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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리 Mar 16. 2024

[Musepen] 등산 대 법원

글. 강혜영 / 아차산 20240127

등산 대 법원


글. 강혜영(@thelovingway_)


내가 나를 돌아봐도 이번 등산은 준비가 완벽했다. 지난주 함께했던 동행의 추천으로 몇 가지 등산도구를 구비했다. 접이식 등산 스틱과 탄탄한 장갑, 얼어붙은 땅을 디딜 아이젠까지. 약속장소에 가면서 물도 사고 간단한 간식도 구비했다. 일찍 도착해서 따뜻한 라떼 한 잔으로 배도 채웠다. 여유가 있었다. 물론, 아직 능숙하지 않다. 접이식 등산 스틱을 접고 펼치는 데 약간 헤매고, 아이젠을 신는 것도 방향을 이리저리 뜯어봐야 했다. 그래도 준비성 만큼은 완벽하다는 것에 큰 자부심이 있었다. 

뮤즈펜 식구들과 일정이 맞지 않아서 아차산을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그래도 아차산에 가자는 것이었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대가 아니지만,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한 주 먼저 친한 친구와 아차산에 가게 되었다.


등산을 조금 해봤다는 내 나름의 자부심과 뮤즈펜 식구들에게 배운 것에 대한 가치가 오늘의 나를 준비하게 하고 부지런떨게 한 것이지 않았을까? 


‘나 등산 좀 아는 사람이야!’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자꾸만 표출했다. 그걸 본 나의 오랜 17년 지기 친구는 유치원에서 돌아와 엄마에게 자랑하듯이 준비한 도구를 이리저리 보여주는 나를 보며 아주 많이 우스워했다. 

그래, 웃어라. 

곧 넌 나의 준비성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아차산을 가보셨는가?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아차산을 지나쳐서 용마산으로 가고 있는 우리의 현 위치에 당황스러웠다. 


정상이 있긴했던가? 아차산 정상을 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두 계획형 J의 여정은 계획대로 뒤돌아 정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낸 아차산 정상은 말그대로 ‘아차’싶으면 지나치게 될 정도로 허무하리만치 평지 길목에 있었다. 나를 놀리는 건가? 완벽한 준비성에 대한 이러한 배신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일찍 끝나서 다행이었을 수도 있다. 영하 10도를 견디기엔 내 얼굴은 터질 듯했으니...

등산스틱의 유용함도 아이젠의 필요성도 지친 우릴 달래줄 달고 단 간식의 순간도 아직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우리의 등산이 끝나다니. 


아차산은 잘못이 없지만, 미필적 고의라는 죄목을 주장한다. 이대로 웃음거리로만 남기엔 오늘 아침 나의 노력이 억울하다. 


아차산에는 몇 가지 설화가 있다. 그 중 산을 짊어지고 가던 한 장사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가려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어깨 끈이 끊어져서 ‘아차’하면서 산이 놓이는 바람에 아차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렇게 허무하게 아차산이 끝나는 거라면, 나는 그 옛날 옛적 장사의 업무 상 과실에 대하여 소장을 접수하고자 하니 누구라도 그의 주소를 아는 이가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Q. 여기서 질문

이 사건에서 원고는 접니다. 제가 소를 제기할 대상(피고)은 누구일까요?


#아차산등산 #미필적고의 #정상같지않은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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