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어울려 살아간다. 교사들은 학생의 안전을 책임진다. 아이들은 활발하다. 그리고 어른에 비하여 주의를 많이 기울이지 않고 다닌다. 운동장에서 많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흡사 물리시간에 배운 분자운동이 떠오른다. 수많은 분자가 자유롭게 운동하며 제각각 움직인다. 그 와중에 안전사고의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학교에서 학생이 다치면 참 난감하다. 넘어져서 살짝 무릎이 까지는 정도는 괜찮지만, 크게 다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기둥에 부딪쳐서 앞니가 깨지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장난치다가 떨어져서 손가락 골절이 일어나기도 한다.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져서 꼬리뼈가 부서지기도 하고,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런 일을 학부모에게 연락하면 참 기분이 묘하다. 교사 입장에서는 내가 다치게 한 것도 아닌데, 꼭 내가 잘못 지도하여 다친 것처럼, 학부모에게 미안하고 죄인이 된 기분이다.
사고의 위험성은 살면서 언제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가정에서도 안전사고로 자녀가 다치기도 하고, 교통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유독 학교에서 학생이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학부모는 교사를 원망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교사는 항상 아이들에게 안전지도를 하고, 안 다치고 잘 생활하도록 아이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다친다. 다친 아이의 부모는 교사의 생활지도 및 대처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한다.
나의 교직생활 중 우리 반 아이가 다친 것 중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를 적어본다. 당시 2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급식소에 가서 식판에 밥을 받아와서 앉아 먹으려 하는데, 한 남학생이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 손에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밥을 먹다 말고 얼른 아이 손을 다량의 휴지로 닦고 감싼 후 보건실에 데려갔다. 엄마에게 연락하고,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서 인근 병원으로 가서 몇 바늘 꿰매었다.
출처: 블로그, 울산사무가구
그 남학생의 손이 급식실 테이블과 의자사이에 끼여서 큰 상처가 난 것이다. 급식소의 테이블 밑에는 의자가 붙어 있다. 회전하여 의자를 꺼내어 앉고, 일어서면 그 의자가 다시 회전하여 제자리로 돌아가는 장치로 붙어 있다. 저학년 아이라 손이 작아서 회전하는 틈에 손이 끼여서 다친 것이다. 정말 이렇게도 다칠 수가 있구나! 싶은 순간이다. 그 사건 후 아이들에게 급식소에서 밥 먹을 때 의자에 손이 끼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당부하고 지도하는 내가 되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짓궂은 한 학생이 장난으로 의자를 뺀 적이 있다. 한 남학생이 발표를 하기 위해 일어났다가 앉으려는 순간에 옆의 짝지가 장난으로 의자를 순식간에 뒤로 뺐다. 당연히 의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앉았던 그 남학생은 엉덩방아를 세게 찧으면서 그 자리에 누워서 괴로워하며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쪽으로 달려가보니 이차 손상이 예상되어, 내가 손대면 안 될 것 같아서 보건선생님께 연락하였다. 보건선생님이 급히 오시더니, 상황을 파악하고 119에 신고를 하였다. 119 구급대원은 정말 신속하게 도착하여 들 것을 가지고 와서 학생을 들 것에 눕혀서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의자를 뺀 장난을 친 짝지도 사색이 되어서 얼굴이 말이 아니다. 학교에 119 구급차가 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나는 학부모에게 어느 병원으로 후송되었는지 연락하였다. 그런 전화를 할 때 정말 내 입장이 난처하다. 평소에 '위험한 장난을 치지 마라, 의자 끄덕거리지 마라, 의자 빼는 장난은 하지 마라.'를 수십 번 반복해서 말했음에도 그런 장난을 치는 학생이 있고, 다치는 학생이 있다. 그러면 나는 생활지도를 못하여 아이를 다치게 한 부주의한 담임교사가 되는 것이다.
올해 나는 체육전담교사이다. 체육수업은 항상 사고의 위험성과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고 보면 된다. 체육시간에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며, 다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피구를 하다가 공에 맞아 안경이 날아가는 학생도 있고, 무리하게 공을 피하다가 발목이 접질리는 학생도 있다. 항상 아이들에게 '안전'과 '질서'를 강조하고,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라.', '다치는 것은 한순간이고, 나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잔소리를 매 번 한다. 그래도 다치는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두 학생이 일정 거리에서 출발하여 콘을 먼저 가지는 게임을 하면서, 서로 부딪힐 수 있으니 조심해서 몸을 움직이도록 당부한다. 조금은 위험해 보이지만, 그 스릴을 즐기면서 먼저 콘을 차지한 아이들은 승리의 쾌감을 느낀다. 그 활동 중 두 학생이 심하게 부딪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 학생이 발을 움켜쥐면서 너무나도 아파한다. 실내화와 양말을 벗고 발가락 상태를 보니, 엄지발톱이 들려서 피가 나고 있다. 아이는 정신없이 울고 있다. 보건선생님께 연락하니 휠체어를 가져와서 아이를 앉히고 보건실로 데려가신다. 속으로 나는 생각한다.
'괜히 이 활동을 했네. 그냥 다른 활동을 할걸......'
농구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손가락을 많이 삔다. 딱딱한 농구공을 주고받다가 손가락이 공에 부딪혀 꺾이면서 손가락이 붓기도 한다. 한 남자아이가 손가락이 아프다고 한다. 보건실에 다녀와서 앉아서 참관수업을 한다. 농구 수업을 하면 자주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다음날 그 반 담임선생님이 나를 찾아와 말씀하신다.
"어제 000 학생 체육수업 시간에 어떻게 손가락 다쳤어요?"
"손가락 삔 것 같아서 보건실 갔다 와서 앉아 쉬었어요."
"그 학생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손이 시커멓게 되어 병원에 가보니 골절이라고 하네요."
"아! 그래요? 많이 다쳤네요. 에구."
공교롭게도 손가락을 심하게 다친 것이다. 농구수업을 진행한 내가 그 학생에게 괜히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출처: 블로그, 교육부
학교에서 일어난 안전사고를 학부모에게 연락하면, 당연히 학부모 입장에서는 기분이 안 좋다. 자신의 소중한 자녀가 다쳤다는 소식에 어느 누가 평정심을 갖고 대화를 이어가겠는가? 하지만 그 소식을 전하는 담임의 마음도 한 번 즈음 생각해 주면 좋겠다. 담임이라고 마음이 좋겠는가?
학부모 중 경우가 있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한다.
"아이고, 선생님. 저희 애가 조심하지 않아 다쳤네요. 선생님도 많이 놀라셨지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의 뇌 구조와 다른 학부모들도 있다.
"선생님께서 좀 잘 보시지 그랬어요? 애들 생활지도를 어떻게 하신 건가요? 애가 다쳐서 참 속상하네요."
"많이 속상하시죠. 앞으로 안 다치게 지도를 잘하겠습니다."
사실 안 다치게 학생들에게 지도는 수십 번도 더 했다. 하지만 애가 다쳤다. '복도에서 뛰지 마라, 실내에서 레슬링 하지 마라.' 말해도 별난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엉겨 붙어서 뒹군다. 그러다가 다친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담임교사가 진다. 애들을 교실 의자에 하루 종일 앉혀 놓으면 안 다치고 무사히 하교할까? 애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생활하다가 다칠 수도 있다. 다친 것에 대한 책임을 교사에게 묻지 말고, 교사를 원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학생이 다치면 교사는 공교롭게도 죄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