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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흡수인간 Jul 12. 2018

사소한 것들이 직장살이에 구원이 되길

#일의의미를찾아야버틸수있다고도생각했었지만  #사람속은모르는것

만약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의사의 실수로 목숨을 잃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충분히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밍을 놓쳐서라면 말이다. 아마 깊은 슬픔과 함께 '일찍 손을 썼더라면 살수 있었을텐데' , '그때 내가 의사에게 강하게 얘기했었어야 하는데' 라는 자책감이 강하게 밀려들 것이다. 그리고 오진한 의사를 포함하여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이런 감정은 너무나 폭발적이어서 나로선 과연 어떻게 통제를 해야할 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세상 그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감정이 아주 사소한 것으로 덮어질 수 있다면?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별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은 바로 이와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빵집에 케이크를 주문제작한다. 하지만, 아들은 사고로 중환자실에 며칠간 입원하게 되고, 끝내 목숨을 잃게된다. 괜찮을거란 의사의 말만 믿고 기다렸지만 결국 나중엔 겉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망원인이 매우 드문 케이스라는 의사의 말과 함께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내게 된다. 그런 사정을 알턱이 없는 빵집 사장은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주인공의 집에 전화를 걸어 그를 귀찮게 한다. 아들을 잃은 주인공의 깊은 슬픔은 빵집 사장에 대한 분노로 바뀌게 된다. 아들이 죽은 마당에 그깟 케이크 때문에 전화를 걸어 귀찮게 하는 빵집 사장이 미웠던 것이다. 주인공은 결국 빵집 사장을 해코지 하기 위해 늦은 밤 그의 가게로 찾아가 시비를 걸기에 이른다.


빵집 사장에게 케이크 값을 파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주인공에겐 하찮은 일이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한밤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주인공의 행패가 반가울 리 없다. 처음에 빵집 사장은 주인공의 무례한 행동에 화가나서 실랑이를 벌인다. 하지만, 그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나서 측은함을 느끼게 되고, 다음과 같은 말을 주인공 부부에게 건네기에 이른다.


내게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당신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간신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라오.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생략) 나는 못된 사람이 아니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전화로 못된 짓 하는 사람은 아니라오. (생략)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던 주인공은 빵집사장이 내온 계피롤빵에 갑자기 허기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와 롤빵 위에 버터를 발라 먹으면서 빵집 사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갓 구운 빵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주인공은 그렇게 빵집 사장과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채 그 곳에 머무르게 된다. 슬픔과 분노는 온데간데 없이 말이다.


unsplash.com


최근 신간 도서 제목 중에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라는 것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별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라는 제목과 왠지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힘든 와중이라도 그 상황을 극복할 힘이 우리 안에 숨어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직을 한 지 벌써 10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나는 가끔 '아, 힘드네. 확 관둬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다. 뭐, 나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겪을 감정일 것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저마다 자신만의 '떡볶이' 혹은 '별 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아서 즐겨보면 어떨까?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이다. 지금 자신의 상황에 대한 판단, 부정적 감정들을 잠시 중지하고 말이다. 어쩌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회사를 관두고, 다시 이력서를 써야하는 번거로움과 '아~그래도 예전 회사가 좋았는데' 하는 후회를 겪지 않게 해줄지도 모 일이다.


by 젊은꼰대 흡수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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