과 재학생들의 축구시합이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 과대표를 중심으로 선수들을 정하는데 생각보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운동신경도 좋고 축구를 좋아했는데 대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같은 생활을 할 때는 모두 비슷해 보여서 미처 몰랐다. 세상 밖으로 나오니 한 명 한 명이 달랐고 각자의 개성이 있었다. 모두가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들이었고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했다. 다행히 선수로 선발된 동기들은 우리 과의 큰 행사를 이끌어 간다는 명목 아래 절반의 강제와 절반의 의무감으로 참여했다.
시합 당일 선수들과 응원단 모두 운동장에 갔는데 양 측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달랐다. 신입생들은 얼굴에 불만이 드러나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반면에 선배들은 모두가 신이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행복 가득한 얼굴이었다. 어린아이가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순수함이 보였다. 땀을 흘리며 뛰어노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기에 나도 웃음을 짓고 긴장을 풀었다. 한편으로는 진지한 표정과 익숙한 자세로 공을 차는 선배들을 보고 누가 경계대상인지 금방 파악했다. 경계대상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우리와 실력이 비슷해 보여 자신감이 생겼다. 심판도 없고 휘슬도 없이 일단 경기를 시작했다. 부심도 없으니 오프사이드 반칙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심하게 넘어진 것이 아니면 당연하게도 경기는 중단되지 않았다.
대부분이 축구 경험이 없어서 웃지 못할 상황들이 많았다. 각자 포지션을 정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수없이 강조하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미드필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운동장 가운데는 텅 비었고 공격수와 수비수만 남았다.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날아오는 공에 맞는가 하면, 전력질주를 해본 적이 없으니 뛰다가 자기 다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헤딩을 해야 하는데 본인도 모르게 손으로 막는 상황도 벌어졌다. 어쩌다 눈을 질끈 감고 헤딩을 하면 공이 자기편 골대로 향했다. 이마가 아닌 정수리로 헤딩을 하고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진지하게 시작한 경기는 시간이 갈수록 진지함이 웃음의 핵심이 되었다. 진지함에서 이어지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반전을 만들어 몇 배의 웃음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응원을 하는 동기, 선배들도 이런 수준의 경기는 처음인지 당황하면서도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이미 승패는 의미가 없었다. 선배들이 실수하는 순간마다 후배들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웃음을 참았고, 같은 팀 동기가 실수를 할 때는 아픔도 잊은 채 웃으면서 서로를 놀렸다. 선배들 역시 배를 부여잡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나도 이기려는 승부욕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팀이든 골이 들어가면 응원하는 쪽에서 환호성이 들렸고, 네 편 내 편 할 것 없이 모두가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땀에 흠뻑 젖은 얼굴에 피어있는 웃음꽃은 아름답게 빛이 났다. 축구의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뛰는 것이 행복했다. 남은 학교생활도 지금처럼 자유롭고 행복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축구를 해본 기억이 없었다. 어쩌다 보니 결과는 신입생이 이겼지만 모두가 승자였다. 큰 행사 하나가 마무리된 것이었고, 선배들과 후배들은 사이가 더욱 가까워진 계기가 되었다. 이어진 뒤풀이에서도 축구 얘기는 빠지지 않았다. 축구에 진심인 선후배끼리 모여 체육대회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모두가 땀 흘리며 하나가 되는 스포츠의 매력을 다시 한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축구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운동장에서 뛰어야만 할 것처럼 몸이 반응한다. 대학교에서는 전보다 축구를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