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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an 11. 2024

'회사'가 아니라 '김 팀장'을 떠나는 거다

Environment _ 소속감 _2. 진짜 리더

"여기 진로 한 병하고 꼼장어 주세요."

태백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서비스 어묵국물에 소주 한잔을 들이켰다.

"크~"

쓰다. 퇴근 전부터 눈이 조금씩 내리더니,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무심코 걷다 보니 종로 3가 포장마차 거리까지 와버렸다. 혼술은 머리 털나고 처음이다.

 

"뭐 이런 데서 회식을 해? 좀 좋은 데로 가자니까."

"이런 분위기 좋잖아요~"

"내 스타일 아니야. 불결하고..."

왁자한 분위기에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얼핏 낯익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한번 보면 좀처럼 잊을 수 없을 비주얼과 분위기의 소유자. 이나와 함께 있던 본부장이다. 태백은 마치 현상수배범이 경찰차를 보고 몸을 피하듯 화급히 의자를 돌려 본부장 무리를 등졌다. 포장마차의 주황색 비닐벽이 겨울바람에 흔들거렸다.

"여기, 꼼장어 나왔습니다. 아니, 총각 혼자 술 먹음서 면벽수도라도 하는 거야? 적적하믄 나라도 술동무 해줘?"

넉살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안주를 가져다 놓으면서 괜한 참견을 한다.

"아..아뇨...고맙습니다만 전 그냥 이게 편해요..."

태백은 모기만 한 소리로 들릴 듯 말 듯 답하며 손사래를 쳤다. 태백의 등뒤에 자리를 잡은 일행은 무심히 메뉴를 탐색하는 듯했다.


"뭐가 맛있으려나?"

"김 팀장, 꼭 이런데 와야겠어?"

"아이고 본부장님, 아니 형. 들려요. 톤좀..."

"너희도 학교 때 이런데 안 왔잖아?"

"처음엔 그랬는데, 일단 한번 체험해 봐요. 괜찮아요. 생각보다 맛도 있고 이렇게 서민 체험하는 거지 뭐. 아랫사람들 관리하려면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잖아요."

서민체험이라. 태백의 귀가 그 단어에 번뜩하고 반응했다. 본부장과 일행은 주인아주머니에 닿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췄지만 등을 맞대고 앉은 태백의 귀에는 선명히 들려왔다. 자리를 잡고서도 위생이 어떻니 툴툴거리기를 그치지 않는다. 하긴 본부장의 멀끔한 차림을 보면, 어두컴컴한 강남의 고급바에서 30년 산 몰트 위스키를 온더락으로 홀짝이는 게 더 어울리지 싶다. 태백은 시뻘겋게 양념된 꼼장어 두 점을 욱여넣고 질근질근 씹으며 쓴 소주 한잔을 더 따라 마셨다. 크~ 숯불향과 함께 매큰한 양념이 어우러져 술을 부른다.


"그나저나 윤 걔 어때요?"

"어떤 면이?"

"뭐 일이라던가..."

"맛있어"

"예?"

"이거 말이야. 이거 생오이."

본부장은 우적우적 오이 씹는 소리를 내며 말한다. 예상밖의 이나 이야기에 태백의 귀가 더 쫑긋 섰다.

"필요해서 올린 거야."

"그래도 너무 파격 아닙니까? 이제 겨우 서른 초반인 애를...두 단계나 건너뛰어서 발탁할 정도인지"

"회장님 건으로 앞으로 1~2년간 그룹이 힘들어질 거라는 거 알고 있지?"

"그럼요."

"파격은 독이든 성배와 같은 거야. 언젠가 망가진 조직 분위기를 책임져야 할 상황이 생기지 않겠어? 그걸 누가 수습해야 할까? 네가 할래?"

"아유 형님 왜 그러세요. 우리처럼 끈끈한 인연이 어디 있다고, 중학교-고등학교-대학까지 직속 선후배로 이어졌는데 어디 이게 보통인연입니까?"

