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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15.



분명 이에 따른 대책 회의를 한다고 모였는데, 간부들을 맞이하고 있는 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밥상이었다. 다들 아무런 말이 없었다. 곳곳에선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하성과 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며칠 째, 음식은 커녕 더 이상 캐어 먹을 나무뿌리도 부족한 터였다. 극심한 허기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다 보면 그 고통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음식이 눈앞에 있고 그 냄새가 들이마시는 숨을 통해 속으로 들어오니 텅 빈 뱃속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 식사들 하며 이야기하자우.” 한쪽 다리를 절며, 방 안으로 강희석이 걸어 들어왔다. 

쭈뼛거리며 주위 눈치를 보던 사람들을 또한, 두 명씩 음식을 먹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좀처럼 음식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하성과 송연도 마찬가지였다. 이 음식이 어떤 건지 알아서. 고향에 죽어나간 아이들의 시체가 벌써 수십이었다. 명호 또래나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볼 때면, 하성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대기근 이전에는 그나마 형편이 좀 되어 다른 이웃들에게도 음식을 나눠 주곤 했는데, 본격적인 기근이 마을을 넘어 북한 전역에 몰아치기 시작하자, 가족들 먹을 식량도 구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건너 건너 국제기구에서 각종 구조 물량들을 보내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그 물품들이 마을까지 직접적으로 퍼져 나간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고위층 인사들끼리 자신네 재산을 비축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 하성은 믿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고, 이런 우리를 국제 사회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에서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탄 동지들이라고, 이 배고픔도 잘 견뎌서 이겨내 보자고, 너나 할 거 없이 모두가 옥수수 죽이나 나무뿌리 등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당만 믿으라고. 스피커가 달려 있는 곳이라면, 때마다 이러한 방송이 흘러나오곤 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붙잡고, 하성 동지, 우리 진짜 이러다 죽겠소. 당에선 정말 아무런 식량이 없다고 하우?라고 물어올 때마다 하성은 그들의 손을 붙잡고 무어라 말했던가. 지금은 모두가 고난을 나고 있는 중이니, 다 함께 잘 견뎌 보자고.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가을 그리고 겨울에 들어서게 되자, 그나마 먹을 수 있던 곤충들이나 풀들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의 원성이 아우성 치자, 당에선 흙을 먹으라 하였다. 하성은 자신을 붙잡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의 말을 그대로 읊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 중순을 다 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당은 그러한 죽음을 두고 순직이라 하였다. 그러며 당은 꼭 덧붙였다. 우리가 모두 동지이자, 한 가족이라고. 하성은 그 말을 믿었다.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믿었기에, 당의 명령에 대해 반감이나 반기를 드는 사람들의 말을 철저히 무시했다. 때론 그들과 싸웠다. 당의 편에 서서.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음식이 무엇인가. 하성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음식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옥수수죽이 나와도 놀라울 판국에 웬 진수성찬이란 말인가. 

잊은 줄 알았던 극심한 허기의 통증이 다시 밀려오며 눈앞의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갈망과 함께 그러한 갈망을 느끼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내래.. 잠시만.. 위생실 좀 다녀오갔소.” 하성은 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먹은 것도 없는데 헛구역질이 나왔다. 굶주려 죽어가는 동지 영진의 손을 부여잡곤, 자네는 명예로운 죽음을 하는 것이라네. 자네의 죽음을 당이 자랑스러워할 걸세.라고 말했다. 자신이 뱉었던 말들은 다 무엇이었던가. 하성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흰 타일에 핏자국이 새겨졌다. 

어째서 이곳은 화장실마저 이리도 깨끗한가. 이성을 잃은 채 벽에 손을 내리치기를 수십 번. 그때 바깥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 송연의 목소리였다. 


하성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의자 옆 바닥에 피를 흘리며 늘어져 있었다. 그 옆에는 사색이 된 송연이 서 있었다. 

심장에 총알이 관통한 채 쓰러져 있는 이는 하성과 송연의 벗, 하일환이었다. 

“뭐이? 내래 기껏 귀한 음식을 주었다니, 짐승만도 못한 놈 아니냐고?” 희석은 한 손에 권총을 든 채로 서서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부들거리고 있었다. 제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발로 찼다. 하성은 일환에게 달려가 목 옆의 맥을 짚었고, 이미 숨을 거뒀다는 것을 깨닫곤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연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길길이 날 뛰고 있는 희석을 쳐다보았다. 

“뭐니, 니 와 날 지르보나? 아아, 니도 자처럼 되고 싶다는 말이렸디?”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희석은 일환 옆에 있는 하성을 쏘아봤다. 그럼에도 하성이 기세를 굽히지 않자, 희석은 다시금 총구를 하성을 향해 겨누었다. 

“희석 동무, 동무끼리 이러지 말라요.” 송연이 하성을 뒤로 잡아끌듯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기렇디요, 동무. 다 같이 힘든 판에 이러면 아니 됨네다.” 건너편에 서서 불안한 듯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도견하가 말했다. 


하성은 그 말에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다 같이 힘든 판이라… 허파에 구멍이 뚫린 듯 온몸의 숨이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동기들이었다. 한 때는, 한 때는 그랬다. 저마다의 야심을 지니고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당과 조국에 대한 충성을 최우선으로 삼던 이들이었다. 그중, 나라의 부흥에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고자 했던 건, 여전히 목울대까지 핏발 선 상태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바로 저, 희석이었다. 

