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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Aug 10. 2024

신입 승무원과 중견 승무원

제주를 떠날 때 탄 대한항공의 승무원들을 보며 든 생각

  제주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다행히 카카오택시가 잡혀서 제주공항으로 이동한다. 제주에 와서 한 숙소에 오래 머물려 밥을 해 먹고 사 먹으며, 쉬엄쉬엄 노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어느 정도 여행이 재미있어지려고 하니 떠날 때가 되어 버렸다. 우리네 인생은 이렇게도 찰나의 기쁨을 즐기도록 설계되어 있는 듯하다.


  짐을 부치고 기념품 구경을 한다. 둘째 유치원에 가져가서 선생님과 친구들 함께 나눠 먹도록 고급 우유 비스킷을 산다. 첫째는 다 같이 먹자며 제주돼지 육포를 골랐다. 기념품 가게를 나와 옆을 보니 파리파게트에 줄이 상당히 길다. 무슨 줄인가 보러 가니, '제주 마음샌드'를 사는 줄이다. 우리도 뭔가에 홀린 듯 마음샌드를 하나 사고, 점심으로 각자 먹고 싶은 빵을 하나씩 골랐다. 간단히 빵을 먹고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일어섰다.


  제주에 올 때는 진에어, 집에 갈 때는 대한항공을 탔다. 대한항공이 조금 더 비용이 비쌌는데 서비스며, 비행기 성능이 더 좋은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남자 두 명이 앞에, 여자 두 명이 뒤에 해서 자리를 정해 앉았다. 이 비행기에는 승무원이 세 명 있었다. 두 명은 고경력자로 보이고, 한 명은 신입인 듯 보였다. 신입 승무원은 오늘 비행이, 처음 아니면 손에 꼽을 정도인 듯하다. 표정을 보니, 약간의 긴장과 즐김을 느낄 수 있다.


출처: 네이버포스트, m.post.naver.com

  신입 승무원은 의욕에 가득 차 있다. 우리를 안내하는 몸짓이나 표정에서도 밝음과 적극적임이 묻어난다. 안내를 하다가, 총총총 앞으로 달려가 구명조끼를 꺼내어 통로 앞에 선다. 안내 멘트에 따라 비상시 탈출구와 구명조끼 사용 요령을 직접 보여준다. 구명조끼가 잘 부풀지 않을 시, 후! 후! 입김을 불어라는 멘트에, 정말 불어서 부풀릴 것처럼 세게 입김을 불기도 한다. 대학으로 치면 새내기, 직장에 신입사원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자신이 지금 승무원이 되어 비행기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체가 즐거운 듯하다. 밝고 긍정적인 표정, 적극적인 자세가 내 눈에 계속 들어온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음료 한 잔 제공할 때도 신나서 서비스하는 모습이다. 함께 음료를 나르는 중견 승무원과 신입 승무원을 보며, '참 다르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입 승무원도 언젠가는 중견 승무원이 될 것이고, 중견 승무원도 예전에는 신입 승무원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서서히 경력이 쌓이고 신입의 티가 점점 사라졌을 것이다. 마치 꽃봉오리가 꽃을 피워 가장 화려한 한 때를 뽐내다가, 꽃은 시들어 떨어지고 열매가 맺어지는 자연의 섭리처럼.


출처: 네이버포스트, m.post.naver.com

  외국 비행기를 타보면 승무원의 나이가 꽤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 승무원은 젊고 예쁜 시절에만 하다가, 결혼 후 경력 단절로 그만두게 되나?'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우리나라 승무원은 다들 젊은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 비행기에도 연륜이 있는 승무원이 보인다. 그런데 그 연륜이 있는 승무원에 대한 '차별 혹은 은연중에 갖게 되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왠지 승무원은 젊고 늘씬한 여성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비행기를 타면서 승무원이 나에게 제공해 주는 서비스는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같을 것인데, 이왕이면 젊고 예쁜 승무원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정말 '속물' 같은 생각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나의 직장과도 연관 지어 생각을 해본다.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내 자녀의 담임이 누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학부모들은 할 것이다. 같은 초등교사이지만, 이왕이면 젊고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을 원할 것이다.


  신입 승무원의 얼굴과 우리 학교 신규 교사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신규 교사는 뭔가 어설프고 항상 바쁘다. 하지만 열정이 가득하고 싱그럽다. 아이들이 신규 교사가 자신의 담임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한다. 반 아이들이 담임 주변을 떠나지 않고 말 한마디 더 붙여 보려 애쓴다. 나의 신규 시절을 돌이켜봐도 그랬던 것 같다. 젊고 키 큰 남자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다들 좋아했던 것 같다. 학부모나 애들 모두 나를 보는 눈빛에서 호의가 느껴졌었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이제 나는 사십 대의 중견 교사가 되었다. 학부모나 아이들은 마치 중견 승무원을 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싫어하지는 않으나 엄청 호의적으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니 경력이 쌓이면서 호감도는 줄어들었다. 점점 더 나이를 먹으면 더욱더 호감도가 떨어질 것이다. 내 나이 오십 중반이나 육십 즈음되어 담임이 되면, 아마 학부모와 아이들은 '늙은 담임'이라고 싫어할 것 같다.


  중견 승무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젊은 승무원들이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알려 준다. 비행 중 위급 상황 발생 시, 수많은 경험이 있기에 적절하게 잘 대처한다. 진상 고객이 있을 시, 젊은 승무원보다 유연하게 대처한다. 승객들은 중견 승무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는 젊은 승무원은 중견 승무원이 함께 비행함에 안정감을 느낀다.


  중견 교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학부모나 아이들은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한 해동안 그 반을 맡아 담임 임무를 수행하며 무탈하게 지내도록 노력한다. 동학년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조화로운 분위기를 유도하고, 관리자와의 연결고리를 잘 형성한다. 신규 교사들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상담해 주고 들어주며 격려해 준다.


  어느 직장에서나 신입과 경력자는 존재할 것이다. 신입은 열정과 패기는 있지만, 노하우가 없다. 신입은 존재 그 자체로 싱그럽고 사랑스럽다. 경력자는 오랜 직장생활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 좋게 말하면 여유가 있고, 나쁘게 말하면 타성에 젖어 느슨해져 있다. 나는 이제 점점 경력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중견 승무원의 분위기가 나에게도 풍길 것이다.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어느새 나는 나이를 먹어 중견 교사가 되어 버렸다. 신규 교사는 나를 보면 아주 경력이 많은 교사로 생각하며 어렵게 대할 것이다. 내가 편하게 대하라고 해도 상대방은 편하게 대할 수가 없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저 나의 바람은 '믿음직한 선배교사'가 되고 싶다. '직장에서 저 선배와 함께 근무하면 듬직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신입 승무원이 중견 승무원과 함께 비행할 때 듬직한 마음이 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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