"똑똑히 굴라고. 최고 코스만 밟아온 우리들이야...회장님을 근거리에서 보필해 온 그룹 전통에 오점이 있어서 되겠나? 제단에 올릴 제물은 싱싱하거나 뜨거울수록 좋아."


제물? 무슨 의미일까? 이나는 분명 자신의 본부장이 보기 드문 리더라고 했었다. 조직의 실패엔 앞으로 나서고 성과 앞에서는 부하직원에 공을 돌릴 줄 아는 진짜 리더라고 극찬하지 않았던가? 본부장과 선후배사이로 보이는 일행이 L그룹 내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길은 없지만, 사람을 두고 희생양이니 제물이니 운운하는 일에 선의가 깃들었을 리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그렇게 잘해주시는 거예요? 우리 이나 우리 이나. 본부 여직원들이 아주 난리던데..."

"정리할 거야."

"구 실장님과는 잘 돼 가시는 거죠?"

"언젠가는 내 진심을 알아주는 날이 오겠지."

"이야 이제 로열패밀리 입성이 현실로 다가오는 건가요...하긴 뭐 본부장님이야 집안이 꿀려 학벌이 꿀려 외모가 꿀려, 잘 어울리는 한쌍이지 뭐. 앞으로 전무되시고 사장도 되시고... 저희 못난 후배들 잘 이끌어 주시는 거죠?"

태백의 이나를 향한 촉이 다시 한번 발동했다. 그룹 내에 썸 타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본격적으로 사귀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사람의 부름으로 본사로 왔다고도 했었다. 대화의 시기와 그날의 분위기로 보건대 그 둘은 분명 보통 사이가 아닌 듯 보였다. 그런데 구 실장은 또 뭔가? 태백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악~!"

"어이쿠 죄송합니다."

"뭐야 씨 ㅂ "

별안간 본부장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손님 중 누군가 지나치며 본부장의 발을 밟은 모양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실수로 그만"

"눈을 어따 뜨고 다니는 거야? 이 구두가 얼마짜린지나 알기나 해? 씨발 재수 없게."

"씨발? 허 거참. 죄송하다잖아요. 실수로 그런 걸 가지고..너무 하시네..."

"죄송하다면 다야?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허...뭐요?"

"아 죄송합니다. 얼른 그냥 가세요. 조금 취하셔서 그러니까..."

일행 중 누군가 나서 기세등등한 본부장 앞을 가로막고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 원참. 사람이 실수 한 걸 가지고 사과를 했으면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지 젊은 사람이 말이야..."

50대 후반은 되었을 남자는 등을 떠밀리다시피 포장마차 밖으로 빠져나갔고 소란은 일단락된 듯했다.

"거지 같은 새끼가 어디서 내 발을 밟아 밟긴."

"참으세요."

"그래서 내가 이런데 안 온다고 했지? 어? 내가 이런 취급받을 사람이야?"

"아이 또 우리한테까지 그러실까?"

태백은 어느새 의자를 돌려 그들을 마주 보는 방향으로 앉은 상태였다. 여전히 기세등등 씩씩거리는 본부장을 묵묵히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나를 알아볼까?'

잔뜩 구겨진 본부장의 면상이 태백의 존재를 마침내 감지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팔짱을 끼고 표정을 정돈한다. 왼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더니 턱을 내리깔고 눈을 치켜뜬 채 태백을 빤히 주시했다. 두 남자의 시선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뚜벅뚜벅. 본부장은 태백 쪽으로 걸어와 그 앞에 우뚝 섰다.


"그때 그?"




리더.

이 단어만큼 진부한 용어가 또 있을까? 이 단어만큼 제각각으로 해석되어 쓰이는 낱말이 또 있을까?

'리더가 100명이 있으면 리더십은 101개가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리더는 범용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묘한 개념이다.


