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퇴사할 당신에게
일이 힘들 때, 사람에게 치일 때 상상합니다.
사직서를 출력해 인사팀 책상에 조용히 올려두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퇴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회사 메신저에 “로그아웃됨” 표시가 뜨고, 동료들이 웅성거리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회사문을 나서며 한 손엔 커피, 다른 손엔 자유를 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입니다. 현실은 퇴사가 감정이 아니라 체력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이 로망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퇴사까지 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퇴사는 감정의 끝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체력의 여유가 있을 때 실행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가 벅찬 상태에서는 퇴사도 '일'이 됩니다. 그만두는 순간부터는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하는' 새로운 일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낼 에너지가 없을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정체를 택합니다.
이직을 목표로 퇴사를 고민 중이라면, 그 역시 체력전입니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틈틈이 면접을 보고, 업무와 병행하며 ‘탈출 루트’를 꾸리는 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일종의 이중생활입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정상처럼 일하고, 밤에는 퇴사 준비생으로 또 다른 스케줄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중생활에는 에너지도 이중으로 필요합니다.
만약 이직이 아니라,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면? 그건 더 큰 체력을 요합니다. 당장 수입이 없는데도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하루하루를 ‘버틸’ 정신적, 경제적, 신체적 체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가족이 있다면, 퇴사는 혼자의 결단이 아니라 ‘가계 재정과 관계의 평온’을 함께 지켜야 하는 고도의 협상전입니다. 배우자와의 대화, 부모님의 질문, 주변의 시선까지… 퇴사는 때로 이직보다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합니다. 이건 말 그대로 ‘설득 체력’입니다.
20대엔 홧김에 퇴사해도 어떻게든 굴러갔습니다. 이직 시장도 열려 있고, ‘패기’라는 이름으로 도전도 많이 용인됐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40대의 퇴사는 다릅니다.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커리어 구조조정입니다. 직무와 직급, 연봉과 워라밸, 미래 생존 가능성까지 따져야 하는 수학 문제입니다.
이런 점프를 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무작정 뛰면 다칩니다. 그러니 뛰기 전, ‘점프력’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점프력의 본질은 결국 체력입니다.
퇴사를 고민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그 전환의 순간에서 제일 먼저 부딪히는 건 '계획의 부재'가 아니라 '에너지의 고갈'입니다. 지금 너무 지쳐 있어서, 당장 뭔가를 도전할 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회사를 나가야 한다고 조급해하기보다, 우선 지금의 나를 관리하는 게 먼저입니다. 조금 더 자고, 조금 덜 야근하고, 조금씩 나를 위한 계획을 쌓아나가면서도 다음을 위한 체력을 기르는 관리입니다. 오늘 하루에 에너지를 전부 써버리지 않고, 내일을 위해 아껴두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즉, 퇴사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준비는 ‘체력 관리’입니다.
언젠가 퇴사할 당신에게
언젠가는 퇴사할 겁니다. 내 의지로 나갈 수도 있고,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날이 언제든, 가장 후회 없이 떠나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내 몸과 마음을 조금씩 준비시켜야 합니다. 퇴사란 단어는 멋있어 보이지만, 실은 꽤 묵직한 과업입니다
언젠가 진짜로 사직서를 꺼내들 그날, 지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준비돼서 떠날 수 있도록 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 체력을 비축하는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