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스 leex Dec 28. 2023

'해봐서 안다'는 그 말

Environmnet _안전감_ 3. Risk taking

"여긴 어떻게?"

"저... 그룹사 홀딩컴퍼니로 이동했어요..."

"L社 홀딩컴퍼니라면 우리 회사 바로 옆?"

이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된 케이스인 거죠?"

"그룹 인재개발본부 피플전략팀장으로 승진 이동했어요..."

"와 축하해요..."

"T그룹과 합병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누구?"

양손에 블루보틀 커피잔을 든 남자가 윤 책임, 아니 윤 팀장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180cm인 태백보다 손가락 두어 마디는 더 큰 키와 균형 잡힌 호리호리한 몸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카멜색 롱코트에 검정색 터틀넥, 카키색 슬랙스를 갖춰 입은 남자는 한눈에도 돋보이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아, 본부장님..전에 외부 교육에서 알게 된 분인데...회사가 근처라..."

"안녕하세요? 이명현입니다. 이나가, 아니 윤팀장이 이렇게 친근하게 먼저 인사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의외네요..."

본부장? 얼핏 삼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지만 직책에 비해 지나치게 어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턱을 15도 정도로 치켜들고 눈을 아래로 내리까는 듯한 시선, 검정 뿔테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은 날카롭게 번뜩였고 유난히 얇은 윗입술은 미소를 머금은 듯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인상을 풍겼다.

"아, 몰랐습니다. 저...저는 모태백이라고 합니다..."

"회의 곧 시작인데 더 이야기를 나눌 건가?"

"아, 아닙니다. 들어가야죠. 태백 씨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럼 이만..."

이나는 태백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남자를 뒤따랐다. 두어 발짝을 뗀 후 고개를 반쯤 돌려 태백 쪽으로 시선을 주는 듯했으나 이내 종종걸음으로 남자와 보폭을 맞추었다. 한순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한바탕 장대비를 쏟아낸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능청 떠는 한여름 소나기처럼, 남자와 이나의 뒷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음에 보자던가 하는 형식적인 인사도 없이...


"저 여자냐?"

"아...네...예? 뭐가...요?"

"왜 너 한참 정신 못 차리고 실연당한 사람처럼 굴던 때 있었잖아..."

김 과장은 그들이 사라진 방향에 여전히 시선을 두고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휘유, 엄청난 미인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묘한 데가 있네. 시선을 뺏는달까? 그나저나 저 두 사람 꽤나 잘 어울리지 않아?"

"누구요? 아, 그 멀대 같은?"

우연이 두 번, 세 번 그 이상이 되면 인연이라고 했던가? 하필 근처로 오게 된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본부장이라는 남자는 이나와 어떤 사이일까?


[깨톡~]

'모태백, 내방으로'

김 팀장이었다.


"앉아."

"예 팀장님..."

"입사한 지 얼마나 됐지? 1년 넘었다고 했나?"

"네, 작년 1월 1일부 입사 발령받았습니다."

"이제 사회생활 감좀 잡았겠네?"

아직 멀었다고 해야 할지, 어느 정도 눈치는 생겼다고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뭘 그리 뜸을 들여? 신입이면 신입답게 좌고우면 말고 느끼는 대로 답해야지..."

거친 흙으로 빚은 거무죽죽한 항아리에 칼로 긋다 만 것처럼 쫙 째진 김 팀장의 두 눈사이로 콩자반만 한 검은자위가 위아래로 굴러다녔다. 왼쪽 입술 끝이 비대칭으로 올라붙어 인중 옆 팔자주름이 유독 더 깊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어떤 거 같아?"

역시나 그 즉시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김 팀장이 묻는 말에 대한 답이 즉시적으로 나오지 않게 됐다. 왜 묻는 걸까?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는 동안 시간단차가 생긴 것이다.  T그룹 출신 상무와 팀장이 부임한 초기만 해도 김 과장과 장 대리의 소통 패턴은 기존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고 팀장은 물론 기업문화실장, CEO와의 소통에서도 머뭇거림이 없던 터였다.


새 경영진들 앞에서도 자유롭게 발언을 하고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으나 되돌아오는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처음부터 얼굴을 구기고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쳤다. 니들이 뭘 아냐? 얼마나 했냐 이 일? 나 T그룹 출신이야. 20년 차야. 너희보다 회사밥을 먹어도 수만 그릇은 더 먹었어. 따위 자잘한 모욕이 더해졌다. 김 과장과 장 대리, 모태백은 그렇게 입을 닫기 시작했다.


"잘...모르겠습니다."

"몰라?"

"예, 잘 모르겠습니다."

김 팀장은 코웃음을 가볍게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벽장에 꽂힌 책을 한 권 꺼내 들어 후루룩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이라..."

김 팀장은 벽돌처럼 두꺼운 책을 펼쳐 들고 중얼거렸다.

