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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Dec 21. 2023

부하직원들이 욕하는 김 팀장의 소통법

Envorinment _ 안전감 _2. 리더의 소통

"내가 말이야..."

Tsil 출신 김 팀장은 입술을 일자로 하고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말을 잠시 끊었다.

"그동안 가만 지켜보니까. 이건 일을 하자는 건지, 말장난을 하자는 건지, 흉내를 내자는 건지 좀 그래..."

태백을 포함한 구 조직문화팀원들은 출근과 동시에 회의실에 불려 와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일이 진행되고 있으면 진행된다, 문제가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보고도 없이... 너네 맘대로 그렇게 일해도 되는 거야?"

"저희는 팀장님께 다 구두로 말씀드렸고, 현재 진행 중인 것들은 대부분 루틴 한 것들인데.. 무슨 보고가 없으셨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김 과장이 공손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김 팀장의 말을 되받았다.


"그러니까 너네가 아직도 중견기업 틀을 못 벗었다 소리를 듣는 거야. 회사라는 게 체계가 있고 전부 문서와 근거와 데이터로 돌아간다는 걸 몰라? 이건 뭐 구멍가게도 아니고... 그냥 말로 전달하면 끝이야?"

"저희는 이런 식으로 일을 쭉 해왔고..."

"가만...우린 이런 식? 그럼 나는 너희 방식이 이러니까 예 알겠습니다. 잔말 말고 따르라는 거지?"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처음 오셨을 때 이미 팀 팩트 sheet와 함께 현재 진행사항 등 현안에 대해서 문서로 다 보고 드렸고 그 이후의 일들은 루틴 한 일들이 대부분이라 구두로 말씀드리면 되는 걸로 알았습니다."

"야, 김 과장. 너 상무님 스타일 알아 몰라? 50년 전통 Tsil이라는 대기업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야. 타당한 근거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신다고. 물론 나 역시 그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이고. 언제까지 이렇게 주먹구구 체계도 근거도 없이 일할 건데?"

김 팀장은 오른쪽 검지를 펴 제 관자놀이에 꾹꾹 찌르며 언성을 높였다.

"너네들은 이게 없냐? 뇌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거야? 까라면 까지 뭔 말이 그리 많아? 너넨 주둥이로 일하냐?"

"팀장님 말씀이 너무..."

"가만있어.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부족했습니다. 앞으로 더 신경 쓰겠습니다."

김 과장이 발끈하는 장 대리를 제지하며 고개를 숙였다. 장 대리는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지만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분을 삭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니, 씨발! 정말 뭐 같네..."

"대리님 참으세요."

"뭐 그리 잘났어 지들은? T그룹 중에서도 핫바리에 캐시카우도 없어서 십수 년째 비실대다 정부에 로비질해서 우리 회사 거저 먹다시피 합병하고 기사회생했다 평가받는 주제에..."

합병과 함께 연초에 새로 부임한 경영지원실장(상무)와 경영지원팀장은 대기업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MZ로 오면서 각각 상무와 팀장으로 승진 발령된 탓에 의욕 역시 차고 넘쳤다.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대기업 출신답게 의전과 일의 형식만큼은 집착했다. 


"앞으로 MZ인터내셔널은 환골탈태를 해야 할 겁니다. 그동안 쌓아온 여러분의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 T그룹 같은 큰 우산이 필요한 것이고, 여러분들은 이제 우리 Tsil의 식구로서 손발이 된다는 자세로 본사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뛰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상무는 첫날 취임 일성에서 묘한 메시지를 남겼다. 몇몇 감 좋은 MZ사람들은 '손발, 본사' 라는 단어에서 '머리는 T가 할 테니 너희는 그냥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라'는 비하성 의도를 짚어내고 분개했다. 상무는 종종 회의석상에서도 '공장'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속마음을 드러냈다.


김 팀장 역시 그와 다를 바 없었다. 새로 맡게 된 팀의 팀원들에게 서슴없이 "뇌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느냐"라는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배경에는 겸손하지 못한 개인의 성품은 물론 피합병회사인 MZ와 그곳의 사람들을 깔보는 점령군의 시각이 짙게 깔려 있었다.


