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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Sep 18. 2023

수리영역 4등급이 인건비 업무를 맡으면 생기는 일

Motivation _내적동기 _1. 일의 본질, 재미와 의미

모태백이 회사에서 하는 일은 교육기획, 조직문화 운영 업무다. 사내교육 커리큘럼을 짜고 대표님의 메시지를 작성해 전파하고 간담회나 리더십 과정을 운영하는 일 따위를 한다. 처음부터 HRD를 지원해서 들어왔고 인사총무팀으로 배치되어 OJT를 받을 때까지 큰 변동은 없었다. 최종합격통보를 받고 대기업 면접 기회를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곳에서 하고 싶은 업무를 보장받았다는 점이 컸다. 물론 대기업의 경우 면접을 본다고 합격된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지레 겁을 먹은 면도 컸다.


시간이 흐르면서 팀 내 이런저런 일들이 야금야금 넘어오더니 급기야 HRM의 인건비 업무 보조를 떠맡게 됐다. 원래 담당자는 두 달 전에 퇴사했다. 한동안 후임자 채용절차를 밟다 흐지부지 되더니 급기야 모태백에게 그 일이 넘어왔다.


"원래 인사총무팀이 이런저런 일 다 하는 거야. 알지? 멀티플레이어. 계속 그렇게 간다는 건 아니고 차차 담당자를 뽑긴 하겠지만, 당장은 회사에 새 인원을 채용할 여유도 없고. 다 모태백이 잘하니까 이렇게 일도 맡기는 거야. HRD를 하더라도 인건비는 인력관리의 핵심이야. 알아두면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야."

채용담당자였던 박 대리는 어느 날 모태백을 불러 통보 아닌 통보를 했다. HRD사수인 장 대리에게는 팀장님이 미리 언질을 넣었다고 했다. 박 대리의 말처럼 일이 더해지는 것은 괜찮다. 이것저것 배워야 할 신입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부분도 분명 있다.


문제는 일의 성격이다. 모태백은 숫자에 쥐약이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며 망설임 없이 문과를 택했던 이유는 수학이 지독히 싫어서였다. 숫자라면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찌푸려지고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다른 과목들은 늘 상위권에 들었지만 수능 역시 수리영역 때문에 망했다. 절반을 조금 넘게 맞고 4등급을 받았다. 킬러 문제 두어 개만 잘 찍었어도 학교 이름이 달라졌을 것이다. 워낙 철저히 싫어했던 과목치고 오히려 선방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왜 수학, 숫자를 싫어하게 됐을까? 태백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처음부터 국어나 작문, 영어, 역사 같은 과목들이 더 편했다. 교육학을 선택하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전공이 국문학이었을 만큼 글을 읽고 쓰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에 적성이 맞았다. 공식을 외우고 숫자를 대입해 문제를 풀고, 그래프와 확률을 계산하는 일 따위 어쩐지 손에 익지 않았다. 아마도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났을 것이다.


거기에 중학교에 입학 첫날 결정적 사건이 터졌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날의 기억. 아마도 첫 수학 시간이었을 것이다. 짜리몽땅한 키를 가진 50대 정도의 여선생님이 자기 키 반만 한 몽둥이를 들고 교실에 들어왔다. 첫인상은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변신 전 프리저를 연상케 할 만큼 표독스러웠고 말투 역시 카랑카랑 고막을 찌르는 듯했다.


중학교 첫날이라는 긴장감? 새로움?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아무튼 좀처럼 안정이 되지 않던 모태백은 옆자리 친구와 속닥속닥 잡담을 했던 모양이다. 순간,


"야! 너 일어서"

프리저쌤의 째진 목소리가 교실 전체를 정지시켰다.

"저...저요?"

프리저쌤은 모태백을 일으켜 세우고는 뚜벅뚜벅 자리로 걸어왔다.

"안경 벗어"

모태백은 엉거주춤 일어선 채 안경을 벗어 들었다.