"이런 책 누가 읽는 줄 알아? 약자들이 읽는 거야. 약자들이. 왜?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런데 그 비법이라는 게 세상 간단해야 하는데 이렇게 900페이지나 되는 걸 언제 다 읽고 본성인지 뭔지를 파악하겠냐고? 장식용으로나 쓰는 거지..."

태백은 김 팀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김 팀장은 책을 장식장에 꽂아놓고는 태백의 등뒤로 걸어와 오른쪽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야 모태백"

태백의 뒤쪽에서 오른쪽 어깨너머로 김팀장의 머리가 쑥 하고 들어왔다.  

"사람들을 조금 더 내보내야 할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누가 좋겠어?"

마치 귓속말을 하듯 목소리를 깔고 낮게 속삭였다.

"제게... 그런 권한이 있습니까?"

"권한이야 내가 주면 생기는 거고..."

"모르겠습니다."

"몰라? 일단 너는 나가고 싶지 않잖아. 그렇지? 이제 1년 됐는데...지금 나가면 억울하지? 요즘 대기업들 공채도 없어지고 취업 팍팍하잖아? 회사 입장에서도 작년에 뽑은 신입을 내보냈다 그러면, 어떤 말 나올지도 모르고 말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장 대리 말인데..."

태백의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조직 안에서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핵심 요인은 '자기 검열'이다. 어떤 사안에 의문이 생겨도 '내가 맞나?' 스스로 되묻게 되는 일. 이미 표면으로 명확히 불거진 문제에도 주변이 조용하면 말 한마디 보태기도 왠지 꺼려진다. 괜히 나서는 거 아닌가 싶다. 평소의 가치관에 명백히 위배되는 이슈를 포착하고서도 시끄러워질 것이 두려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학습된 무기력. 나 하나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어. 라는 합리화가 만연하다. 일정 시기,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전반에 그런 인식이 퍼져있다면 이미 텄다. 이런 문화 역시 쓴소리는 듣기 싫어하고 단 소리에만 반응하는 윗사람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음으로 양으로 바른말을 하면 찍혀서 쫓겨난다는 신화를 스스로 만들고 전래동화처럼 유산화해낸 탓이다.


마냥 비겁하다고 욕할 수만도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소속감, 일체감을 본능으로 타고 태어난 탓이다. 무리, 집단에서 소외되는 일은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집단 전체의 의견에 홀로 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집단생활을 통해 야생동물의 위협에 대처하고 식량을 확보하는 공동체로 진화해 온지 수십만 년, 이제는 그런 위협이 사라지고 굶어 죽을 걱정도 현격히 줄어들었지만 내면에 잠재된 소외의 두려움은 여전하다.


'좋은 게 좋은 거'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무적의 논리는 사회 전반에 여전히 뿌리 깊고 이런 인식은 종종 조직을 심각한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못 막는 '사건'으로 커지는 일도 잦다. 정당한 비판과 문제제기도 못하는 판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도전하고 실패도 두렵지 않다며 닥돌 하는 용자는 사실상 멸종위기종에 가깝다.


이쯤 되면 쉬쉬하는 문화, 적당히 덮고 넘어가는 문화가 정말 조직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 회사는 눈앞에 보이는 문제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해야 할까? 왜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도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못할까? 그저 입 다물고 있으면 적어도 나 하나만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미국 이스트만 화학 CEO인 마크 코스타는

"최고경영자로서 가장 큰 두려움은 직원들이 내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사의 리더는 자신의 약한 모습과 실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직원들도 실수를 솔직하게 보고할 수 있으니까요."

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런 인식을 가진 CEO의 존재 탓인지 이스트만 화학은 여전히 건재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부의 진실이 원활히 유통되지 않고 리더들의 눈을 가리는 조직치고 일시적 반짝을 넘어 롱런하는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려진 진실 속에 조직이라는 선박이 고객의 니즈라는 거대한 빙산을 들이박고 내부 구성원의 불신이라는 균열로 이어져 침몰하는 마당. 그 안에 속한 개인의 안전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웹툰 [미생]의 한 장면,

오 차장은 전무가 지시한 중국사업을 받아 추진하다 치명적 문제를 발견한다. 이른바 '꽌시'의 규모가 상식선을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 오 차장은 부장을 찾아가 문제제기를 하지만, 대수롭잖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오히려 진짜 사업은 그다음 건인데 인사로 끝낼 일을 왜 빨리 처리하지 않느냐며 닦달한다. 오 차장은 업무를 지시한 전무와의 면담을 요청한다. 결국 만들어진 자리. 오 차장은 재무제표를 근거로 이의를 제기한다.


"꽌시의 규모, 제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전무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역시나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못 박는다.

"그래,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부장도 아는 그 재무제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책임자로서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상식선을 넘어선 부분에 대한 정당한 이의 제기를 전무는 단 한마디로 묵살한다.

"너 이 일 얼마나 했냐? 한 십몇 년 했냐?

"..."

"나, 28년째야 이 회사, 이렇게 성장한 회사야."

