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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an 18. 2024

연말평가, 난생처음 C를 받았다

Environment _소속감 _ 3. 발전적 경쟁


평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한 해 동안 내가 일군 농사의 결산이면서 연봉, 인센티브, 승진, 이동 따위 내 처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직 이거 하나 보고 달려온 직장인들이 수두룩하다. 조직의 분란 99.82%는 여기에서 생긴다. 

 

이렇게 중요한 평가, 기업들은 어떻게 해왔을까? 오랜 기간 그들의 선택은 '상대평가'였다. S/A/B/C/D 5등급으로 나눠 각각 10/20/40/20/10 의 비율로 배분하는 식이다. 물론 회사마다 등급의 수와 간격, 배분율은 다르다. 


많은 기업들이 MBO(Management By Obejct)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로 성과를 관리한다. 공공기관에서 주로 사용하는 BSC(Balanced Score Card, 재무/고객/프로세스/성장 관점)과 구글의 목표관리 시스템으로 유명한 OKR(Obect Key Result)이 한때 유행했지만 개인적으로 사실상 MBO, KPI의 변형 혹은 아류 정도로 본다.


일반적으로 평가는 크게 두 영역을 측정한다. 


성과와 역량


성과는 특정 시점(Dead line)까지 목표대비 실제 달성한 결과물을 측정한다. 연초에 목표를 설정하고 세부 Task들이 조직별, 개인별로 구체화된다. 그 이행과정에서 조직과 개인은 어떤 역할을 어떤 비중으로 기여했는가? 를 따진다. 크게 과정지표(뭘 얼마나 했는가?)와 결과지표(어떤 결과를 냈는가?)로 나뉜다. 성과는 주로 인센티브나 이듬해 임금인상 수준을 결정하는데 쓰인다. 


역량은 TASK를 측정한다. 업무에 필요한 Talent(재능), Attitude(태도), Skill(기술/숙련도), Knowlegde(지식/정보)의 수준을 말한다. 이 역시 회사마다 각자의 어법으로 구체화된다. 보편적으로는 KSA로 알려져 있다. 역량 평가 결과는 주로 승진이나 이동, 교육의 근거로 활용된다. 


오랜 기간 기업평가의 정답처럼 자리매김해 온 상대평가. 그 명분은 '발전적 경쟁'이었다. 여기에는 거창하지만 자유주의, 성과주의라는 사회적 이데올로기 또한 반영되어 있다. 애초에 우리가 줄 세우기 경쟁에 익숙하다는 뜻이다. 실제 성과의 크기와 기여한 역할의 비중에 따라 차등 보상을 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하다는 믿음은 꽤나 굳건하다. 


그럴듯하다. 근 100년여간 1~3차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기업의 테일러리즘과 연동한 성과주의는 나름의 성공신화를 썼다. 기업들은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압축성장을 이뤘고, 인류는 스스로를 부품화 한 대가로 번화했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극단적 결과주의가 준동하면서 구성원 개개인단까지 내려가는 크고 작은 문제 예컨대 차별과 소외, 인격모독 등 인간성 상실의 문제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무수한 약자들이 다수의 이익이라는 명분 앞에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AI, 로봇, 모바일 기술의 획기적 발달로 근면성실을 기치로 내건 양적 성장의 시대는 끝나고 이해와 공감, 공존을 바탕으로 하는 질적 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상품'보다 '가치'가 팔리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일하는 방법과 이유, 무엇보다 일하는 주체로서의 자각에 눈뜨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일 못하겠다!라는 선언. 다시, 부품에서 인간으로의 회복이라는 명제 앞에 줄 세우는 상대평가제도의 비인간성과 폭력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안 해 시바!


애초에 상대평가제는 아무리 잘 쳐줘도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작동되는 듯 보였던 극단 경쟁의 이면에 두 가지 치명적 문제를 품고 있음이 밝혀졌다. 

첫째, 평가의 A부터 Z까지 그 과정과 결과가 공정하고 투명한가? 

둘째, 엄격한 성과주의에 따른 차등 보상은 조직 내부에 발전적 경쟁을 촉발하고 시너지를 유발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단호하다. 아니올시다. 

평가시즌마다 조직내부는 극소수 S를 제외한 대다수의 불만이 유령처럼 유영한다. 성과와 역량에 '정치'라는 무형의 변수와 '평가권자 마음대로' 라는 예외가 상시 작동하면서 결과 자체에 의문을 품은 눈초리가 매섭다. 예외가 많을수록 과정을 숨기기 바쁘다. 대외비가 많아지고 밀실에 숨어 이해관계가 얽힌 몇몇이 뚝딱뚝딱 해치우는 일이 잦다. 구성원들은 바보가 아니고 장님도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의 최종이익이 가리키는 방향에 범인이 있음을 이내 알아채게 된다. 임계점을 넘어 끓어 넘치는 조직과 임계점에 근접해 가는 조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급기야 극단적 결과지향, 과열된 경쟁, 합의되지 못한 평가기준, 투명하지 못한 평가과정, 무성의하거나 생략되는 피드백, 승진 대상자 배려를 가장한 돌려먹기가 난무하는 무법천지로 전락한다. 팀십은 박살이 났다. 1+1=3 이 아니라 1+1=-1 이 된 지 오래다.