리더십 교육 현장에서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은 뭡니까?'라고 물으면 대개는 '솔선수범'이라는 모범답안이 나온다. 그다음 질문으로 '솔선수범하고 계시냐?'라고 물으면 대다수는 머뭇거린다. 자신 있게 그렇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어도 한번쯤은 의심해 본다. 정말일까? 실제 본인의 생각과 부하직원들의 생각은 전혀 딴판일 수 있으므로.


사실 리더의 솔선수범이 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남아 퇴근하는 것' 이라던지 '직원들이 힘들거나 어려울 때 외면하지 않고 술 한잔 사주는 것' 심지어 '휴가도 반납하고 회사를 위해 몸 바치는 것' 따위 엉뚱하다 못해 Z세대들을 기가 차게 만드는 말과 행동을 솔선수범으로 알고 있는 리더들도 많다.


좋다. 우리 기본부터 다시 살펴보자. lead의 뜻이 무엇인가? 에이, 뭐 그런 기본 중에 기본 같은 질문을 해?라고 생각한다면, 글쎄. 장담하건대 대다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을 빼먹고 일부 의미만 답할 가능성이 놓다.


사전을 찾아보면,

뭐야? 뻔한 말 아냐? 이걸 누가 몰라? 안 찾아봐도 다 알지. '이끌다'

맞다. 대다수의 리더들은 '이끌다'라는 해석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그런데, 부하직원들이 생각만큼 잘 이끌리던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괄호 안에 들어있는 문장에 눈길이 간다. '앞장서서' 익숙한데 낯설다.  


그렇다. 우리 리더들은 대개 '이끌다'에만 꽂혀 있었던 것이다. 뜻풀이의 맨 앞에 당당히 적혀 있지만 괄호로 묶여 있는 탓일까? '앞장서서'에 주목하는 리더들은 손에 꼽는다. 이게 왜 문제냐고?


*Leith 라는 인도/유럽어에 그 답이 있다. leith는 lead의 어원으로 '문지방을 넘다' 라는 의미다. 어디에도 '이끌다'라는 직접적 뜻은 없다. lead라는 단어의 핵심은 이끌다가 아닌 '앞장서서'인 셈이다.

*이창준 [리더십 문을 열다] 플랜비디자인


그게 그거지 무슨 차이? 아니다. 엄연히 다른 가치를 가진다. 바로 '희생'이다. 희생 없이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당기기만 하니 따라오지 않는 것이다.


드라마/웹툰 [미생]에 등장하는 김부련 부장의 별명은 '문턱주의자다' 뭔가를 결정하기 전까지 전방위적으로 재고 따지지만 한번 넘기로 결정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출세를 위해 정치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부하직원의 공적에 이름을 슬쩍 올리거나 빼기도 하며 제이익을 탐하기도 하지만, '내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인간적 애정 역시 끈끈하다.


"나 당신 애 돌잡이까지 다 본 사람이야. 애비가 돼서 건강 관리 못하는 건 용납 못해"

코피를 흘리고 잠시 기절했던 오 차장을 불러 호되게 야단을 치지만 그 이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깔렸다.

"바이어에게 주려고 샀는데, 가서 챙겨 먹어" 사실 내돈내산이지만 감정을 보이는 것이 쑥스러운지 김 부장은 바이어 선물이라는 거짓말까지 하며 말린 장어를 쓱 내민다. 이런 사람이 내 상사라면 일할 맛 나지 않을까?


문턱주의자 김부련 부장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최후의 리더십 본질은 '희생'이다. 영업 3팀에서 적발한 비리사건의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는 그를 향해 인사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는 사무실 사람들,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90도 인사를 하는 오 차장. 그들의 행동, 표정 하나하나로부터 그가 솔선수범이 무엇인지 알고 행동하는 꽤 괜찮은 리더였음을 엿볼 수 있다.

회사를 떠나는 김부련 부장

에이 드라마니까 저렇지 현실에 저런 상사가 어딨어?