사실 태백의 입장에서 T그룹과의 합병은 두려움보다 기대가 더 큰 이벤트였다. 내실 있고 성장일로지만 누군가에게 설명이 필요한 중견기업 소속이었다가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대기업 소속이 되었다는 의미는 꽤 컸다. 부모님 역시 그 소식을 듣고 내심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몇몇 가까운 친척과 이웃들에게 은근슬쩍 그 사실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T그룹의 모체라는 명성만 있을 뿐 패션업계에서 이미 한물 간 올드보이 취급을 받는 데다 군데군데 빈틈이 보이는 엉성한 조직구조, 옥상옥 수직 명령 체계를 마치 절대 진리인양 떠받드는 점령군? 의 일하는 방식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태백의 인식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의 이름값이 한낱 신기루일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


"뭐 먹을래? 김 과장님은요?"

"된장"

"저는 순두부"

식당 앞은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11시 40분, 점심시간이 본격 시작되기 전이지만 일본인들에게 알려졌는지 '오이시소~" 따위 일본어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다행히 회전속도는 빨라 10분 만에 식당에 들어올 수 있었다.


"모태백, 넌 어떻게 생각하냐? 지금 우리 팀, 그리고 팀장이라는 사람..."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요, 일단은 그만두신 고 팀장님과 너무 비교가 된다는 정도..."

"저 인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거야. 5대 대기업 출신이라는 거 그거 하나 빼면 우리 회사 사람들보다 뭐 하나 나은 것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 상무 입네 팀장 입네 뻐기는 꼴을 보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라고. 정말... 능력도 능력이지만 인성 자체가 안된 사람들 아니냐? 상무라는 사람부터..."

상무는 연초 임원, 팀장, 현장 리더 워크샵에서 주사를 부려 입방아에 올랐다. 만취 상태로 저보다 5살은 더 많은 현장제조라인 최고참 리더를 하대하다 못해 뒤통수를 치고 욕설을 내뱉은 사건은 회사 전체에 입소문으로 퍼졌다. 문제가 커지자 이렇다 할 사과도 없이 기억이 전혀 없다고 발뺌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그나저나 고 팀장님 소식은 들었지? 그 양반이야 뭐 실력이 없어 인품이 부족해? 오히려 여기 나간 게 잘 된 거라 믿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D 社 임원으로 가실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장 대리는 절반 정도 남은 하얀 쌀밥을 양푼에 쏟아붓고 된장과 무생채,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비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도 따라가고 싶네요."

"어허.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 내가 먼저야..."

"무엇보다 팀장님이 좋았던 건,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알고 계셨다는 점이에요. 저 같은 신입 이야기도 경청하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기회를 많이 주셨죠. 진짜 놀랐던 건 자신의 단점을 묻고 확인하고, 그렇게 제삼자의 눈으로 알게 된 것들을 고치거나 다듬으려고 애쓰셨다는 점이었어요."

"맞아. 같이 일하면서 왜 안 맞는 게 없었겠어. 소통이 안 되는 부분도 왜 없었겠냐고. 각자 성향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른데. 핵심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되도록 들으려 하고 그걸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잃지 않으려는 그 노력의 지점이 참 좋았다는 거지. 자기가 틀렸으면 틀렸다는 걸 딱! 인정하고, 잘못되었다 싶으면 고치려고 노력하고, 대부분의 리더들은 그걸 잘 못해."

장 대리는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김 과장 눈치를 쓱 살피며 덧붙였다.


"물론 우리 김 과장님도 그걸 잘하시는 분이긴 하지..."

"비행기 태우지 마라. 나 그런 사람 아니다."

"맞아요. 비록 1년도 안된 짧은 기간이지만 저도 많이 배웠죠. 스스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도 됐고, 새 팀장님을 겪어 보니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구나. 빈말이 아니라 팀장님, 과장님, 대리님 같은 분들 만난 건 운이 좋았던 거구나. 그런 사실도 알게 됐고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이 그렇지 않은 것일 수 있겠구나..."

"어느 위치에 올라서면 일단 보이는 게 달라진다는 말 들어봤지? 그 자리를 지키려면 어떻게든 위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이게 인정받는 길이구나 깨닫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가치관이나 기준은 개뿔, 밑을 잘 안 보게 되는 거지. 현재의 내 포지션, 그리고 거기에 이르는 동안의 궤적 자체가 이곳에서 잘 살아왔구나, 이렇게 해야 성공하는 거구나, 이게 정답이구나라고 확인해 주는 증거가 되는 거야. 그 순간부터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

"자신의 궤적을 정답인 것처럼 믿게 된다...그거 정말 무섭네요."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쩌냐? 무슨 말이 통해야 말이지. 뭔 말만 하면 T그룹은 어떻네 구멍가게도 이렇게 안 하네... 들어볼 생각도 없이 앞뒤 꽉 막힌 데다 집안 차이 난다고 괄시하는 시어머니, 시할머니까지 모시게 된 며느리 꼴인데..."