[짝~]

경쾌하면서도 거친 질감의 마찰음과 함께 눈에서 불이 번쩍 튀었다. 교실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공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가 우수수 깨어져 내리고 오른쪽 볼 전체가 댕강 잘려나간 것 같았다. 13살 모태백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누가 수업 시간에 떠들래? 뒤로 나가 서 있어."

프리저의 방망이에 맞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까? 때때로 불쑥 그날이 떠올려지면 오른쪽 볼이 여전히 화끈 거림을 느낀다. 모태백은 그날 이후로 수학 선생을 아니 수학을 증오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요 박 대리님, 업무를 주시는 건 좋은데...제가 숫자에서 약해서... 잘 해낼 수 있을지..."

"놀고 있네. 회사원이 할 수 있는 일, 못하는 일이 어딨어? 시키면 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 꼼꼼하잖아 너. 걱정 마. 내가 정이고 너는 부니까 내가 시키는 것만 잘하면 돼."


우려는 바로 다음 달 급여지급에서 현실화 됐다.

"야~모태백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알바생들 급여가 다 엉터리잖아. 어떤 놈은 두배로 받아가고 어떤 놈은 절반이고 이거 어떻게 된 거냐고!"

프리저샘의 얼굴을 한 박 대리가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모태백은 다시 얼음이 됐다.

"그..근무일 데이터가 잘못 들어갔나 봅니다..."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면 어떡해?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야. 어? 아니 상세하게 가르쳐 줬고 잘 만들어진 시스템도 있는데 뭘 어떻게 숫자를 집어넣었길래 이런 실수가 나오냐고...인사팀의 생명은 한 치의 오차 없음인 것도 몰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규 급여가 아니라 별도 프로젝트를 위해 모집한 아르바이트생들을 위한 급여지급절차였다는 점이다. 최종 결재 전 크로스체크를 하기로 했던 박대리는 본급여 업무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스킵을 했던 모양이다. HRD와 조직문화 업무를 병행하며 야근을 자처해 일주일간 11시~12시까지 입력 작업을 했던 모태백으로서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실수를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인 만큼 변명대신 문제해결에 집중했다.


대상자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오지급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모태백은 인간의 본성 또한 확인하게 되었는데 더 받은 이들은 더 받았다는 사실을 굳이 회사에 알리지 않았고, 덜 받은 이들은 예외 없이 즉각 그 사실을 전하고 1원이라도 손해가 없도록 적극 행동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급여지급 같은 구성원들에게 민감한 부분에 있어서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회사의 신뢰가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 또한 얻게 됐다. 이 일로 모태백의 체중이 3kg이나 빠졌다. 원래 없던 살이 더 빠져나갔다.


"실수는 했지만 전부 네 탓은 아니야. 애초에 일 맡은 지 한 달짜리가 처리할 일이 아니었어. 박 대리가 팀장한테 잘 보이려던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이야. 너도 노는 인력이 아닌데 무리하게 빌려달라 할 때부터 찜찜하더라니."

장 대리는 퇴사자의 후임 채용을 반대한 것은 의외로 박대리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모태백을 위로했다. 신규인력 채용에 들어가는 인건비를 아껴 회사에 잘 보이겠다는 과잉충성이 결국 일을 그르친 원인라며 장 대리가 혀를 끌끌 찼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믿고 맡긴 일에 대형 사고를 친 모태백의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박 대리가 인수인계랍시고 건네준 업무기술서를 수십, 수백 번 읽고 또 주의를 기울였지만 숫자만 보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드는 내면까지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일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지만, 실수 없는 꼼꼼한 일처리에 즐거움과 강력한 동기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독히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 또한 절감했다.


결국 회사는 부랴부랴 후임 경력자를 뽑았고 모태백은 원래의 업무로 복귀했다. 한편으로 후련한 마음과 함께 새삼 조직문화와 HRD업무에 대한 애정이 물씬 솟아났다. 현장 사람들과 만나 회사의 생각을 전하고 그들의 생각은 회사에 전하는 가교 역할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나마 기존의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는 지금의 일이야말로 천직이라 느껴졌다.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실수가 없음은 물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진짜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의욕이 불끈 차올랐다.




