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00년 전 미생 이야기

동인도회사와 현대 직장인의 교훈

by 바그다드Cafe

최초의 현대적 기업(주식회사) 중 하나는 세 척의 작은 배로 시작되었습니다.


1601년 2월, 런던 템스강 부두에서 '레드 드래곤', '헥터', '어센션'이라는 세 척의 배가 인도를 향해 출항했습니다. 동인도회사의 첫 원정대였죠.


당시 투자자들은 긴 투자 회수 기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인도까지 배를 보내면 6-8개월이 걸렸고, 왕복 항해와 교역 기간을 포함하면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수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 그때까지 살아있을까?"

한 투자자의 농담 섞인 걱정이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는 현대의 AI 기술 투자와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AI 공부하는 데 시간 투자해도 될까요? 이게 정말 우리 업계의 미래일까요?" 후배들의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수백 년 전 동인도회사 투자자들의 고민과 겹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화 앞에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동인도회사는 대세였고 시대의 큰 흐름이었습이다.

동인도회사의 현장 운영은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었습니다. '팩토리' 시스템이 그 핵심이었습니다. 각 교역지에 설립한 팩토리는 단순한 무역 거점을 넘어 정보 수집의 허브이자 인재 육성의 요람이었습니다. 런던의 본사는 큰 방향만 제시했을 뿐, 실제 운영에 관한 대부분의 결정은 현장의 책임자들에게 맡겼습니다. 이는 놀랍도록 현대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제가 2010년대 종합상사에 근무할 때 세계 곳곳에 해외지사가 있었는데,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런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이 대목이 제가 제목을 400년 전 미생 이야기라고 지은 이유입니다)

새로 입사한 직원들은 반드시 경험 많은 선배와 함께 일하며 실무를 배웠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업무 스킬만이 아니라, 현지의 문화와 관습, 비즈니스 관행까지 종합적으로 학습했습니다. 회사는 성과에 따른 추가 보상을 통해 혁신 의지를 북돋았습니다. 새로운 무역 루트를 개척하거나, 새로운 상품을 발굴하거나, 현지에서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졌죠.

당시 가장 성공한 직원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넘어 통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이들이었습니다. 단순히 무역 실무만 아는 것이 아니라, 현지의 정치・경제・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복잡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죠. 이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특정 업무를 잘하는 것을 넘어, AI와의 효과적인 협업 능력과 더불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통찰력과 판단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인도회사의 성공은 현지 파트너들과의 긴밀한 관계 구축에 기반했습니다. 현대의 맥락에서는 이것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 능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는 더더욱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험 관리 측면에서도 시사점이 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결코 한 지역이나 한 상품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시장과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죠. 마찬가지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자신의 역량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AI를 적극 활용하되, 그것을 보완하는 인간만의 강점도 함께 키워나가야 합니다.

결국 동인도회사의 황금기를 이끈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었습니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상품을 발굴하고, 새로운 무역 방식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기에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했습니다.

동인도회사의 긴 항해가 증기선의 등장으로 획기적으로 단축되었듯이, 우리의 전통적인 업무 방식도 AI로 인해 크게 변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백 년 전 최초의 현대적 기업 중 하나였던 동인도회사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합니다.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은 위협인 동시에 기회라고,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는 것이라고, 이것이 바로 동인도회사가 현대 직장인들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