상식과 데이터가 아닌, 연차와 파워게임으로 나가면 답이 없다. 고작 십수 년 경력의 차장이 수십 년 경력의 전무 앞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고,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폭탄을 안은 채 일은 계속 추진된다.


결말은 나름 선명하다. 오 차장과 함께 조사를 진행했던 중국지사의 내부 제보로 전무는 그룹 차원의 감사를 받게 되고, 오 차장의 지적대로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의 꽌시 공여가 입증되면서 사업은 무산된다. 전무는 징계를 받고 한직으로 밀려난다.  


'결과로 보여주려고 했는데' 라며 회한의 감정을 토로하는 전무. 만약 결과로 보여주지 못했다면 그땐 어떡할 텐가? 영업 3팀이 총알받이가 되어 모든 책임을 떠안고 사내 정치 놀음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성공의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의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착각에 빠질 가능성. 그렇다면 규칙이나 규율, 상식이라는 바운더리는 대체 왜 필요할까? 그 기준에 따라 소신 껏 일하는 부하직원들은 그 기준을 넘어선 상사의 말 한마디 '너 이 일 얼마나 해봤냐'라는 높은 사람의 말 한마디에 얼마나 자주 절망하고 스스로를 단속하게 될까?  


선의이지만 선을 벗어난 아집이 악화를 구축한다.




해봐서 안다고 하지 말라

완벽한 인간은 없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 소박한 실재론 naive realism은 자신이 겪고 보아온 것이 전부인 줄 아는 좁은 시야를 뜻하는데, 소통의 문제를 일으키는 대다수의 리더들은 스스로 이런 편향에 빠져 있다. 더 심각한 건 그런 편향에 빠져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드러내고 질문하라.


어제 정답이었던 것이 오늘도 정답일 거라는 착각은 조직을 위기로 빠뜨리는 지름길이다. 어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해왔고 그 방식이 100% 맞아떨어졌어도 오늘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어제까지의 영광과 실패는 통찰과 교훈만을 남겨둔 채 모조리 삭제하고 reset 한 상태로 오늘을 맞으라.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인간의 일에 100% 절대 진리란 없다. 인간은 다양성이 표준이다. 하물며 회사의 일에 절대 원칙이란 것도 없다.  리더십은 Fit → Mis Fit → Re Fit의 흐름으로 움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 임을 잊지 말라. 고이면 썩는 이유다.


어떤 경우이던 정당한 이의제기와 문제지적을 외면하거나 파묻으려 하지 말라. 구성원들로 하여금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하지 말라. 똑똑하고 통찰력 있는 부하직원들의 입을 한순간에 다물게 만드는 흑마법의 주문.


"내가 해봐서 아는데..."


제발 그 입 다물라.



생산적 실패와 소모적 실패로 구분해 대응하라

실패도 실패 나름이다.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소모적 실패',

장려하고 배움의 기회로 삼는 '생산적 실패'

두 부류로 구분해 '소모적 실패'는 지양, 페널티를 부여하고, '생산적 실패'는 장려, 보상하라.


'소모적 실패'는 규정과 절차,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데서 일어나는 실패다. 담당자의 부주의, 게으름, 열정 부족, 책임의식 부족 등에서 비롯한다. 이런 실패가 발생하면 마땅히 페널티를 주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소모성 실패에 대해서는 해고까지도 강행해 본보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소모적 실패는'는 교육과 마인드셋, 구체적인 지침과 시스템 개선, 보완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생산적 실패'는 이전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을 허용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다. 도전 과정 자체를 기록하고 역순으로 추적함으로써 실패의 원인을 찾고 통찰을 얻는 기회로 작용했다면 성공 못지않은 성과로 볼 여지가 크다. 이는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예방의 작용도 하지만, 뜻하지 않은 보물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브리콜라쥬 Bricolage는 그 자리에 있는 소재를 임기응변으로 사용하여 문화를 만드는 실천을 가리키는데,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과정에서 우연히 습득하게 된 노하우나 통찰, 기술 등을 뜻하기도 한다. 당장은 필요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중요한 자산을 우연히 얻게 되는 일. 도전하지 않았다면 아예 제로였을 소득을 만드는 과정이다.


'생산적 실패' 여부를 단위 조직의 도전적 과제 이행 근거로 보고 포상하거나 치하할 수 있다. 구글을 포함한 다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이른바 '실패파티' 혹은 '실패수당'을 전략적으로 시행하는 이유다. 다만 그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같은 유형의 실수, 실패가 재차 발생하면 그때는 첫 번째 유형의 실패 범주로 넣어 페널티를 부여한다.


새로운 도전! Risk taking! 을 백날 외쳐봤자 되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말 한다미 꺼내는데도 행여 찍히거나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 앞서 머뭇거리게 되는 문화라면, Risk taking은커녕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체념 속에 납작 엎드린 복지부동 연체동물의 군집만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부하직원들이 욕하는 김 팀장의 소통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