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꾸이 Nov 17. 2019

2해와 5해 4,2

이해와 오해사이는 얼마나 먼가


영혼을 공유하던 참으로 가까운 친구와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가 닮았다는 오해로 시작해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서로의 맨얼굴을 공개했었지만 먼지 같은 오해가 만든 작은 균열들로 사이가 멀어지고 말았다. 



오해와 이해 사이가 텅 빈 우주만큼이나 멀게 느껴질 때 그 간격을 메우려 발버둥을 칠수록 넓고 깊은 허공에 소득 없는 발길질을 해대는 기분이었다. 풀려고 할수록 꼬여만 가는 실타래처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하면 오해가 쌓여가는 헛발질.



가슴에 콘크리트 벽돌을 올리고 버티는 것처럼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상대가 내 진짜 마음을 조금만 조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모든 오해는 눈 녹듯이 사라질 텐데. 



아프고 절박한 심정에 애꿎은 상상이 들었다. 마음에도 자막이라는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하면 주석도 달고 글씨가 잘 안 보인다면 프롬프트까지 띄울 각오가 되어있다. 이게 내 마음이라고 이것이 진짜라고 날것의 나의 마음을 선명하게 펼쳐 보이고 싶었다. 그만큼 절박하고 안타까웠다고 해야 하나. 



답답한 마음에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에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누군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세상이 오면 사랑이 없어져"라고. 그렇지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조심조심 밟으려 배려하고 또 상대라는 미지의 세계를 보다 더 아름답게 오해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오해와 이해는 패키지 묶음 같은 것인데 오해가 주는 고통이 크다 보니 반찬 투정하듯이 불편한 오해만 쏙 빼고 관계를 갖고 싶은 것이다. 늘 갈등을 피해 도망 다녔던 것 같다. 마치 우리 사이엔 오해란 없는 것처럼.



너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는 착각이 너를 더이상 궁금해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도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거리마저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다면 오해는 이해를 보다 두텁게 하는 친구가 될 것이었다.



이번엔 진짜 유성우가 떨어진다기에 졸린 눈을 부여잡고 올라간 새벽 옥상에서 별똥별이 떨어지지 않는 밤하늘을 쪼그려 앉아 쳐다보다 생각했다.


오해는 필수, 이해는 존중.



더이상 광활한 우주 같은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홀로 고독히 표류하고 싶지 않다.



5해와 2해의 사이가 딱 3만큼이면 좋겠다.



이전 03화 <지하철 콘테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