김 과장은 '며느리 꼴'이라는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지만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가 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했다. 태백은 흘끗 김 과장을 쳐다봤다. 어쩌면 조금 전 미팅룸에서 받은 팀장의 모욕을 홀로 묵묵히 견디는 중인지도 모른다. 고 팀장과 6년을 함께 일했다는 김 과장은 여러모로 고 팀장과 닮아 있었다. 좀처럼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남 탓 하는 꼴을 본 적이 없는 남자. 실수와 실패에는 앞으로 나서고 성과에는 조용히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상남자. 고 팀장이 떠난 후 김 과장이 팀장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불과 한 달여 사이에 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듯 돌변한 사내 분위기가 믿기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고, 회사는 온갖 소문과 불안감에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태백은 김 과장, 장 대리마저 잃게 될까 두려워졌다.


"커피는 제가 쏘겠습니다. 뭐 드실래요?"

 10여 분 만에 식사를 마친 일행은 태백의 제안으로 백다방에 들어섰다. 


"어? 태백씨?"

인파 속, 눈에 단번에 들어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윤 책임이었다.




소통 참 문제다. 저마다 소통 활성화를 외치지 않는 회사가 없지만, 당최 소통이 잘되고 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당신 회사의 소통은 어떤가? 사무실에서, 회의실에서, 보고자리에서 어떻게? 말은 좀 통하는가? 대체로 누구와 소통의 문제를 겪는가? 


안다. 대다수는 상사와의 문제라는 걸. 동료, 부하직원과의 불통도 있을 테지만 직속상사와의 그것만큼 본격적이고 중대하지는 않을 터. 이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들이라서 일까? 물론 그런 경우도 많다. 천성이 이기적이고 권력지향적이며 극단적으로 결과지향적인 데다 성과를 위해 사람도 도구로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단순 불통 정도면 그래도 견딜만한데, 인신공격과 욕설 등 모욕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 문제적 종족들도 꽤 된다. 이들은 조직의 안전감을 뿌리째 뒤흔들고 좋은 인재들을 떠나게 만들어 회사의 장기적 성과와 성장에 큰 해를 끼치는 원흉임이 틀림없다.


인간은 만 5세가 되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관점획득(perspective taking) 능력이 생긴다. 이는 대뇌 전운동피질 영역에 자리한 거울뉴런의 작동으로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것인 듯 받아들여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능이지만, 애초에 이 기능에 선천적 장애를 가진 감정불능자(소시오패시, 중증 자기애, 알렉시티미아 등)가 전체 인구의 4~10% 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에게 욕설을 퍼붓고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무례한 리더들의 대다수는 아마도 이들 종족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원래는 안 그랬는데, 어떤 자리에 오르면서 그렇게 변한,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데 있다. 공식적인 직책이 주어지면 개인의 자질과 태도, 의지 같은 평소의 가치관이 조직의 생리에 직접적으로 도전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개인은 거기에 굴복하고 만다.


이는 주로 사회적 문제, 환경 탓일 경우가 많다. 자라는 과정에서 점수로 줄 세우는 경쟁위주의 교육을 받다 보니 협력, 상생, 희생 따위는 개나 주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의 삶을 살아왔을 가능성, 조직과 상사의 의중에만 초점을 맞추며 십수 년을 일하다 보니 그 외의 대상에 대해서는 관점획득(perspevtve taking) 능력이 현저히 퇴화되었을 가능성 따위다.


고위직에 오를수록 더 심화되는데, 그 자리 자체가 지난 시간 자신이 행해온 모든 판단과 행동들이 정답에 가까웠음을 증명하는 증거로 여기게 되면서 자기 확신은 더욱 공고해진다.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에드먼슨은 이를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왜 사람들은 질문하기를 꺼리는가? 소박한 실재론 naïve realism이라는 인지적 편견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인. 내 생각이 곧 다수의 상식이라는 착각.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내 생각이 곧 세상의 이치 라고 믿는 것.