일이 적성에 맞고 무엇보다 재미있으면 안 될까?

일이 적성에도 안 맞고 재미도 없다면 최소한 의미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재미도 의미도 없다면 그 일은 왜 하고 있는 걸까?


직장인인 우리는 하루 8시간 이상(출퇴근까지 고려하면 최소 10시간 이상) 회사에서 '일'이라는 것을 한다. 주 40시간, 한 달이면 209시간, 1년이면 240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한다. 이마저도 야근이나 이래저래 낭비되는 시간을 제외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평균적으로 20대 중후반에 직장인이 되어 50대 중후반까지 직장생활을 한다면 무려 30여 년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필생의 '일'에 재미도 의미도 느낄 수 없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나는 종종 개념을 상실한 경영진들이

"야 일을 재미로 하냐? 원래 일은 다 견디면서 하는 거야."

라는 말을 할 때마다 속이 뒤집힌다. 자매품인

"회사가 동아리냐?"

역시 마찬가지.


아니, 이왕 하는 일 재밌게 하면 왜 안될까? 일이 적성에 맞고 재미있고 의미가 있지 않으면 대체 그 일은 왜 해야 하는 걸까?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일본의 한 유명 기업인은 "회사에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될 확률은 1/1000에 불과하다." 라고 단언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한술 더 떠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참고 하다 보면 '잘하는 일'이 늘어나고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게 된다는 정체불명의 가스라이팅도 자기 계발서에 종종 등장하는 실정.


누구나 제게 맞는 옷이 있다. 무엇보다 제 스타일에 맞고 사이즈에도 꼭 맞는 옷을 까다롭게 따져서 사 입는다. 그건 상식이다.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심지어 사이즈도 안 맞는 옷을 제 돈 주고 사 입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왜 수십 년씩 자신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매일 쏟아부어야 하는 '일'에 있어서는 제 취향은커녕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폭력에 별다른 저항도 없이 수긍할까?


일요일 저녁이 되면 시름시름 앓다가 금요일 오후부터 급격히 되살아나는 워킹좀비들이 대거 양산된 이유는 돈, 인간관계뿐 아니라 일 그 자체일 가능성 역시 크다.


'직장인들의 퇴사, 이직사유. 왜 회사를 떠나는가?' 설문결과를 보면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는 응답은 상사를 포함한 인간관계, 연봉과 함께 늘 상위권에 랭크된다. 특히 연봉 수준, 복지, 회사의 네임밸류 등 외적 조건들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대기업 구성원들의 퇴사 사유에 업무가 1위를 차지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 직장을 떠나는 이유 다니는 이유 역시 적성의 문제가 압도적이다.


이직할 때 역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로 '업무와 적성'을 첫 순위로 꼽은 결과를 보면 다수의 직장인들이 재미도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은 '남의 일'을 하느라 허우적 대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자신의 길을 찾은 전문직들을 제외하고 일반 회사원들의 경우 직무 전문성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회사일 자체가 그렇다. 고도의 직무 전문성을 요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Digital transformation 열풍 속에 IT, 플랫폼, 테크기반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코딩, AI, 빅데이터, 엔지니어링 전문가 중심의 기업조직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레거시 기업들은 일반적 직무에 기반해 조직화되어 있다. 마케팅이니 기획이니 재무회계니 영업이니 이른바 화이트칼라 사무계열의 직종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 업무스킬이 숙련 단계에 이르면 누구나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더 큰 문제는 회사 내에서 인정받는 인재의 정의다. 직무 전문성이 뛰어난 사람 보다 사내정치에 능한 사람에 더 가깝다. 일은 좀 못해도 눈치 빠르고 상사의 의중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 내는 사람들이 대우받는다. 거기에 학연, 지연 등이 엮여 있다면 이건 뭐 파리 잡는 끈끈이 저리 가라다. 끌어주고 밀어주고 눈물겹다.


