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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20.


지금이야 세하가 울면 분명 눈물방울은 우박일 거라며 우스개로 말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의 세하는 알아주는 울보였다. 세하가 다녔던 보육원에서, 우는 건 매를 버는 일이었다. 한 명이 울면 다 같이 맞았다. 그리고 그 한 명은 뒤에서 아이들에게 다시 맞았다.

아무리 울어도 자신을 찾으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로부터, 세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울어서 소용 있는 일이 있을까. 울기에 앞서 항상 물음이 먼저 왔다. 그에 따른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세하는 참을 수 있는 한 끝의 끝까지 울지 않았다.  


세하가 일곱 살이었을 때, 원장님 몰래 보육원을 나가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간 적이 있었다. 놀이터에는 세하을 포함해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두 개 밖에 없는 그네는 이미 그 아이들 차지였고, 세하는 혼자 시소 한쪽에 앉아 발로 모래바닥을 찼다가 놓았다가 반복했다. 혼자 타는 시소는 높이 떠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순간의 그 공중이 좋아서, 세하는 자꾸만 발을 굴렸다.

그러다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 돌려 옆을 보니, 그네를 타고 있던 아이 중 한 명이 넘어졌는지, 엉엉 울고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세하는 퍽 당혹스러웠다. 보육원에선 시간이 지나면 울음소리 같은 건 대개 잦아들기 마련이었으니까. 고함 소리면 몰라도.

잠시 그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세하는 다시 앞을 보며 발을 굴렸다. 하나, 둘셋. 다시. 하나, 둘… 발차기를 하려던 세하의 발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울음소리가 갑자기 뚝 그쳤다. 세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다시 그곳을 바라봤고, 아이는 어떤 어른에게 안겨 있었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어디서… 아이는 어른 품에 안겨 ‘아빠’라고 했다. 세하는 아빠를 불러 본 적이 없었다. 종종 보육원에서 엄마나 아빠가 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들을 때에 말고는, 아빠란 단어를 좀처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저게 아빠인 걸까. 수위 아저씨랑 닮은 듯 달라 보인다고 세하는 생각하며 두 아이와 아빠란 사람이 사라지기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시소를 탔다. 아무리 밖이더라도 역시 혼자 타는 시소는 재미없었다. 그네를 탈까 했지만, 해가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세하는 서둘러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시소 밑의 타이어를 밟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무릎이 따가웠다. 모래밭은 이래서 안 좋아. 바지를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났는데 세하는 다리에서 무언가가 흐르는 듯한 걸 느꼈다. 내려다보니 까진 무릎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아까와 같은데, 피가 난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니, 괜스레 더 아픈고 서러운 것 같았다. 주위도 캄캄했다. 이런 것쯤이야 익숙한 일이니까, 일단은 대충 털고 어서 가자. 얼른 돌아가서 상처에 물을 찌끄려 피를 씻어내고 휴지로 물기를 닦아낸 다음 전에 쓰고 남은 연고를 그 위에 덧발라주면 된다. 무엇보다 저녁 시간 종이 울리기 전까지 도착하려면 지금 나서야 했다.

그러나 세하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낮에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점점 크게 울던 아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아빠라는 어른.

나도 그런 걸까. 세하는 생각했다. 그동안 울 때, 엄마만 찾아서 아빠가 오고 싶어도 오지 못했던 걸까. 내가 찾지 않았으니까.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선물을 품에 한 아름 안고 들어와서는, 이거 다 아빠가 사줬다고 자랑하는 아이가 있었다. 세하가 자긴 아빠가 없다고 하자, 아이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엄마는 물론 아빠가 없으면 태어날 수 없다고 했다. 아빠는 모두가 지닌 거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없다고, 세하는 소리치며 아이가 든 인형을 뺐어 소파 위로 던졌다.


혹시 몰라, 정말 있을지. 세하는 울지 말지 잠시 망설여졌다.

보육원에선 우는 게 멍청한 행동에 속했다. 울면 혼났고, 때론 맞았다. 혹은 약하다고 얕잡아 보여 번번이 간식을 뺏기거나 불쌍하다고 업신여겼다. 어쩌다 참지 못해 울음을 터트리게 되는 날엔, 세하는 화장실의 후미진 구석이나, 창고, 옷장 안 등으로 가서는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울었다.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는 세하를 두고, 어른들은 대견하다고 했다. 그 누구도 우는 자신을 못 봤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누구라도 자신을 찾아 줬으면 좋겠다고 좀 안아 줬으면 좋겠다고, 어린 세하는 생각했다.

오늘이 바로 그때일까 싶었다. 그동안 아빠를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가 나타나지 않았던 거라고, 세하는 계속해서 울기를 겁내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참아 왔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트리는 일은 위험했다.   우는 거 하나로 끝낼 수 없었다. 참고 참다 어쩌다 담겨 있던 울음이 한 번에 터져 나올 때면, 울음 속에 잠겨 미처 느끼지 못했던 마음속 고통들이 그제야 자신의 힘을 되찾았다는 듯이 마구잡이로 가슴을 찔러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마치 가슴이 찢기며 온 몸이 안에서 부서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세하는  그토록 기진맥진하게 울면서도 한 술 더 떠서 왜 울었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건 마치 몸이 부서져 내린  잔해 더미 사이로 걸어가 보이는 마음 조각 족족 발로 밟아 부시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바스러진 마음이 내쉰 숨들에 먼지처럼 흩날려 사라질 때면, 잠시나마 고요가 찾아오긴 했지만 순간뿐이었다. 그 순간을 누리기 위해 울며 온 몸을 박살 내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감당해내기란 어린 세하에게 쉽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세하는 주문처럼 되뇌었다. 아무도 없어. 운다고 해서 아무도 안 와. 기대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이뤄진 기대보다 이뤄지지 않은 기대가 너무 아팠다.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면 편했다. 더 이상 버려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세하에게 버려짐은 익숙한 것이었다. 익숙함이 무뎌짐을 보장해주진 않았다.

