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 가운데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SUBURBIA (Troye Sivan)
1.
불면의 밤은 고통스럽다. 마치, 영영 깨지 못할 꿈속을 헤매는 것만 같이.
2.
우리 집엔 항상 늦게까지 켜져 있는 불빛이 있었다. 브라더의 방이었다. 잠을 안 자는 거지, 못 자는 건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철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철없던 난 밝게 밝혀진 브라더의 방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밤새 깨어 있는 그를 보며, 밤에 깨어 있는 건 또 하나의 일반적인 상황일 뿐 유별난 것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학원 숙제를 다 끝마치고 홀로 밤 한가운데에 머물며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는 시간을 일부러 내기도 하며 깨어서 종종 밤을 새는 것을 즐겼다.
그런 브라더가 불면증이었기에 그러하였다는 것을. 그래서 잠을 안 잔 게 아니라, 못 잤더라는 것. 이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의 일이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머리로 그렇구나 했던 말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상태로 한 밤중에 거하게 되며, 온몸으로 몸소 경험하게 되면서 내 마음도 함께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되었더란다. 이제 와서 하는 뒤늦은 인사이지만, 미리 알지 못해 미안하다 브로. 그리고 항상 방의 불을 밝혔던 브로 덕택에 밤 중의 깨어있음과 깨어남이 괴롭지 않게 지나 보내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고맙다.
3.
불면은 지독하다. 온몸은 지칠 대로 지쳤는데 정신은 맛이 간 듯하면서도 말짱한 듯하여, 그 어디의 불명확한 경계에 속해 있는 느낌이라, 바로 서지도 못한 채 바로 서려 발버둥 치고 있는 느낌이다.
잠을 잘 수 없다면 다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도록 정신이라도 바짝 말짱했으면 좋겠는데, 정신마저 흐물거려서 근데 또 잘 정도로 흐물거려 주진 않아서 괴롭다. 몸은 이미 잠에 빠져 들었는데 정신 혼자 깨어서 온 몸 구석구석을 공간 구석구석을 날아다니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지금 내가 잠이 오는데 잠을 자지 않으려 버티고 있는가, 하여 침대에 누워 보면 막상 또 잠은 안 오는 아이러니다. 모순에 모순에 모순으로 점철된, 경계와 경계와 경계가 맞닿은 모호함 투성이의 시간들. 불면은 투명 망토를 입고선 내가 지금 투명 망토를 입고 있다고 소리치고 다니는 것만 같이 군다.
나는 불면에 붙잡힌 건가, 불면을 붙잡고 있는 것인가.
잠이 오지 않아 다른 무엇인가를 해보려는데 그걸 할 정도까지의 정신이 아닐 땐 무엇을 해야 하는가.
4.
눈을 감고서 잠을 자며 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자각한다. 꿈을 꾸면서 꿈을 꾸고 있음을 지각한다.
5.
불면은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불청객이 찾아오는 데에 나름의 방식이 있을지언정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한다. 삶 속, 일상 속 수만 가지의 상황들이 부여잡고 불청객을 아느냐고 그 알리바이를 묻노라면 연관 없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상황을 사건으로 만드는가 아닌가, 이는 어디까지나 내게 당락이 달린 질의응답인 것이 아닐까 싶은 나날이다.
나는 내가 왜 잠을 자지 못하는지 알지 못한다. 애꿎은 여러 날을 찾아온 불청객인 불면을 붙들고서 오래도록 물었다. 왜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가. 왜, 왜, 왜. 불면의 얼굴은 지극히 순진하다. 그냥 찾아오고 싶어서 찾아왔단다. 자기도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단다. 오히려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네가 나를 부른 게 아니냐고.
둘 다 이러한 태도를 고수해서 나아질 건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서 나의 책임을 찾아 쥐고는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불면의 방문에 나는 분명한 책임을 쥔 사람일 테니. 설령 찾아든 불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을지언정, 기껏 해봐야 불면이 찾아온 곳은 나다. 나. 그리고 나는 나다. 불면은 불청객이고 손님이고, 나는 나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불면을 내쫓을 수는 없으나 불면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순 있다. 불면에게 잠시 자리를 내어 잠을 청하겠노라 와 같이 당장의 합의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깨어 있는 밤에 내가 무엇을 할지 조금이라도 더 유용하게 쓰기 위해서 내가 택할 수는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반 수면 상태에 있는 불면을 커피로 깨우며 그나마의 말짱한 정신을 붙들고 이렇게 불면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언젠가 나와 같은 불면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동지애를 느낄 수 있길 바라며. 당신이 당장 불면을 없애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불면의 시간을 충분히 값어치 있게 쓸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일 거라고. 불면은 우리 하기 나름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깨어 있는 동안 무엇을 하고 하지 않을지는 우리 하기 나름인 셈이라고. 그렇게.
불면은 언제쯤 사라질까.
모른다. 허나,
불면을 어떻게 살아낼까.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이는 내가 쥐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 쥐고 계시고.
내게 찾아든 불면 앞에서, 나는 나이고 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