물론 목표를 '가늘지만 길게 살아남기'로 정한 사람들에게야 더할 나위 없다. 이미 목표한 자리에 올랐고 임원이 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저 '지금 이대로'를 나직이 외치며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임할 뿐이다. 


이들은 더 이상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들과 소통을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조직에 동화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게 돼버린 탓도 크다. 팀역할 연구의 대가 매러디스 밸빈은 자신의 저서 [팀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가 기업계에서 만난 문제 있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제대로 몰랐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이 약점으로 꼽는 것을 오히려 자신의 장점으로 보았다. 이러한 착각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조직의 공식적인 리더가 되면 기대역할의 성격 자체가 바뀐다. 이제 개인이 아닌 조직 전체로 평가받게 된다. 부하직원들은 더 이상 동등한 인격체이자 함께 성장할 파트너가 아니라, 내 실적을 뒷받침해 줄 자원이자 도구로 재설정된다. 인간적 관계나 의리, 성취감, 보람 따위 이전까지의 가치는 조금씩 뒷전이 되고 자신의 목줄을 쥔 사람에게 잘못 보였다간 잃을게 훨씬 커진다는 조바심을 덤으로 얻는다. 자연히 초점은 인사권자에게 쏠리고 그들의 의도와 오더에 적합한 일을 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올라선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 역시 달라진다'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또 다른 본질적인 문제는 소통 자체에 대한 무지다. 소통이 정확히 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뤄지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실제 상황에서 정의를 내려보거나 적용해 보려면 턱 하고 막히기 일쑤다. 그렇지 않은가?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소통(疏通)

1.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표준 국어사전


다 아는 거잖아? 이거 모르는 사람이 있어? 싶겠지만 곰곰이 따져보자. 우리는 대개 소통하면 1번의 의미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잘 통하지 않아 문제'라고 한다. 인체로 치자면 혈관 구석구석 피가 잘 돌지 않는 경우다. 혈관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고 어딘가에 경화가 생겼을 수도 있다.


우리가 소통 문제에서 흔히 놓치는 건 2번이다. 통하긴 통하는데 왜곡되는 문제. 중요한 정보와 메시지들이 모종의 이유로 수시로 왜곡되고 변질되어 조직 내에 흐르는 경우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진짜 소통의 문제는 바로 부정확한 정보, 메시지의 유통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구조도 구조지만 더 큰 문제는 사람이다. 앞서 살펴본 꽉 막힌 리더들이 언로, 즉 정보가 흘러야 하는 중요지점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면 정보가 제대로 흐르지 않는 경화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정보 왜곡 또한 일상이 된다. Top에서 '로뎅'으로 이야기한 것이 중간 지점에서 '오뎅'이 되고 저 밑 말단 지점에는 아예 전달이 되지 않거나 어찌어찌 도달했더라도 '덴뿌라'로 변질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지는 이유다. 


<조-하리의 창>은 인간의 소통 메커니즘을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인지'와 '나에 대한 타인의 인지'라는 두 개의 축으로 하여 네 가지로 형태로 구분해 보는 도구다. 1/4분면 열린 창의 영역(Open area)에 위치한 사람이라면 소통에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는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대체로 투명한 소통이 가능하다. 


불통 문제를 겪는 조직의 리더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창 Blind area', '숨겨진 창 Mask area' 두 영역에 위치한다.



보이지 않는 창은 맹점(Blind spot)영역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 속한 리더들은 '독불장군형'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제 의지대로 밀어붙이는 유형이다. 좋게 보자면 카리스마가 있고 나쁘게 보자면 두려움을 야기하는 리더형이다. 주변인들이 자신에 대해 수군대지만 본인에게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남들은 다 자신의 단점에 대해 파악하고 떠드는데 본인만 모르는 형국이다.


숨겨진 창은 음지(Below spot)영역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 속한 리더들은 음흉형이다. 좀처럼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은 그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는다. 공식적인 관계 외에 사적 영역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관계는 늘 피상적이고 깊이가 없다. 


두 유형 모두 진정성 있는 소통이 이루어질리 없다.


자신이 겪고 알게 된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소박한 실재론 naive realism,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고 이런 성과에 뛰어난 사람들을 인정하는 조직문화, 맹점과 음흉함을 가진 꽉 막힌 소통 스타일. 이런 특성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조직이라면, 그곳의 소통이 어떨지 안 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소통, 문제가 있다면 MRI 찍듯 세분화해서 들여다보라


그저 소통을 잘하자!라는 표어나 포스터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런 쓸데없는 일을 벌일 시간에 다음의 세 가지 관점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라.


