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자력과 심지
소설을 쓰다가 인물의 감정에 너무 깊이 동화된 날이면 온 몸의 진이 쭉 빠져서 좀처럼 힘이 없을 때가 있다. 게다가 쓰고 있는 글의 내용에 진전이 없거나 이야기가 너무 침울해져 있는 경우,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늘어지고 꼬여서, 좀처럼 묶이지도 풀리지도 않는 신발끈의 모양새가 되고 만다.
이럴 때, 글을 써야 하는데 좀처럼 힘을 낼 수 없을 때, 조금 암담한 심정이 된다. 해야 할 건 태산인데 마음은 계속 내려앉아 있고, 계획대로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이 마음속에 지진을 일으키는지, 일어서려 내딛는 발판마다 계속해서 힘이 빠져간다.
앉아서 글을 쓰는 건데, 운동보다 덜 격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힘들게 느껴질까. 이런 내 상태를 처음 마주했을 땐, 퍽 당황스러웠다. 운동이라면 격하게 2시간도 해내는 편인데, 왜 글을 쓸 땐 이렇게 체력이 좋지 않을까, 내 체력이 이렇게 저질이었나.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의심에 빠지곤 했다.
언제인가 비타민 영양제 한 알을 물과 함께 삼키며 고심하다가 나름대로 추측해 본 건, 마음과 몸은 하나이면서도 별개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었다. 몸에 체력과 근력이 있듯, 마음에도 체력 및 근력 비슷한 것이 따로 있는 것 같다고… 그렇지 않고선 이야기를 쓰는 도중도중 더 이상 한 마디도 못 할 만큼 마음이 축 처질 수는 없다고..
그동안 체력을 기르기 위해 몸의 근력을 기르는 데에만 온 집중을 기울였는데, 마음의 근력을 기르는 데에도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여 주어야 하구나. 뒤늦게서야 깨달아 간다.
앞선 상황을 비추어 보아, 인물에게 공감하면서 그 가운데 마음으로 휘몰아쳐오는 감정으로 인해 마음이 너덜너덜하게 찢긴 것이라면, 휘몰아치는 감정 가운데에 좀 더 유연하게 흔들릴 수 있다면, 마음이 좀 더 굳건한 뿌리를 지니도록 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유연한 마음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몸에 닥쳐온 충격을 완화할 때에 근육이 큰 도움을 주듯이, 마음의 근육을 기르면 좋으려나. 마음의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보다 먼저 마음의 근육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마음 심(心) 자에 힘 력(力) 자를 따서 ‘심력(心力)’이라 칭하면 어떨까. 아니면 사랑 자(慈) 자에, 스스로 자(自) 자를 함께 담고 힘 력(力)을 곁들여, ‘자력(慈力)’이라고 할까.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그러고 보면 마음의 힘은 스스로의 마음속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마음이 아무리 무너져도 사랑이 넘어진 마음을 끝끝내 다시금 일으켜 내고 마니까. 역시 자력이 어떨까요.
그렇다면 마음의 근육인 자력이 지닌 힘은 무어라 칭하면 좋을까.
종종 마음에도 굳은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이를 연결하여, 마음 심(心) 자에 굳은살 지(胝)를 붙여 ‘심지(心胝)’라 불러보면 어떨까.
기타나 바이올린 등을 연주할 때, 혹은 복싱을 할 때에도 한층 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 위해 혹은 보다 더 좋은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 연습하다 보면 손가락이나 발바닥에 굳은살이 배기게 되곤 한다. 같은 부분에 계속해서 일정량 이상의 압력이 가해지며 짓눌리다가 물집이 생기고 그러다 터지고 진물이 나고 다시 아물면서 굳은살이 생긴다. 우리의 삶에 이따금 찾아오는 마음의 통증도, 그저 아픔과 고통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다 굳건해지기 위한 여정을 지나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종종 생각했다.
또한 마음이 아프다는 건, 그만큼 온 힘을 다해 진심으로 생에 임하고 있다는 정말 용감한 용기이자, 어쩌면 사람 저마다의 자기 자신이란 존재 속 가장 연약한 마음이란 것을 그럼에도 주저 없이 앞서 세우고 온 마음 다해 공감하며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는 그런 찬란히 빛나는 용기와 엄청난 마음의 자력과 심지를 지닌 게 아닐까 라고도…
우리가 삶 속에서 마주한 여러 상황들에 마음이 다쳐 상처가 났을 때, 다시 아물기까지 크고 작은 통증들이 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아픔이나 상처가 그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분명 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마음의 힘이 길러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렇게 길러진 마음의 힘과 굳은살은 또 다른 때에 좀 더 오래 그리고 든든히 마음을 써줄 수 있는 굳건한 자력과 심지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의 삶에 더 거센 풍파가 밀려오더라도, 보다 더 강건히 이겨낼 수 있을뿐더러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따금 그런 생각과 기대를 해보곤 해요.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 이루마 - Spring Walt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