그래서 제 이익에만 눈이 벌건 '나쁜 리더'가 득실거리는 시궁창 같은 현실을 받아들일 텐가? 이런 리더라면 좋겠다! 동경하고 상상하고 손에 잡히는 하나의 구체적 모델로 이미지화하고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나갈 수는 없을까? 마냥 판타지라며 폄하하고 체념하기엔 직장에서 보내야 할 우리 시간이 너무 길다.


기업들이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매니저'라는 개념도 알고 보면 정말이지 불편하다. manage의 어원은 '손'을 뜻하는 라틴어 마누스(manus)와 '말고삐로 말을 다루는 능력'을 의미하는 13세기 이탈리아어 마네기아레(maneggia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잘못하면 벌주고 잘하면 상을 준다'

오늘날 기업들이 당연하게 운영하는 보상체계가 어쩌면, 사람들을 말처럼 여겨 채찍질하고 당근을 주는 마네기아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관리'의 전형은 아닐까?


리더 개인의 공사 구분도 문제다. 리더도 사람이다 보니 개인의 고정관념, 선입견 또는 각종 연(학연, 지연, 혈연 등)에 따른 개인적 호불호에 이끌리기 쉽다. LMX(Leader Member eXchange) 라는 학술개념이 있을 정도다. 조직 내에서 리더는 부하직원을 인그룹(in group)과 아웃그룹(out group)으로 분류한다. 조금 더 사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부류와 공적으로만 연결된 부류로 나누어 관계를 만들고 상호작용 한다는 것인데, 지나칠 경우 팀 내 공정성 문제를 야기하고 조직 전체를 균열에 이르게 하는 핵심 원인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의 경우 눈에 띄게 지나치다.


리더 개인의 자기 인식 수준도 의심스럽다. 스스로의 리더십은 과대평가하고 타인의 그것은 폄하한다. 리더십 진단의 종류와 시대, 지역, 비즈니스 형태를 막론하고 자기 평가는 대략 80점대 수준으로 준수하다고 여기는 반면, 팔로워들이 진단한 리더의 리더십 수준은 대략 5~60점대에 그쳐 그 간극이 20에 달한다는 통계는 무척 흥미롭다(정확한 출처를 찾을 수는 없지만 컨설턴트와 각 기업들이 시행하는 리더십 진단에서의 평균은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한다).


현역시절, 수년간의 리더십 진단과 워크숍 진행을 통해 이 결과를 직접 확인한 바 있다. 약 6년여간 매년 시행한 리더십 진단에서 리더 본인 진단은 평균 80점대, 부하직원 진단은 평균 50~60점 초반으로 일관된 결과를 보였는데 약 20점 이상의 인식 간극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간극이 큰 조직일수록 리더 스스로의 자성보다는 구성원과 환경을 탓하는 경향이 컸다. 이 경우 조직분위기는 큰 개선 없이 평행선을 달리거나 더 악화되었다.


'나쁜 리더'는 이렇듯 다양한 형태로 우리 주변에 상시 존재한다. 경험과 연륜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선명한 단점들이 그 장점을 모두 잡아먹는다. 나쁜 리더일수록 자신의 실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오히려 스스로를 '좋은 리더'라고 착각할뿐더러 욕설, 인격모독, 일 가로채기 등 악행을 일삼으면서도 조직을 위해 자신이 '총대를 메는 것'이라는 사명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윗선'의 눈에 들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단기적 이익에 매몰된 기업일수록 타인을 착취한 결과로 만들어진 포장된 결과물로 사람을 판단하고 더 많은 권한을 쥐어준다. 이는 개인 차원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조직 전체를 망가뜨린다는데 그 심각성이 크다. 사람이 조직을 떠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나쁜 리더'의 존재 때문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여론 조사 기관 갤럽gallup 에 따르면, 직장인 중에 관리자들이 영감을 주는 리더십을 발휘해 자신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자신들이 성장하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사람들이 조직을 떠나는 이유가 조직 자체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오히려 관리자들 때문에 조직에 등을 돌린다.