1. 소통을 위한 구조는 제대로 갖춰져 있는가?

2. 어느 지점에서 경화와 병목이 생기고 있는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구조인가 사람인가?

3. 생성된 정보와 메시지는 정확히 적시적소에 도달하는가? 왜곡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1번의 솔루션은 명확하고 간단하다. 소통 체계를 만들어 공표하고 이용토록 하면 된다. 문제는 2번, 3번이다. 대체로 소통의 경화와 왜곡을 일으키는 것은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소통 체계의 중요지점에 위치한 리더들이다. 이들이 메시지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경화와 왜곡이 일어난다. 위에서 들은 메시지를 아예 전달하지 않거나 뒤늦게 전달하면 이는 경화다. 메시지를 자기식대로 해석하거나 제대로 듣지도 않고 대충 어림짐작으로 전달하면 이는 왜곡이다. 


이런 경우는 우리 주변에 흔하다. 리더들은 항상 바빠서, 자신만의 생각이 너무 강해서, 신념이 있어서 등의 이유로 취사선택하거나 필터를 씌워 재해석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메시지를 전달받으면 그 진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자신의 의견을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조직에 전달해야 한다. 중요한지 아닌지 판단하지 말고 일단 원본 그대로를 전달해야 한다. 판단하는 일은 그다음이다. 팩트만 전달된 상태로 함께 진의를 논의하라.



자신의 내면을 보는 툴을 활용하라 


앞서 소개한 조-하리의 창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하라. 나는 어떤 소통형태로 구성원들에게 각인되어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맹점영역(Blind) 카리스마형(이라고 쓰고 독불장군형이라고 읽는)이라고 생각된다면 입을 막고 들어라. X자가 표시된 마스크를 쓰는 것은 가볍다. 한 번의 퍼포먼스로 메시지를 줄 수는 있어도 그 행위 자체가 유희적이 되어선 안된다. 스스로 말하기와 듣기의 비중이 어느 정도 되는지 수시로 체크하라. 20:80 비율이면 이상적이겠지만 하다못해 50:50은 지켜라. 상대를 미지의 땅으로 생각하라. 새로 탐험할 기회의 땅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라 생각하고 그 땅을 탐사하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처음 발견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는다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들어라


마스크(Mask) 영역이라면 술 먹고 한 번 망가져라. 아 저 사람도 나름의 고민과 아픔, 상처가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을 보여줘라. 늘 진중하고 무겁고 실수 없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사람을 더 각박하게 만든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는가? 누구나 실수하고 고민이 있고 상처가 있고 약점이 있다. 취약점을 드러내라. 괜찮다. '저 인간 속을 모르겠어' 라는 인식은 소통을 방해할 뿐이다.


소통은 결국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유형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따라 듣고 말하려는 비중을 조절하는 노력에서 활성화된다. 



라포(Raport)부터 만들라


소통은 뭐니 뭐니 해도 친밀한 관계에서 원활해진다. '회사가 동호회냐?' 라고 호통치며 나무랄 일이 아니다. 회사도 엄연히 사람들이 만든 관계이고 집단인만큼 인간적 유대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라포(Rapport)는 두 사람 이상의 관계에서 상호신뢰관계 형성된 상태를 말하는 심리적 용어다. 이른바 '이심전심'은 라포가 형성된 친밀한 관계에서만 만들어진다. 같은 팀이라도 라포가 생기기 전이라면 소통은 대개 무미건조하게 일어난다. 공적 관계에서 최소한의 정보 교환만 이루어지는 정도로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일어날 수 없다. 


팀 내 라포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리더다. 리더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의 준동을 경계하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으며 언제나 틀릴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리더의 노력과 영향으로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면 이렇다 할 목적을 명시하지 않고도 상대의 의도를 알아듣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는 소통의 최적화가 완성된다. 물론 물리적 시간이 꽤 걸린다. 


그다음은 목적, 목표가 명확한 소통을 일상화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는 왜 생겼는지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묻는 일을 습관화해야 한다. '알아서 하겠거니' '내 뜻을 알아들었겠거니'는 라포가 생긴 이후라도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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