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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16.



실제로 하성이 감옥에 갇혀 있었던 건 나흘이었다. 나머지 기간 동안은 병원에 있었다. 하성이 감옥에 갇힌 지 삼일째 되던 날, 풀어 주라고 명령을 내리기 위해 희석이 하성의 감옥에 들렀다 가고 난 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서 하성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당시 하성의 왼쪽 눈은 처음 잡힐 당시 보위병에 의해 손상된 이후, 계속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 뒤 각종 의료진들이 와서는 하성의 눈을 고치기 위해 손을 쓰는 듯했으나, 하성의 왼쪽 눈을 되살리진 못했다.

병원에서 하성은 눈 이외에도, 몸에 났던 각종 상처들을 치료받고 등에 주사를 맞고 팔에 수액 같은 것을 맞으며 끼니때마다 꼬박꼬박 나오는 밥을 먹으며 지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때마침 내려온 퇴원 명령과 함께 하성은 다시 감옥으로 보내졌다. 혼자 있기에는 넓은 듯한 방 안에서, 배급된 식사를 먹으며 하성은 어쩐지 눈을 제외하곤 갇히기 전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된 것 같네.. 어째 감옥이 밖보다 더 나은가 하며 의아해하던 중에, 자신의 방 안에 나 있는 창에서 들려오는 얼굴 모를 보위병들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신이 특별히 보살핌 받도록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었다는 말이었다. 그들의 말이 마치 사실인 양, 하성은  그다음 날 완전히 풀려났다.  나가기 전 하성은 희석을 보고자 요청했지만,  끝내 만날 수 없었다.


*

“동지, 등은 괜찮디요?” 어린 희석이 기진맥진한 채로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어린 하성에게 물었다.

“일 없슴네다.” 하성은 희석을 보자 허리에 짚고 있던 손을 풀어 괜찮다며 허공을 휘저으며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다.

“뼈에 금이라도 간 거 아님네까…”

“내래 그런 거 아니 키웁네다.’

“그런 거 아니 키운다는 게 무슨 말이라요?”

“금 아니 갔다는 뜻임네다.”


“악!”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에 하성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것 보시라요. 내래 손만 대었을 뿐인데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잖슴네까." 하성의 비명에 희석은 미안한 듯,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 없슴네다.” 차마 허리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하성이 답했다.

"일 없긴 뭐가 없슴네까. 그라기에 상병한테 대들긴 와그리 대들었슴네까? 내래 다리가 이래 갖고 맞는 일이야 숨 쉬듯이 있는 일인데, 내 보다 맷집도 없는 동지가 나서긴 왜 나섬네까? 내래야 잠깐만 맞고 끝나면 긴데, 동무는 무슨 벼락임네까.”

“맷집이 없긴 누가 없담네까?! 내래도 그런 건 아주 많이 키워 왔슴네다. 그라고 동지가 다리를 전다고 때리는 게 어딨슴네까! 찬물미역(^냉수욕)을 시킨 다음 랭동고(^냉동고)에 넣어 랭채(^냉채)를 만들어도 시원찮고 펄펄 끓는 오물장에 내동댕이 쳐도 화가 락자없을 것(^영락없다) 같슴네다. 아주 한 겨울인데도 시원찮아 속이 퍼다하게 깜깜합네다 그려! 시원찮소!”

“동지, 기카다 누가 들믄 어칼라고 그럼네까?”

“들으라믄 들으라요. 내래 아주 확!”

“하성 동지, 뒤에..!” 갑자기 뒤를 돌아본 희석이 놀라며 말했다.

“아님네다, 농담으로 땅따먹기 하고 있었슴네다." 뒤에서 날아올 주먹에 대비하기 위해 하성이 몸을 잔뜩 웅크리며 말했다. "잘못했슴네다. 때리지 마시라요.”

“동지… 후라이임네다.” 희석이 조용히 말했다.

조심스레 웅크린 손을 풀며 하성이 뒤를 돌아보자 쓰레기 옆 파리만 윙윙 거리며 날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경계심이 풀리지 않았는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던 차에 언제 저기까지 갔는지 저 멀리서,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지만 참아야 한다는 의지와 함께 가까스로 표정을 굳히고 있는 얼굴로 서 있는 희석이 보였다.


“이..!! 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져 버리라우!!" 하성은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들고 희석을 쫓아가려 했지만, 몇 발자국 걷다 못해 허리에서 전해오는 충격으로 발을 헛디뎌, 비명 지를 새도 없이 진흙밭 위로  고꾸라졌다.

여전히 웃음을 참은 채 도망 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희석은, 하성이 넘어지는 걸 보며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웃음도 잠시, 어쩐지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하성을 지켜보던 희석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황급히 하성에게 달려갔다. 엎어져 있는 하성을 일으키기 위해 희석이 손을 뻗는 순간, 하성이 희석의 팔을 잡아 아래로 끌어내렸고, 그 바람에 희석 또한 그대로 진흙밭에 나뒹굴고 말았다.

진흙으로 뒤범벅이 된 서로를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이내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각자의 군복을 스스로의 몸보다 귀히 여기라는 군대장의 명령이 머릿속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희석과 하성은 수심에 잠긴 듯한 근심 가득한 얼굴이 되어 자신의 더러워진 군복을 바라봤다.

그때 하성의 얼굴 위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더니, 뒤이어 굵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어찌나 굵고 세찬지, 하성과 희석의 얼굴과 옷, 몸 곳곳에 묻은 진흙들이 씻겨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두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젖혀 하늘을 쳐다봤다.

“동무.”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희석이 말했다. “이젠 좀 시원하요?”

하성은 잠시 고개를 돌려 희석을 바라봤다, 다시 하늘을 보곤 눈을 감으며 말했다.

“시원하요.”


하성의 얼굴 위로 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성은 잠시 말없이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내림네다. 날래 가소.” 연이 말했다.

“기럽시다.” 하성이 답했다.


후에 하성이 연에게 듣기를, 식사 자리에 있던 동기 중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개 일주일에서 이주일 내외로 풀려 났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몇몇은 감옥이 아닌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그 후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들은 훈련소 시절 희석의 다리를 절게 만든 이들이었다. 하성은 그날 밤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찌하면, 무엇이, 도대체. 이 일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다 함께 어울려 놀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너무도 가까운 듯하면서도 까마득했다. 따스한 기억들이지만, 이제는 한없는 슬픔이 되어버린 기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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