이미 금전적 인센티브 자체가 동기부여에 별다른 효과를 미치지 못할뿐더러 지속력도 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지 오래. 심지어 그런 보상을 차등화하기 위해 사람을 부품화해 줄 세우는 작업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자, 이래도 상대평가제를 고집할 텐가?


오래전 사례이긴 하지만 웰치 시절의 GE는 Rank & Yank 시스템으로 철저히 상대평가제도를 고수하면서 하위 10%를 매년 out place 시켜 인재밀도를 높이는 정책으로 유명했다. 한때 잭 웰치에 열광하며 그의 경영기법을 공부하는 열풍이 거셌지만 지금 이 시스템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GE는 잭웰치 시대를 암흑기로 규정하고 지극히 비인간적인 Rank&Yank 시스템을 전격 폐기했다. 이후 기업 identity를 IT서비스로 패러다임 시프트 하면서 PD@GE 라는 실시간 Task 이행중심 절대평가제도로 바꿔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델 컴퓨터의 마이크 델 역시

"강제 배분에 의한 직원 평가 방식을 없앴다. 이 평가 방식은 직원을 서로 경쟁하게 했고 성과가 좋은 직원을 사내 정치인으로, 나쁜 직원을 중상모략꾼으로, 동료를 적으로 만들었다" 

라며 상대평가제도의 폐해를 신랄하게 지적했다.


현역시절, 몸담았던 회사는 상대평가제를 팀 단위까지 내려 시행했는데 S-A-B-C 의 4등급 강제 할당 방식이었다. 어떤 팀이건 실적이나 역할, 비중에 관계없이 5-20-50-10 이라는 등급 배분을 강제했다. 연말 평가시즌이면 조직 내 팀은 하나같이 붕~떴다. 어떤 결과에도 수긍과 만족보다는 불만과 의심, 체념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부서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팀은 팀 대로 모래알이 됐다. 일의 몰입과 역량의 향상보다는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하는지 정치에 기웃거리며 복지부동이 판을 쳤다. 나는 그 난장판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한다.

 

[스토리씽킹]의 저자 간다 마사노리는

"기업이 번영하려면 경쟁원리로 서로의 것을 빼앗기보다 사람들이 설렐 만한 미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완벽한 팀]의 저자 마크 허윗 역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피드백의 스트레스를 완화시켰습니다. 평가등급을 폐지한 것도 직원들이 관리자들과 예전처럼 성과 등급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한 경력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 토론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라고 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경영인, 조직, 리더십 관련 학자들도 등급을 매기는 상대평가제도의 효과 없음을 앞다퉈 지적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에는 '이름 없는 괴물' 이야기가 나온다. 

원래는 한 몸이었던 이름 없는 괴물이 둘로 갈라져 하나는 동쪽 하나는 서쪽으로 갔는데, 동쪽으로 간 괴물은 사람을 만나 그 안으로 들어가 그 이름과 몸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안으로부터 그 사람을 잡아먹고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아 헤맨다. 요한. 마음에 드는 이름을 발견했지만 또다시 심심해지고 그렇게 잡아먹고 잡아먹고 주변의 모두가 사라졌을 때, 서쪽으로 갔던 또 다른 괴물을 만난다. 마침내 괴물까지 잡아먹은 요한은 중얼 거린다. 


모처럼 이름이 생겼는데, 아무도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게 되고 말았답니다.
요한, 멋진 이름이었는데  


아직도, 

구시대의 괴물인 상대평가제도를 고집하고 있다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 대체 왜? 




상대평가 이젠 미련을 버릴 때도 됐다

인사가 만(萬)사라면 평가는 구천(九千)사 정도 되지 싶다. 평가제도에 대한 구성원들의 믿음만 확보해도 조직 전체는 안정감을 누릴 수 있지만, 반대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면 시한폭탄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심어지면 째깍째깍 언제 터질지 모른다. 멈추는 건 오직 S, 최고등급을 받을 때뿐이다. 제아무리 좋은 회사도 평가제도라는 절대반지의 신뢰를 상실하면 사우론의 저주가 내려진다.  


그런데도 상대평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인간은 자고로 자기 분수에 맞는 대접을 받아야 하므로? 됐다. 집어치우자. 인간은 비교하고 통제하고 관리할수록 하기 싫어진다. 개성을 존중하고 내버려 두고 자율을 줄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일 때가 됐다. 


그렇다고 전면적으로 절대평가를 도입하기엔 부담스러운가? 눈에 띄게 잘해 붙잡고 싶은 현인도 있고 당장 내쫓아야 할 눈엣가시가 있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싶다면 이렇게 하자.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접목하면 된다.


