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마력이 있다. 문자라는 매개체로 나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대화를 할 때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말로 전달하지만, 글로도 그것들을 남겨놓을 수 있다. 대화는 그 순간이 지나면 잊히고 기억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겨 놓은 글은 삭제하거나 파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적으로 남고, 여러 사람들이 그 글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한 글을 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글이 곧 글쓴이 자신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블로그를 할 때도 이 주제랑 비슷한 글을 한 번 적은 적이 있다. 블로그에 글을 계속 올리다 보니 거의 200개 정도의 글이 모였다. 그 글들은 주로 나의 일상, 나의 생각들을 적은 글들이었다. 200개 정도의 글이 모이니 그 글들 속에 나 자신이 보인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 나의 관심사 등이 고스란히 글들에 담겨 있었다. 흡사 나의 뇌를 스캔하여 블로그라는 인터넷 공간 속에 복사하여 둔 것처럼.
직장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 대화의 주제가 내가 블로그에 적었던 내용과 비슷함을 발견한다. 그 순간 나는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내가 적은 글의 링크를 복사하여 카톡으로 보내주면 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던 부산에 한 키즈카페를 누군가에게 알려줄 때, 내가 적었던 글을 보여주면 수월하게 설명이 가능하였다.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등에서 시리즈물을 밤새워 보는 것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에도 그것과 관련된 글을 보여주니 편리하였다.
여기 브런치에 글을 하나씩 적으면서 나의 뇌를 스캔하여 옮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며 겪었던 경험들, 삶의 주요 순간순간 에피소드들, 나의 직업인 초등교사에 대한 생각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에 드는 다양한 감정들이 여기 '후니홉' 브런치 공간에 글로 남겨져 있다. 아마 이곳에 있는 글을 모두 읽으면 '후니홉'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올라오는 글을 읽으면 '후니홉'이라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지만, 만났던 사람처럼 여겨질 것이다.
출처: 블로그, living & wellness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라는 책을 쓴 임승남 님을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그분이 어린 시절 전쟁고아가 되어 양아치처럼 살면서 교도소를 몇 번 드나들고, 교도소에서 글을 깨우치고 책을 보면서 삶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우연한 계기로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되고, 격변의 세월을 살아온 것도. 그분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그분이 쓴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임승남 씨를 만나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다.
홍신자 님의 '생의 마지막까지'라는 자서전적 에세이를 읽어도 그 분과 대화하는 기분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늦은 나이에 무용을 공부한 이야기, 자녀를 낳고 키우다가 버거워서 아이를 한국으로 보내야 했던 이야기, 한국에 돌아와서 귀촌하여 사는 이야기, 늦은 나이에 운명처럼 만난 독일인 남편 이야기 등. 그 책을 한 권 읽으면 홍신자라는 사람의 한평생을, 한 편의 영화 보듯 알 수 있게 된다. 그분이 쓴 그 책 속에 그분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에.
남도형 성우님의 '인생은 파랑'이라는 책에는 그런 내용이 나온다. 성우라는 직업 특성상 오디오북을 많이 녹음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오디오북을 녹음하기 위하여 반강제적으로 책 한 권을 다 읽게 된다. 책의 내용을 알아야 진심 어린 발성으로 녹음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서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디오북 녹음을 하면서 저자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문장의 길이, 어휘의 선택, 글의 분위기 등을 통해 어렴풋이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이 브런치에 있는 글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너무나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의 어린 시절, 나의 돌아가신 부모님, 나의 가족, 나의 사생활 등이 너무나도 투명하게 비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글 말고 그냥 소설 같은 허구의 글을 쓰는 것이 더 나을까? 솔직하고 덤덤한 내용 말고, 허구의 극적인 내용의 소설 같은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은 글 쓰기 내공이 부족해서,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적는 수준을 못 넘는 것 같다. 그리고 바쁜 삶 속에서 짬짬이 시간 내어 글을 쓰기에는 지금 이 정도의 글쓰기가 제일 수월한 것 같다. 학교, 집을 오가며, 육아와 직장생활을 하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꼬리를 잡아서 한 편의 글로 완성하는 지금이 즐겁다. 비록 화려하거나 세련된 글은 아닐지라도,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하다. 무엇이라도 매일 쓰다 보면, 조금이라도 글이 나아지거나 다른 물줄기가 생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쓴 글을 독자들은 그렇게 유심히 읽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독자들이 내 글을 읽음에 있어서, 바쁜 와중에 쓱 대충 읽기, 시간이 날 때 헐렁헐렁 읽기 등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처럼 내 글을 읽지 않는다. 독자들도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가 다 바쁘다. 그렇게 바쁘신 독자분들이 귀한 시간을 내어 나의 브런치에 들어와 한 편씩 글을 읽어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라이킷과 댓글을 달아주심에 고마울 따름이다.
출처: 블로그, 진홍쓰다
브런치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을 계속한다면, 나중에는 '오십 대 아저씨의 보통날', '육십 대 아저씨의 보통날'도 계속 업데이트될 것이다. '육십 대'부터는 아저씨 말고, 할아버지라고 해야 하나? 그 와중에 또 다른 작품들도 간간히 적을 것이다. 내 나이 여든이 되면 '팔십 대 할아버지의 보통날'을 적고 있을까? 그때까지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면, 정말로 이 '후니홉' 브런치는 내 삶을 모두 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먼 훗날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나의 가족과 나를 알고 있는 친구들이 '후니홉' 브런치의 글을 읽으며 나를 추모할까? 너무 앞서간 생각인가? 오늘도 글 한 편을 적으며, 나의 뇌 속에 있는 정보를 여기 브런치 공간에 한 조각 저장한다. 이렇게 적은 글이 곧 나 자신이오, 내가 곧 여기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