그래도 세하는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스스로의 마음을 아는 것보다 외면하는 게 더 쉬운 듯했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게, 버림의 사유가 되었다는 건 숨을 쉬는 것보다 숨을 죽이는 게 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세하로 하여금 일찍이 깨닫게 했다. 자신의 숨소리조차 부정당한 것만 같은 생에서, 슬픔은 세하에게 별 게 되지 못했다.

눈을 치켜뜨고 이를 악물고 삼켜낸 슬픔은 소화되는 게 아니었다. 눌리고 뭉쳐서 이따금 넘쳐흘러 나오려 했다. 세하에게 있어 감정의 입구와 출구는 동일했다. 울음을 참으려 마음을 누를 때면, 다른 감정들도 덩달아 묻어졌다. 살아 있는 감정이 생채로 마음에 묻힐 때면, 발버둥 치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 더 많은 마음을 필요로 했다. 마음이 감정의 무덤으로 넘칠 때면, 여력이 없는 마음을 뒤로한 감정들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한 번은 세하의 학급에서 키우던 햄스터가 죽게 된 적이 있었다. 학급 아이들 대다수가 우는 가운데, 세하는 울지 않고 있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선생님은 세하에게 너는 왜 울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한 데 몰리자, 어쩔 줄 몰라 당황에 빠진 세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다음 날 세하는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보면 웃으며 인사를 해오던 몇 안 되는 친구들마저 고개를 돌려 세하을 없는 사람인 양 대하는 것을.  

세하의 마음도 아팠다. 다른 아이들이 햄스터를 만지고 귀엽다고 말하기만 할 때, 햄스터의 집을 청소해주고 밥과 물을 갈아주던 세하였다. 슬프고 마음이 아픈데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슬픈데 울지 않으면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걸, 세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같은 보육원 친구들은 슬프다고 해서 항상 울진 않았다. 슬퍼서 눈물을 닦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슬픈데 슬프지 않은 척 웃는 아이도 있었고, 콧물을 흘리는 아이가 있기도 했다. 자신을 버린 줄 알았던 부모가, 열심히 일 해서 자신을 찾으러 온 날 부모의 품에 안겨서 웃으며 우는 아이와 아이를 안고 울고 웃는 부모를 본 적도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때였나, 세하는 보육원 선생에게 종아리가 터지도록 맞은 한 아이가 화를 내며 마구잡이로 물건들을 집어던져 독방에 갇히는 상황을 목격했다. 간식을 받아 자신의 방으로 가던 세하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무시하고 그냥 가기엔, 자신보다 어린 동생이었고 왜인지 울음소리가 너무 슬프게 들렸다. 도무지 앞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자, 세하는 걸음을 돌려  몰래 간식을 한 개 더 챙겨서는 그 아이의 방에 들어갔다. 온통 회백색 벽지로 둘러 쌓여 있었고 창문 하나 나 있지 않아서 낮인데도 방 안은 캄캄했다. 살짝 열어둔 방문 사이로 비춰 든 불빛이 희미하게 방 안을 밝힐 뿐이었다. 아이는 방문 바로 옆 구석에 앉아 있었다. 세하는 그 아이 앞에 간식으로 받아 온 요구르트를 놓아두었다.  


괜찮아..? 세하가 물었다.

아니. 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까 왜 그랬어..?

아파서.

그럼 더 혼나는 거 알잖아..

슬퍼서.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너무 답답한데. 근데 울음이 나오지 않아가, 화가 났다. 기렇디만 이미 마음에 슬픔이 꽉 차서, 화를 담을 공간까진 없었다. 화까지 참을 공간이 없었단 말이매. 그래서 화를 냈다. 그뿐이래.

그랬구나.

신기하구마

뭐가?

니가.

나?

기래. 니 같은 반응은 첨 봤다. 내래 고향이나 여기나, 저래 행동하면 락자없이(^영락없이) 싹바가지 없다고 고아댄다.(^고함친다)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도 없고, 슬플 때 우는 것만이 꼭 정답일 필요도 없는 것 같아서.

기런가… 글믄 니는 어떻게 슬퍼하네?

나는… 그냥 있어. 가만히. 아니면 자거나. 여튼.

일 없나?

어?

괘안냐고.

뭐가?

내래 슬플 때 뭐라도 아니 믄 머리고 가슴이고 다 펑 터질 것 가트더래.

그런가… 그러고 보면 나도 너처럼 막 화냈던 적이 많았어. 난 너보다 더 했지. 방이고 식탁이고 다 뒤엎어버렸거든. 근데 마음은 여전히 슬프고, 몸에는 멍만 늘고 더 나아지는 게 없더라.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고. 그래도 맞진 마. 또 화가 날 때가 오면, 여기 뒷산에 올라가 봐. 거기서 소리 지르면 좀 났더라, 나는. 그 산, 내건 아니지만, 너 줄게.

니는.

나는 내일 나가.

기래. 고맙다. 니도 슬플 때 꼭 울 필요는 없지마네,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으라.

…그래. 고마워… 갈게.

니 이름이 뭐래?

세하.

성은?

없어.

기래.

너는?

흠.. 그럼.. 나는 단. 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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