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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Aug 05. 2024

제주여행 중 가장으로서 가장 잘한 일

둘째가 안아 달라고 두 손을 들면 나는 그녀의 말이 된다.

  제주에 여행을 왔다. 우리나라에 '제주도'라는 멋진 섬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제주는 왠지 모를 설렘이 있다. 제주는 우리나라 같기도 하고, 외국 같기도 하다. 여권 없이 해외여행을 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사는 지역 공항에서 제주로 갈 수 있는 비행기가 있어서 그것도 참 다행이다. 이번 여름휴가는 제주에서 보내기로 했다.


  제주의 북동쪽에 있는 '평대 해변' 근처에 숙소를 하나 정하였다. 그곳에서 5박 5일 동안 머무르며 해수욕을 하고, 인근 관광지를 다닐 계획이다.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렌터카는 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1시간가량 차로 이동하는 것은 택시를 타고 갔다. 가끔 이동이 필요할 때는 택시를 불러 타고 다녔다. 카카오택시가 잘 잡히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우리의 콜을 받아들이는 택시가 있어서 이동이 가능하였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 오후 3시경 도착하였다. 우리의 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을 탐색한다. 평대해변은 가족단위로 물놀이를 즐기러 오는 작고 한산한 해변이다. 해변을 본 순간 애들은 물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내일 아침 일찍 밥 먹고 오래 놀자며 애들을 달랜다. 인근 편의점에서 물, 계란, 반찬거리, 음료, 과자 등을 사고 숙소로 돌아온다.


  해가 좀 떨어질 때 즈음, 우리는 평대에서 세화방향의 올레길을 걷는다. 시골의 좁은 길을 따라 걸으니 곤충 친구들이 우리를 반긴다. 방아깨비, 잠자리, 풍뎅이 등. 아까 샀던 비타 500을 한 모금씩 마시며 걷는다. 둘째는 비타 500을 먹기 위하여 더욱 힘을 내어 걷는다. 우리의 목적지는 세화에 있는 '구좌읍흑돼지 세화그때그집'이다. 제주도민들도 많이 찾는 맛집이라니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정하였다.


  맛집이라 그런지, 저녁밥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엄청 많다.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자리를 안내받았다. 고기를 맛있게 구워주니 좋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술을 맘 편히 마실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을 시켜, 소맥을 만들어 먹다가 소주를 마셨다. 놀러 와서 맛있는 음식을 술과 함께 먹으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배불러 식사를 하고 나와서, 숙소를 가기 위해 카카오택시를 부르니 택시가 안 잡힌다.


  배가 불러 조금 걸을 겸, 장을 볼 겸, 인근 하나로마트에 간다. 반찬거리, 과일, 고기 등을 산 후 카카오택시를 다시 불러본다. 역시나 택시가 안 잡힌다. 앗! 숙소까지 걸어가야 하나? 지도앱을 찍어보니, 21분 소요된다고 한다. 충분히 걸어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가는 길에 커플들이 인생샷을 찍으려는지, 도로에서 안고 난리다. 조금 더 걸어가니 한 커플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그들도 결혼하여 애를 낳으면 우리처럼 애들과 걸어가겠지. 긴 도로 위에 인생의 순간순간 세 점이 찍혀 있다.


  어느 정도 걸어가니 둘째가 힘들다며 나에게 안아달라고 손을 내민다. 늦은 시간이라 잠도 오고 피곤한가 보다. 나는 둘째를 번쩍 안고 빠른 속도로 걷는다. 아니 달린다는 표현이 맞는 듯. 얼른 숙소에 가서 애들을 재워야 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느낌이다. 알코올 부스터! 술기운에 둘째를 안고 순식간에 숙소로 왔다. 여보가 나에게 잘했다며, 오늘 둘째를 안고 숙소에 달려온 나의 공을 치하해 준다.


  우리 숙소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오름 중에 으뜸이라는, 오름의 여왕인 '다랑쉬오름'이 있다. 날이 더워 오르기 부담되기는 했으나,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한다. 택시를 호출하니 다행히 카카오택시가 잡힌다. 숙소 앞에 택시가 도착하고 우린 다랑쉬오름으로 이동한다.

택시기사님이 우리에게 말한다.

  "날이 이렇게 더운데 다랑쉬오름에 오르시려고요?"

  "예. 한 번 가보고 싶어서요."

  "하하. 애들이 고생이지요."


  다랑쉬오름 입구에 도착하여 해충기피제를 뿌리고 계단을 오른다. 오르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한 발, 한 발 내딛기는 수월하다. 하지만 날이 너무 더워, 잠시 걸었는데 땀이 비 오듯 난다. 조금 걷다가 물 먹기를 반복한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제주의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땀을 식히며 사탕도 먹고 당을 충전한다. 정상까지 가기 위해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간다.


  정상에 가기 전 오르막길이 나온다. 그 길을 조금 걷다가 둘째가 너무나 힘든지, 나에게 두 팔을 내민다. 나는 둘째를 안고 오르막길을 한 발, 한 발 오른다. 혼자 걸을 때는 더운 것 말고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둘째를 안고 걸으니 숨이 찬다. 나의 땀과 둘째의 땀이 함께 비 오듯 떨어진다. 점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둘째를 안고 있는 팔이 당겨온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드디어 오름의 제일 높은 지점에 도달한다. 둘째가 그녀의 전용 말에서 내린다.


  둘째를 내려놓고 주변 경치를 감상한다. 한라산 정상에 오른듯한 기분으로 오름의 움푹 파인 부분을 바라본다. 그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잠시 숨을 돌린다. 아이들도 뿌듯한 표정이다. 이렇게 또 우리 가족의 추억이 하나 쌓여간다. 오늘 우리는 다랑쉬오름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되었다.


  둘째가 두 팔을 내밀며 나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면 나는 그녀의 말이 된다. 집에서는 냅다 드러눕고 외친다.

   "안고 가!"

  그럼 나는 그녀를 안고 화장실이며, 소파로 이동한다. 가끔은 안고 땅바닥에 같이 드러누워 있는다. 그러면서 나는 말한다.

  "이제 안았으니까 좀 있다가 갈게."

  그렇게 잠시 둘이 안고 뒹굴뒹굴한다. 그런 후 살짝 기합을 넣고 일어나, 안고 화장실로 간다.


  제주 여행 중 내가 가장으로서 가장 잘한 일은 가장 힘든 순간에 둘째를 안고 걸어간 일이다. 둘째가 언제까지 나에게 안아달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그녀의 말이 된다. 그녀를 안고 갈 때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빠 덜 힘들게 딱 붙어."

  그녀는 두 팔로 내 목을 더욱 감싸 쥐며 나에게 촥 달라붙는다. 그 느낌이 참 좋다.


  오늘도 둘째는 드러눕고 나에게 말한다.

  "아빠, 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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