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모임 겸 6학년 회식이 잡혔다. 나는 체육전담교사인데, 6학년 소속이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정말 오랜만에 하는 회식이다. 매일 학교, 집만을 오가며 가족들과 항상 저녁을 먹는다. 예전에는 회식자리에 참 많이 쫓아다니고, 술을 엄청 먹고살았다. 술이 많이 취해 집에 오면 여보와 참 많이도 싸웠다. 왜 그때는 그리도 술을 많이 먹었을까? 내가 술만 안 먹었어도 부부싸움의 8할은 안 했을 듯. 참 철이 없었다. 참 미안하다.
둘째를 낳고 키우면서는 회식자리에 가서도 술을 정말 적당히 먹었다. 그리고 늦지 않게 집에 들어왔다. 아! 이제는 내가 사람이 되었구나! 여보와 아이들에게 떳떳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었구나! 술을 조절하면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래, 지금까지 20년 넘게 술을 먹으며 내 몸으로 임상실험을 많이 하였다. 얼마만큼의 술을 어떻게 먹으면 내 몸이 힘든지, 다음날 토를 하는지. 이제야 비로소 술에 대하여 통제 가능한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큰 오산이었다. 오랜만에 저녁회식자리에서 과음을 해버렸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술을 먹고 집에 일찍 들어갔으나 다음날 제정신이 아니다. 아침에 변기 잡고 울고 아침밥은 패스. 겨우 출근하여 술냄새를 풍기지 않으려 노력하며 수업을 하고 힘겨운 하루를 보내었다. 어제 마신 술의 양을 생각해 보니, 1차에서 소주 2병 반, 맥주 1병, 2차에서는 생맥주 큰 잔으로 두 잔을 마셨다. 너무 많이 마셨다. 아직도 술을 통제하지 못하는 술쟁이였다. 어제의 일을 복기하여 기록하며 반성하려 한다.
출처: 블로그, 조이풀라이프
'비프브라운'이라는 고깃집에서 회식을 했다. 이 식당은 가성비가 좋은 소고기집이다. 수입산 고기이지만 어떻게 숙성을 하고 손질을 했는지 고기가 참 맛있다. 그릇들도 고급지고 분위기가 좋아서 손님이 항상 많다. 술을 한 잔 하겠다는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에 갔다. 고기를 주문하고 술도 주문했다. 소주 1병, 맥주 1병. 소맥을 말아먹으면서 고기를 굽는 지금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한껏 기분이 업되어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술과 고기를 먹고 있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술자리에서 웃고 떠드는 것이 얼마만인가! 소맥을 다 먹고 난 후 소주를 한 병 더 시킨다. 참 고마우신 총무님께서 술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한다. 소주잔이 채워지자마자 비워진다. 소주잔에 구멍이 난 것처럼. 술술 술이 들어간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4년 차 신규에게 술을 권한다. 나도 이제 연식이 있는 교사가 되어 신규에게 술을 권하다니! 그런데 소주잔을 받아 술을 받는 신규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술을 급하게 안 먹어도 돼. 천천히 먹고 잔을 돌려줘."
"잔을 다시 줘요?"
"잔을 받아서 먹고 주는 거 모르는구나."
"예. 제가 코로나 때 발령을 받아서요."
아차! 내 앞에 있는 이 신규는 '주도'를 정말로 모르는 사람이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사실 잔 돌리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오늘 내가 꼰대처럼 잔을 주었지만 신규는 잔을 돌려주는 방법을 몰랐다.
하긴 몰라도 된다. 이제는 그렇게 잔을 권하는 술 문화가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어진 것 같다. 코로나 이후로 자기 잔의 술을 먹고, 상대방의 잔이 비워져 있으면 채워주는 정도. 세상이 변한 것이다. 나는 변한 세상에 역행하며 술잔을 권한 것이고. 순간 예전에 원어민에게 '코리안 알코올 매너'를 가르쳐주며 술 먹던 때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잔을 받을 때는 두 손으로 받고, 마실 때는 고개를 살짝 돌려서 마신다. 그리고 빈 잔을 다시 주인에게 주면서 두 손으로 술을 따른다. 이 '코리안 알코올 매너'를 신규에게 가르쳐 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출처: 블로그, 무학좋은데이 공식블로그
6학년 부장님은 97학번이다. 총무를 맡으신 5반은 98학번이다. 나는 00학번이다. 97학번은 내가 1학년 때 4학년이라 좀 거리감이 든다. 98학번은 내가 새내기 때 잘 챙겨주던 선배라 친근감이 든다. 99학번은 바로 위 선배라서 좀 어렵다. 그래서 난 98학번이 좋다. 술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신규는 98년생이란다. 참 야속한 세월이여. 98년생과 98학번이 함께 앉아 밥을 먹다니.
옆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연구부장에게도 잔을 한 잔 권했다. 연구부장은 나와 같은 00학번이다. 내가 신규교사 시절, 학군단 동기 두 명과 연구부장이 같은 학교에 근무하였다. 그 멤버들과 보드연수를 같이 가서 밤에 술을 한 잔 할 때 나도 함께 있어서, 당시에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이번에 같은 학교에 근무하게 되어 조금 더 아는 사이가 되었다. 동갑이지만 서로 경어를 쓴다. 사십 넘어 만나니 동갑이지만 반말이 안 나온다.
술을 한 잔 권하며 반말을 한다.
"00야, 한 잔 받아라. 너랑 술 한 잔 하니 좋네."
연구부장은 냉큼 술을 마시고 나에게 잔을 돌려준다. 역시 주도를 아는 사람이다. 술자리에서 친한 척 반말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다시 또 학교에서 만나면 우린 서로 존칭을 쓸 것이다. 나이가 드니 동갑 이성에게 반말을 쓰는 것이 참 어색하다.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라면 반말이 오고 가는 것이 참 어렵다.
2차로 조금 걸어서 카페 같은 술집에 간다. 가게 상호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우리뿐이다. 우리의 모임을 위해 가게를 통째로 빌렸다면서 또 신나게 떠든다. 이제는 술이 술을 먹고 있다. 맥주가 술술 들어간다. 또 한 잔을 더 받아와 먹는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술기운에 혀가 꼬이고 말이 잘 안 나온다. 앗! 술이 많이 된 증거다.
집에 일찍 가기는 하였으나 집에 들어오니 술기운이 확 돈다. 몸을 가누지 못한다. 비틀거리며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둘째는 아빠의 술이 많이 취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는 말을 자기 전에 수십 번을 했다고 한다. 첫째도 술 취한 아빠를 한심한 눈빛으로 보았다고 한다. 참 한심하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아침에 술을 많이 먹은 것에 대해서 가족들에게 사과를 했다. 참 몹쓸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럽다.
둘째가 이제부터 아빠는 술 먹지 마라면서 경고문을 적어서 붙여 놓는다. 나는 그 경고문을 핸드폰으로 찍어둔다.정말 밖에서는 술을 안 먹어야겠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면 정량을 마시는데, 사람들과 함께 마시면 조절이 안된다. 예전처럼 술을 권하지도 않는데, 나 혼자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일 토하고 괴로워할 것을 알면서도 막 마시고 있다. 밖에서는 절주가 안되니 금주를 해야겠다. 이제부터 나는 술을 못 먹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