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방법일수록 잘 외워진다
(조금은 긴) 머릿말
안녕하세요 후랑입니다! 벌써 시간이 흘러 4월 중반이 다 되었네요. 이제는 올해 신입 로스쿨생인 분들도 중간고사를 경험해보았을 것 같습니다. 시험을 쳐보면 보통 자신의 공부방법에 대해 반성해보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계획을 새로 세워보지요. 올해 초부터 제 글을 읽고 적용해보셨던 분들 중에는 1) 후랑 님 글이 너무 도움이 되었어!라는 분도 있을 것이고(저의 희망사항에 불과할지도..), 2) 후랑 님 글 중에는 나한테 잘 맞았던 것도 있지만 좀 안 맞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라는 분도 계실 것이고, 3) 후랑 님은 거짓말쟁이야(ㅠㅠ)라는 분도 분명 계실 것입니다. 3가지 반응 중에 정답은 무엇일까요? ‘전부’ 정답입니다. 제가 첫 글에서 살짝 말씀드렸던 것처럼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자신이 개발한 방법”이고, 여러분은 지금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행착오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끝까지 포기를 하지 않는 것! 여기까지 오신 분들은 메타인지가 매우 뛰어난 분들이기 때문에 분명 끝까지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다보면 좋은 결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해오셨으니까 앞으로도 파이팅하세요! 오늘은 “외우는 방법”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의 내용들은 아래 URL 참고 부탁드립니다.
1. 로스쿨 내신 공부법 - 공부 방향
https://brunch.co.kr/@hurang/12
2. 로스쿨 내신 공부법 - 필기 정리 자료 만들기
https://brunch.co.kr/@hurang/13
3. 로스쿨 내신 공부법 - 사례 풀이에 관하여
https://brunch.co.kr/@hurang/14
[참고] 저는 아래 ‘외우는 방법’을 위 글에 따라 1) 내용을 1~2회독 하고 2) 정리자료를 만든 다음에 그 정리자료를 만드는 것을 전제로 작성하였습니다.
‘암기’ 개괄
솔직히 이 글을 읽으실 분들은 이미 모두 ‘암기의 귀신’들이기 때문에 외우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정말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로스쿨 밖에서 배운 과목의 암기법과 로스쿨 과목의 암기법은 약간 달랐으므로 한번 공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전 글에서 자주 말한 것처럼 법학은 ‘매우 크고 정교한 시계’와 같아서 1) 양이 무지막지하게 많으면서도 2) 그 구조가 정치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1) 많은 양의 지식을 효율적으로 외워야 하는 한편 2) 그 많은 지식의 ‘위치’까지 외워야 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법학 지식을 외우는 것은
‘메모장에 적힌 하나의 긴 글.txt’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폴더가 겁나게 많은 ‘P드라이브’을 통째로 머릿속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럼 아래에는 1) 많은 양의 지식을 효율적으로 외우는 방법과 2) 지식의 위치를 외우는 방법을 나누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많은 양의 지식을 효율적으로, 다신 까먹지않도록 외우려면?
(1) 현출(output)의 중요성
무언가를 외우는 방법에는 눈으로 읽기, 소리내서 입으로 읽어보기 등 다양한 방법이 포함됩니다. 이중에서도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현출’입니다. 현출의 암기 효과는 정말이지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으실 모든 분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중고등학생을 과외할 때 ‘어? 이 개념이 이렇게 명쾌하고 잘 외워지는 개념이었나?’라고 생각하신 적 있으시죠? 한번 누군가에게 가르쳐보면 그 내용은 머릿속에 박혀 잘 지워지지 않죠. 그래서 (너드같지만) 저는 변호사시험을 준비할 때 너무너무 안외워지는 내용은 점심시간에 10분 정도를 내서 친구들끼리 하나씩 서로 설명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안잊어버리게 되요. 신기하죠.
이렇게 뛰어난 방법인 현출의 단점은 ‘시간이 너무 오래걸린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릿 것처럼 내신 범위만 외워도 그 양이 엄청나기 때문에 한 쟁점 한 쟁점 모두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식으로 현출을 하면 아마 우리는 생애 안에 로스쿨을 졸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암기 효과를 약간은 줄일지라도 시간 대비 훨씬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2) 현출 방법 - 퀴즈
그래서 제가 생각했던 방법은 ‘혼자 간단한 퀴즈 내고 맞춰보기’입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것 같긴 하지만 퀴즈를 푸는 과정에서 답을 연상해내야 하기 때문에 ‘소극적인 현출’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속도는 위에서 서술한 적극적인 현출보다 훨씬 빠르죠. 퀴즈가 문제인 동시에 특정 개념을 연상하도록 길을 가르쳐주는 가이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에요. 퀴즈를 푸는 방식으로는 (시험 일주일 전 내용이 충분히 익숙해진 경우) 시험 전 범위를 하루만에 복습할 수 있습니다.
(3) 퀴즈를 만들 때 유의할 점: 내용을 최대한 작은 조각으로 쪼갤 것!