[앞서가는 조직은 왜 관계에 충실한가] 랜디 로스


리더와의 관계가 사람들이 이직하는 주된 이유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갤럽의 CEO는 “직원들이 자신의 직무에 대해 느껴지는지는 직속 상사와 함께 시작해서 그와 함께 끝낸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일의 특성, 다른 회사의 더 좋은 제안, 동료, 업무 환경, 현실적인 업무 소개 미비, 생활환경의 변화, 스트레스 등의 원인에 영향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리더는 그중 가장 주요한 요인이었으며, 상황에 따라 구성원들이 이직하는데 75% 이상의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완벽한 팀]  마크 허윗, 사만다 허윗


굳이 컨설팅 통계자료나 리더십 권위자들의 언급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지 뭔가? 좋은 리더는 좋은 팀을 만들고 거지 같은 리더는 틀림없이 거지 같은 팀을 만든다는 사실을. 쉽고 명쾌하다.


당신의 리더는 어떤가?


생각만 해도 양미간이 절로 찌푸려지고 '아~이 인간만 없다면!' 이런 푸념이 절로 나오는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라는 마음과 함께 든든하고 믿음직한 진짜 리더라는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물론 전자도 후자도 아닌, 그저 회사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로 적당한 공적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리더는 상상외로 우리의 직장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누구를 떠올렸든 나에게 일을 지시하고 관계 속에서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리더라고 본다면 한 사람이 아닌 두 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 역시 누군가에는 리더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회사에서 괴로운 이유의 8할은 바로 그 리더 때문이다. 물론 그런 리더들을 양산해 낸 주범은 무엇보다 회사다.


그렇다면 진짜 좋은 리더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여기 4단(四端) 리더십을 제시한다.




리더는 인간적이어야 한다 - 측은지심(仁)

'인간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회사가 동호회냐?' 질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회사는 동호회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AI, 로봇의 집합체 역시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백하다.


우리는 감성지능이 이성지능을 포함한 모든 인간지능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공부했다. 실제 인간은 온전히 이성적일 수 없으며 대부분의 판단에 감정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사실은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언행을 남발하면서 이성적이라고 착각하는 리더들만큼 조직원을 좌절하게 만드는 요인은 없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측은지심이야 말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명확한 이유다. 가식이라도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제 아픔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라. 그 과정에서 없던 감성지능도 새록새록 되살아 난다. 감성지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자랑삼아 떠들지 말라.


Soft on people Hard on work

일에 있어서는 냉정히 이성적이되, 사람에 대해서는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감성적으로 대하는 것, 그것이 리더의 일이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장점과 단점까지도 명확히 인식하고 그 객관적 인지를 바탕으로 타인을 관찰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이론과 이성, 숫자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의 동함으로 움직이는 존재다.


자신의 고민과 아픔, 문제를 알아봐 주고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어 있다.


리더는 정의로워야 한다 - 수오지심(義)

정의롭다는 것이 거창한 개념은 아니다. 리더로서의 정의는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성정이다. 스스로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고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해야 한다. 나아가 리더는 자신의 실수와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애드먼슨은 포용적 리더의 특징을 세 가지로 들었다

1.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인가

2. 자신에게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정하는가

3. 다른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가


일본의 경영 구루 이나모리 가즈오 또한 자신의 저서 [왜 일하는가] 에서


"잠깐 위기를 모면하고 인기를 얻기 위해 겸손하고 성실한 척은 할 수 있어도, 그 위선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없는 것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


그다음은 조직 내에 발생하는 각종 부조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이다. 리더로서 높은 곳에 올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조직내에 크고작은 부조리들이 눈에 띈다. 직장내 괴롭힘, 따돌림, 각종 차별과 선입견과 고종관념으로 인한 소소한 삐걱거림이 감지된다.


