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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Aug 20. 2024

오늘은 엄마의 제삿날

어머니와 빠빠이 한지 7년이 되어 이제는 마음에 굳은살이 생겼어요.

  사람은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다. 100년 안에 그 일들이 실행된다. 그 와중에 자신을 닮은 자녀를 낳고 키운다. 사람도, 동식물도 자기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닮은 후손을 이 세상에 남기는 것이지 않을까! 그것을 위해서 어류도 곤충도 그 많은 알을 낳고, 사람은 자신의 몸이 부서져도 자식의 안위를 위하여 애쓰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나의 부모님도 자식 걱정에 한평생을 사시다가, 자신이 덥석 주으신 운명의 굴레 속에서 살다 가셨다. 오늘은 어머니의 기일이다. 기일. 망자가 세상과 이별한 날. 2017년 9월 7일 아침에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119 구급대원이 어머니의 핸드폰으로 전화하여 어머니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한 통의 전화가 내 삶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정말 사람의 삶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밤새 안녕하셨나요? 그 말이 딱 맞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내 마음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길을 잃은 미아처럼, 어미 닭을 잃은 병아리처럼.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듣던 그 말이 나에게 적용될 줄이야!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2년이 지나니, 둘째를 키운다고 정신없이 살았고. 또 2~3년이 지나니, 이제는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될 만큼 내 마음이 단단해졌다.


  제사. 죽은 이의 넋을 기리며 복을 비는 그 행사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죽은 조상을 섬기며 후손이 복을 누리는 유대적 사고는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현재 60대, 70대의 어르신들은 제사를 유지하신다. 그분들은 형제가 많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는 세대이다. 죽어서도 자식에게 제삿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 그 생각대로 살아오셨고, 현재도 형제들이 모여 부모님의 제사를 지낸다. 그때는 형제, 자매가 참 많았다.


  나의 세대와 그 밑의 세대는 상황이 좀 다르다. 어린 시절 제사를 보고, 제사를 지내면서 살기는 하였다. 하지만 형제수가 적다. 많으면 세 명, 아니면 두 명, 외동도 꽤 많다. 그러한 사람들이 부모를 여의고 과연 제사를 계속 지낼까? 아마 돌아가신 지 4~5년 정도는 제사를 지내다가 그 후에는 안 지낼 것 같다. 내가 그리하였으니.


  제사라는 행사를 떠올려보면 집안의 친척 식구들이 모여 어울리고, 맛있는 것 먹는 기쁨이 크지 않을까. 부모가 돌아가신 직후나 이듬해에는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서 제사를 지낸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 부모의 부재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무덤덤해지면 제사는 하나의 행사가 된다. 특히나 예전처럼 마을에 모여 살면서, 못 먹고살 때는 제사가 큰 이벤트이다. 그날은 배불리 먹는 날이기에.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제사가 지속될 여지가 더 이상 없는 듯하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면서 재산 문제와 기타 등등의 문제로 형과 돌아섰다. 부모님의 공백 속에서 내 마음의 슬픔을 달래고자 제사를 지냈던 것 같다. 돌아가신 직후에는 절을 하면 흐르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나와 너무나 힘들었다. 형과 사이가 나빠지고 나 혼자 제사를 지내니, 그건 오래가지 못하였다. 제사 때 아무도 찾아올 손님이 없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여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변화가 생긴다. 이 제사는 그저 나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행사이구나! 사실 음식을 준비하며 고생하는 여보가 왜 그 수고를 해야 하는지? 나의 자녀들은 기억도 안 나는, 얼굴도 못 본 조상에 대하여 경의를 표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제사를 '나만의 슬픔, 나만의 의식'으로 바꾸었다. 제기를 다 처분하고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였다.


  부모님의 제삿날이 되면 '나만의 슬픔'을 즐긴다. 아이들 모두 재우고 배달음식을 하나 시키고 편의점에 술을 사러 간다. 부모님의 얼굴이 있는 액자를 테이블에 두고 잔을 두 개 준비한다. 소주를 두 잔 따라 드리고, 잠시 추모를 한 후에 내가 먹고 싶은 술과 안주를 먹는다. 그 와중에 나의 보석 같은 사람이 함께 해주면 좋다. 못 먹는 술이지만 함께 앉아, 예전 결혼 초반 보았던 나의 부모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면 고맙다.


  사람은 금수가 아니기에, 생과 사 속에서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마 금수도 말은 못 하지만 사람 못지않게 큰 고통을 겪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역사를 통해보면 전쟁 때문에, 큰 질병 때문에, 큰 사건이나 사고 때문에 우리는 가족을 잃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살아가다 보면 그 아픔은 시간이 약이 되어 무뎌지기도 한다.


  부모님이 다 안 계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7년이 지나니 이렇게 덤덤히 글을 쓸 수 있다. 부모님의 제삿날은 '나만의 슬픔'을 즐기는 날로 정해서 술 한 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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