막 영어 단어를 배우기 시작할때를 기억하시나요? 앞면에는 영어 단어가, 뒷면에는 같은 의미를 지칭하는 한글 단어가 적힌 카드들을 펼쳐두고 앞면의 영어를 보면서 뒷면의 한글이 무엇일지 예측해보는 게임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현출을 도와주는 퀴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카드에 적힌 단어가 “Megadiversity describes countries with very high levels of biodiversity”라는 긴 문장이라고 생각해봅시다(위 영어문장은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랜덤으로 발췌한 것이고 맥락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면 10번 반복해도 그 뒷면에 있는 한글의 의미를 떠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쉽게 외우려면 아래와 같이 여러개의 단어들로 카드 6개로 쪼개 만들어야 합니다. (Megadiversity / describes / countries / with / very high levels of / biodiversity) 6개의 카드를 보면서 학습을 한 뒤 답을 무리 없이 연상할 수 있을 때 심화 버전으로 긴 문장으로 만든 1개의 카드로 학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법학 퀴즈 만들기 예시
법학도 마찬가지로 최대한 지식을 쪼갤 수 있는 단위로 쪼개어서 퀴즈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퀴즈 자체로 답을 연상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2. 정리자료 만들기>에서 공부했던 범위인 법관의 제척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 법관의 제척 이유는? < 일단 퀴즈가 요구하는 답안의 범위가 매우 넓고, 몇 개의 답을 얘기해야 하는지 퀴즈에 적혀있지 않으므로 연상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좋지 않은 퀴즈입니다. 이 퀴즈를 바꾼다면 ‘법관의 제척 이유 7가지는?”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답안이 7개나 되므로 퀴즈로 활용하긴 어렵습니다)
- 법관의 전심관여에서 ‘전심관여’란? < 답이 너무 브로드하기 때문에 역시 좋지 않은 퀴즈입니다. 답을 ‘서술형’으로 적어야 하는 퀴즈는 되도록이면 만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법관의 전심관여에서 ‘전심’에 소송상 화해가 포함될까? < Yes or No 로 답변할 수 있고, 질문의 내용도 매우 구체적이고 좁으므로 좋은 퀴즈입니다.
아예 아래 왼쪽 정리자료를 기반으로 퀴즈를 만들어보면 아래 오른쪽과 같습니다.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죠? 왜냐하면 똑같은 프레임에서 문장의 끝부분만 살짝 지우고 물음표를 단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리자료를 만들 때 ‘한 문장마다 하나의 개념만 들어가도록 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지식을 작은 단위로 쪼개야 학습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국 정리자료의 한 문장마다 하나의 퀴즈가 됩니다. (1문장 = 1퀴즈)
[참고] 서술형 답안을 외울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문장에 빈칸 만들기’를 활용하면 서술형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지 않고 키워드 중심으로 외울 수 있어서 효율적입니다.
개념의 위치를 함께 외우려면?(구조화된 암기)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법학에서는 개념 자체를 외우는 것 뿐만 아니라 개념의 위치(혹은 개념의 층위)를 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정리자료를 만들 때 ‘서식 기능’을 활용해서 개념의 층위가 세로로 드러나도록 만들라고 했었죠. 위에서 제가 퀴즈 예시를 만든 것을 보고 눈치채셨겠지만, <외우는 자료>를 만들 때 이 법칙이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비유해서 말씀드리자면 <정리자료>는 폴더 카테고리마다 파일들이 가득 차있는 것이고 <외우는 자료>는 폴더 카테고리만 남기고 안의 파일은 삭제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우는 자료>에서 폴더명만 보고 안에 있는 파일(내용.txt)가 무엇인지 맞추는 것이죠. 만드는 방법은 정리자료를 만드는 방법에 비해 간단한데, 정리자료의 프레임을 그대로 두고 문장을 편집하는 식으로 작업하면 개념의 위치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암기를 시작해보자
학기가 시작되고(3월) 교과서를 1독하고, 자료를 만들고, 외우는 자료도 만들면 이제 시험이 한달 남짓 남게 됩니다. 이제는 진짜진짜x10 암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외우는 자료를 위처럼 매우 고생스럽게 만들었으니 이걸 이용해서 외워봐야겠죠! 제가 암기자료를 외웠던 방법을 2가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1)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표시하기
저는 퀴즈를 풀고나면 그 옆에 알면 O 모르면 X 아리까리하면 △ 표시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회독을 반복할 때 모르는 X 표시한 것만 모아서 반복할 수도 있어서 좋습니다. 회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면 그 옆에 다시 O 를 추가하고 여전히 모르겠으면 그 옆에 다시 X 를 추가합니다. 회독을 여러번 반복하면 아래 그림처럼 됩니다. 그래서 어떤 개념에 내가 강하고 약한지를 한눈에 알 수 있어 편합니다.
(2) 전체 회독을 한 다음엔 일부 회독만 하기
물론 처음부터 끝가지 1회독을 한 뒤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2회독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하면 1)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 2) 아는 내용도 쓸데없이 한 번더 외우게 된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입니다. 한 학기 정도 공부를 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법학은 ‘아는 내용을 똑같이 뚫어지게 반복해서 보는 것’보다 ‘모르는 내용을 한 두번이라도 쳐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는 내용은 한번에 잘 외워지지만 모르는 내용은 죽어도 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위 방법 대신 1회독을 한 다음엔 다시 1회독을 하는 대신 X표시만 한 퀴즈만 골라서 반복함으로써 약 0.5회독만 했습니다. 그 다음에 3회독 할 때에는 다시 전체회독, 그 다음에 회독은 다시 틀린 부분만 회독.. 이렇게 하면 틀린 부분만 골라서 복습할 수 있어서 효율적입니다.
맺음말
이번 글로 제가 처음에 기획했던 <내신 공부법>은 거의 끝난 셈입니다. 판례 정리같은 작은 주제들이 있긴 한데 그것은 올릴지 말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시간이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허락된다면 앞으론 <변시 대비법>을 다뤄보고 싶습니다. 혹시 변시 대비로 넘어가기 전에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오늘도 모두 파이팅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