우선 성과,

전 직원이 한 해 동안 완주해 준 점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적인 관점에서 기본 성과로 인정해 주자. 평가를 위한 재원 100(이것을 Pot이라고 부르자)이 있다면, 이중 50을 따로 떼어내서 기본 성과 개념으로 팀별로 배분한다. 이때 배분 기준은 팀인원이다. 인원수가 많은 팀이 많이 가져간다.


나머지 50은 팀별 상대평가 결과에 따라 분배한다. 이른바 차등 pot이다. 그동안 열심히 해온 방식이니 익숙하다. 팀이 5개가 있다면, S - 1팀 30% A-1팀 20% B-2팀 15% C-1팀 10% 으로 차등 지급하고 나머지 10은 정성평가로 최종평가자의 마음에 따라 부여한다.


각 팀은 각자 받은 pot을 자율적으로 배분한다. 기본 성과로 받은 pot(1차)은 전 구성원에 균등하게 분배하고, 차등 성과로 받은 pot(2차)은 팀장의 자율에 맡긴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다 잘했으면 이 역시 균등하게 배분하고, 그중 특출 나게 뛰어난 팀원이 있다면 아웃스탠딩(S)으로, 특별히 개선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방출을 염두에 두고 개선필요(NI)로 차등할 있다. 


팀이 잘해서 배분할 pot을 많이 가져올수록 유리하기에 팀원들은 '우리'라는 인식 속에 합심해 일하게 된다. 이때 팀 간 경쟁이 일어나고 절차와 규정을 지키는 한 상대평가제도의 원래 취지인 '발전적 경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각 개인의 역량(TASK. Talent/Attitude/Skill/Knowledge 가 그것이다)은 먼저 조직과 리더의 기대치에 맞추어 당사자와 조율한다. 연말 평가에서 그 기대치에 부합했으면 GE(Good Enough), 기대치를 초과했으면 BE(Beyond Expectaion)을 부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대치에 미달할 경우 NI(Need to improve) 등급을 부여해 육성과 교육의 관점에서 solution을 제공한다. 활용할 용어는 취향대로 바꾸시라.


어떤가? 이 정도면 상대평가제도의 장점과 절대평가제도의 장점을 교묘히 접목한 묘수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이 관성에서 벗어나 조금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면, 기존 상대평가의 장점과 절대평가이 장점을 섞은 하이브리드 제도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제일 좋은 건, 다 됐고 Task실행 중심 절대평가로 묻고 다블로 가는 것이겠지만, 선택은 자유다.



구성원들이 쓰는 '대명사'에 주목하라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한, 우리는 적이 아니라 동지다. 

종종 회식자리에서 살벌한 대명사가 들려온다. '그놈들!' 현장은 사무직을, 사무직은 현장을 그렇게 부르고 '우리'라는 소속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거 심각한 시그널이다. 


현역시절, 현장 리더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A부서의 리더가 소속 팀원들에게 당부를 전하는 세션을 참관했다. 그날 리더는 눈에 띄게 격앙되어 있었다. 


"그 새끼들 말이야. B부서 협조 요청이 오면 절대로 도와주지 마. 내가 책임질 테니 그냥 무시해 버려!"

알고 보니 역시나 평가 이슈였다. B부서와 함께 설정한 공통 성과를 B부서가 몽땅 가져가버렸다는 이유다. B부서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 성과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팀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워 사전에 A부서에 양해를 구하고 성과의 상당수를 제팀으로 편입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뒤늦게 양보한 성과 때문에 A부서의 목표 달성도 어렵게 되자 번복을 했다 부서장간에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 형동생하던 사이에서 이 새끼 저 새끼로 돌변한 건 덤이다.


두 부서는 이후 극과 극으로 대치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1년 가까이 서로 협조하지 않고 버텼다. 그 결과 그해부서가 속한 본부 전체의 실적이 곤두박질쳤고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 lose-lose 게임으로 전락해 버렸다. 본부장은 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과도한 상대평가, 그로 인한 부서이기주의가 부른 과욕 혹은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의 저자 다니엘 코일은

"관계를 암시하는 작은 신호들이죠. 이러한 신호들,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 느끼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라는 대명사는 누가 뭐래도 우리에게 안전하다는 신호를 주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지 발전적인지 알고 싶다면 술집으로 가라. 내 동료들이 우리를 무엇으로 부르고 있는지를 확인하라. 



덧붙임의 말)

물론 평가는 조직문화의 직접 영역은 아니다. 엄연히 인사팀 그중에서도 HRM에서 담당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평가라는 항목이 직장인들의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잘못되거나 분열을 야기하는 평가제도가 관성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면 조직문화 기능은 책임감을 느끼고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실제 평가에 대한 구성원들이 신뢰도나 불만도를 측정해 경영진에게 제공하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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