희석은 6・25 전쟁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그 당시 희석을 거두어 준 것이 당이었다. 희석은 동기들 중에서도 가장 약했다. 하성과 송연 외에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동기들은 희석을 곧잘 놀리곤 했다. 약하지만 조국을 굳건하게 만들겠다는 희석의 열망만큼은 동기 중 그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았다. 하성이 송연과 부부의 인연을 맺을 때 가까이, 희석도 려완과 혼인을 했었다. 서로 사는 곳이 멀었던 터라 자주 왕래하지 못했으나, 서로의 집 마당에서 소박하게 식을 올릴 때, 해단을 처음 낳았을 때도 가장 먼저 달려와 축하해 준 이는 희석이었다. 

두 집안 사이의 왕래가 끊긴 건, 희석이 정치범 수용소의 간부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희석에게 전해 듣기로, 한 번 들어가면 족히 일주일은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근무를 서야 한다고 했다. 항상 먼저 발걸음 하던 희석의 소식이 뜸해질 즈음, 하성은 이따금 희석을 생각했으나 둘째 명호가 태어났고 발령지를 옮기게 되면서 전한 연락 외에는 별다른 기별을 하지 못했었다.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며 살아갔다. 


그러다가 희석의 소식을 듣게 된 건 다름 아닌, 송연을 통해서였다. 이전에 살았던 마을에 갔다가 희석의 소식을 듣고 왔다는 것이었다. 희석의 아내, 려완이 죽었다 했다. 희석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근무하고 나온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종이 한 장과 함께 완은 재로 변해 나무통에 담겨 있었다고 했다. 종이에 적어둔 당의 설명은 그러했다. 갑작스레 집에 들이닥친 신원불명자의 소행으로, 혼자 있던 완이 죽었고, 그걸 우연히 발견한 보위국 사람이 대신 시신을 처리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을에서 퍼진 소문은 달랐다. 보위국 사람의 짓이라는 얘기가 마을에 파다했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이 이를 희석에게 알렸지만, 희석은 이를 부정했다. 오히려 그에게 진위 여부를 밝혀 내야 한다는 사람의 멱살을 쥐고 두들겨 팼다고 했다. 같은 당원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게 희석의 지론이었다. 희석은 그 이후로 조금씩 변했다고 했다. 자신의 주변 이웃들을 잡아다가 다 정치범 수용소에 가뒀고, 마을을 걸어 다니다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는 경우가 있더라면 이 또한 반죽음을 만들거나 수용소에 잡아넣었다. 당은 희석의 공적을 기렸고, 희석은 신속한 진급 절차를 밟고 호위 사령부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듣고 하성이 희석의 집을 찾았을 땐, 그곳엔 이미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주위 이웃들에게 희석의 행방을 물었으나, 다들 희석의 이름을 듣자 사색이 되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하성이 희석과 다시 마주친 건, 그로부터 일 년 후였다. 평양에서 열린 인민 대통합 잔치에서 잠시 군 동기들끼리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그곳에 희석도 있었다. 그 당시 희석은 동기들과 의례적으로 인사를 하곤,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하성과 희석이 잠깐 마주 보고 악수를 했을 때에도, 희석은 하성뿐만 아니라 그 누구와도 마주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평소 하성이 알던 희석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하성은 생각했다.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저마다의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 동기들끼리 모이는 자리도 겨우 찾을 만큼 그 당시 평양 광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사람들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희석의 뒷모습을 하성은 차마 따라가지 못하고 눈으로만 쫓을 뿐이었다. 


“정신 차리라우, 희석 동무. 같은 동무끼리 이러면 아니 되지 않갔소.”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희석을 보며 하성이 말했다. 

“동무는 무슨 동무라요. 내래 처음부터 그런 거 아니 키웠단다.” 희석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떨렸다.  “저 아들, 당장 다 끌어내라우!” 식탁에 깔린 식탁보를 들어 옆으로 쳐내며 희석이 말했다. 그 바람에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음식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방 안으로 문 밖에 서 있던 보위병들이 들이닥치며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며 끌고 가기 시작했다. 발이 질질 끌리다시피 끌려가며 하성은 그나마 보이는 한쪽 눈으로 점점 멀어지는 희석을 바라봤다. 여전히 분이 삭혀지진 않는지, 희석은 바닥에 떨어진 음식들을 발로 짓밟고 있었다. 희석의 주위엔 아무 표정 없이 그저 곁을 지키고 있는 부하들이 서 있었다. 


하성이 완전히 풀려난 것은 근 삼 주일 만이었다. 구름 낀 하늘 사이로 햇살이 비춰 내리고 있었다. 하성이 손등으로 햇빛을 가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그의 어깨를 와락 껴안았다. 연, 송연이었다. 

송연은 일주일 정도 갇혀 있다가 풀려 났다고 했다. 

“얼굴이 이게 뭡네까.” 연은 하성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울었다. 하성의 눈 한쪽은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었다. 

“울지 마소, 내래 일 없네. 당신은 일 없나.” 하성은 남은 한쪽 눈으로 연신 연의 모습을 담으며 연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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