애초에 건강한 조직이라면 대개의 경우 자정 작용에 의해 윗선의 개입 없이도 해결될테지만, 누군가 부조리로 인한 고통을 호소해온다면, 눈에 띄게 힘들어하는 게 보인다면 그 즉시 개입해야 한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리더 개인차원에서 조직 차원에서 회사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는지 판단하고 실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혹여 리더 본인의 안위 때문에, 괜한 논쟁을 키우기 싫어 누군가의 괴로움을 외면한다면 더 큰 대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관계를 만드는 일 역시 늘 조심해야 한다. 리더 역시 인간인지라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고 판단하게 마련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더 편한 더 눈길이 가는 부하직원이 없을 수는 없다. 그것을 앞서 LMX라고 불렀다. 내면의 마음을 인정하고 이해하되, 그것이 표면화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지 늘 경계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마치 사조직 같은 관계의 불균형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그냥 내버려 둔다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다.


리더는 양보해야 한다 - 사양지심(禮)

높은 자리에 올라 대접만 받는다고 리더가 아니다. 리더에게는 권한과 책임이 동시에 주어진다. 그중 권한만 누리려는 리더들이 많다. 심지어 부하직원이 만든 결과물에 제 이름만 올려서 마치 자기 것인 양 포장하는 리더들 역시 수두룩하다.


그러면 인정받고 조직에서 승승장구할 것 같은가? 착각하지 말라. 당장은 누군가의 눈에 들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실 없는 결과는 곧 제자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 사이 실력도 정체되어 사회적 난쟁이로 전락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낮은 문턱하나 넘기 힘들어진다. 무엇보다 부하직원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꾹꾹 참을 뿐, 언젠가 임계점에 이르면 부글부글 끓는 냄비의 뚜껑처럼 폭발하고 만다.


공(功) 앞에서는 물러서고 실(失) 앞에서는 나서라. 잘된 것은 부하직원들에게 모두 돌리고, 안된 것은  분연히 앞으로 나서 책임을 다하라. 그게 리더의 덕목이고 오히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솔선수범은 말뿐 아니라 '희생'하는 데서 완성된다. 시간이든, 돈이든, 노동력이든 제 손에 쥔 것을 하나도 내놓거나 내려놓지 않은 채 입으로만 떠드는 솔선수범은 아무런 무게도 없다. 실소와 냉소만 양산할 따름이다.  


미지의 위험을 가장 앞에 서서 먼저 감지하고 분연히 건너 살피고, 안전이 보장되면 그때 뒤돌아 '이제 건너와도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 진짜 리더는 결코 자신의 사람들을 위험에 앞세우지 않는다.


리더는 지혜로워야 한다 - 시비지심(智)

지혜롭고 싶다면 고인물이 되어선 안된다. 고인 것은 종류 불문 썩기 마련이다.


[마음의 법칙]을 쓴 폴커 키츠는 말했다

"대개 사람들은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창의적이며 매력적이라고 착각한다. 실제 직장인 중 80% 정도는 스스로를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연봉도 남들보다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들은 자신의 위치 그 자체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고 믿는다. 자신의 자리 그 자체가 성공의 궤적이자 증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감이 지나치다 못해 자신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확증편향에 빠지고 자기과대화에 이른다. 고인물이 되는 경로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쿠르트 레빈은 변화의 메커니즘을 3단계로 설명했다


해동 → 고통의 감내 → 재동결


진정한 변화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완전히 내려놓는 일, 즉 해동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이전의 나를 해체시키는 해동의 과정은 때론 고통스럽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니? 문제는 자신이 이룬 안온함의 상태조차 영원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불과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을 손에 쥐고 행여 놓칠까 전전긍긍하는 이들의 말로는 대체로 비참하다.


삶의 지혜라는 꽃은 멈추거나 고인 곳에서 결코 피어나지 않는다. 과거에 맞았던 것이 현재나 미래에 이르러 또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혁신은, 놀라운 변화는 Fit → Mis fit → Re fit의 무한 루프로 움직인다.


과거에, 현재에 안주하는 고인물이 되지는 않았는지 먼저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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