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차에 ‘정신 차리니 이미 아차산 정상을 지나쳤다’는 이야기를 이어가보려고 한다. 왜냐,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무함과 분노에 휩싸였던 그 날의 아차산 이야기를 즐기셨던 독자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러고보니 한동안 트위터에서 퍼졌던 심심한 사과 논란을 아시는가? 결코 한가하다거나 사과에 간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 부디 진심어린 필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심심한’을 써야만 했냐고 물으신다면 필자의 나이가 잘못했다는 점 또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이대로 등산을 마칠 수 없었던 나는 다시 또 다시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 용마산을 향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기에 이대로 내려가긴 아쉬웠던 것도 분명 있다. (필자의 준비성이 궁금하시다면 이전 회차 <등산 대 법원(클릭바로가기)>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오래 보아 예쁜 것이 있는 반면, 첫 눈에 사로잡혀 계속 보게 만드는 것도 있다. 나의 바로 직전 등산은 청계산 매봉이었는데, 높고 끝없는 계단에 지쳤던 기억난다. 실내 체육관이 아닌 밖으로 운동을 나오는 데는 편리함을 뛰어넘는 생동감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덜 지루하고 더 궁금한 그런 곳을 돌파하는 즐거움 말이다.
아차산-용마산은 계속 오르고 싶은 매력이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너는 다르구나’ 싶었다. 매력적이었다. 처음엔 커다란 돌들이 날 맞이하여 주었고 커다란 암석이 주는 광경에 눈이 번쩍 뜨였다. 보기와 다르게 오르기 어렵지도 않았다. 그리고 길의 모양새가 계속 변화하며 나를 유혹했다. 한 발만 더 디뎌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집착이 아니라 너를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사랑이다.
Love at the first sight(첫 눈에 반함)은 강렬하다.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니까. 그렇게 너를 탐험하다보면 때로 길을 잃기도 한다. 우린 총 두 번의 길을 잃었다. 처음엔 (아차산 정상을) 지나쳤고, 너를 따라가다보니 막다른 길에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너를 알아가면서 이런 저런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위험해 보이는 너, 새하얀 너, 그 속에 품은 청량한 초록빛의 너. 그 옛날 한양을 향해 산을 타고 넘던 나그네가 떠오르는 어쩐지 고독해 보이고 계속된 방황을 닮은 너. 아니, 내가 네 속에서 방황하면서 고독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1월과 2월 사이
2월에 Musepen 멤버들과 다시 찾은 용마산-아차산은 마치 이별 여행 같았다. 기가 막히게 우리의 만남을 거꾸로 되짚어가면서 익숙한 풍경을 바라봤다. 쌓였던 눈은 모두 녹아 있었다. 눈이 녹은 땅은 황갈색으로 짙어져 있었다. 처음 만남과는 달랐다.
Musepen 멤버들과는 용마산 정상에 가진 않았다. 다시 한 번 오르고 싶었는데, 조금 아쉽기도 했다. 정상에 잠시 앉아서 도란도란 귤을 까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엔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던 것도 잊은 적이 없다. 나는 기억하는 것이 많지 않은 편인데,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