'회사는 자아실현하는 곳이 아니다'는 조언이 대단한 지혜인 마냥 통용되는 조직이라면, 너무 뛰어나서 혼자 눈에 띄는 사람보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하지만 기가 막히게 권력자의 곁에서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 더 우대받을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경험적 증거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결국 '회사 일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체념성 고정관념이 두터워지고 급기야 전체로 확산된다. 일을 하는 데 있어 직무 전문성, 역량 개발이라는 본질은 간데없고 누구의 사람인가? 누구와 친한가? 따위에 열을 올리는 조직 분위기가 마침내 완성된다. 오늘날 우리 회사에서 일이 재미없고 의미없어진 이유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일은 당신의 삶에서 매우 커다란 부분이며 일에서 진정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직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보세요. 주저앉지 마세요. 당신이 찾던 일을 발견하면 당신의 마음이 먼저 알아차릴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겐 스티브잡스 같은 리더도 없고 무엇보다 우리는 애플이 아니다. 그러니 그냥 체념하고 남들 하는 대로 하면 될까?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꾸역꾸역 쳐내면서 워킹좀비 상태로 일하다 때가 되면 조용히 다음 세대를 위해 물러나야 할까?


미안하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분연히 일어서 No라고 외치겠다.




일은 내게 맞고 재밌어야 한다

"즐기면서 한다? 그거 다 뻥이에요!"

예능인 서장훈은 농구선수 시절의 서장훈을 소환해 단 한 번도 농구를 즐기면서 한 적이 없다고 강력한 어조로 단언한 바 있다. 서장훈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치열하게 노력해서 갈고닦은 실력만이 자신을 대변해 준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모양. 뭐 서장훈 본인이 그토록 열심히 이를 갈고 농구를 했다는 사실은 알겠다. 다만 그렇게까지 펄쩍 뛸 일인가 싶은데, 정작 서장훈 본인의 성공이 오롯이 100%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긴 할까?라는 의문이 들어서다.


일단 서장훈은 신체조건부터 남달랐다. 야구로 치면 태어나자마자 이미 2루에서 경기를 시작한 것과 다름없다. 농구선수로서 독보적인 하드웨어를 타고 태어난 게 첫 번째고 그다음 독기를 품고 죽기 살기의 연습까지 더해졌으니 국내 1등은 당연한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조금 아쉽다. 농구라는 세계관의 최고 무대인 NBA(미국프로농구) 존재 때문이다.


"에이, 흑인들의 신체능력에는 비할바가 못되죠. 동양인들에게는 넘사벽이에요"라고 두둔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같은 동양인이면서 NBA의 주전으로 뛰었던 야오밍은 어떤가? 괴물들이 득실거린다는 MLB(미국프로야구)에서 투타를 겸하며 신화를 써낸 오오타니 쇼헤이는 어떤가? 길쭉길쭉한 러시아 미녀들이 휩쓸던 피겨판의 김연아는 어떤가? 타고난 신체능력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수영의 박태환은 또 어떤가?


야오밍이야 수십억 중국인 인구풀에서 나온 돌연변이라 쳐도 야구의 오오타니는 좀 남다르다. 일단 오오타니 역시 넘사벽 신체 조건을 갖고 태어났다. 190이 넘는 키에 웬만한 서양인들을 압도하는 피지컬을 가졌다. 이미 초중고시절부터 야구라는 종목에 재능을 보였는데, 특히 고교시절 오오타니가 직접 작성했다는 계획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야구라는 자신의 운명적 일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던지고 때리는 야구의 기본 스킬을 연습하는 계획은 물론 쓰레기 줍기, 인사하기 등 인성과 관련한 부분까지 철저히 계획에 넣었는데, 인터뷰에서 '남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 것은 운을 줍는 것이라 생각한다.' 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야구라는 자신의 일에 푹 빠져 있고 그 빼곡한 연습계획이 즐겁게 이루어졌으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그 노력은 곧 결과로 드러났다. 100여 년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투타 최고 선수로서 거듭났으니 말이다.


김연아나 박태환 역시 마찬가지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종목에서 세계 최고에 우뚝 선 이면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일이 좋고 끌렸기에 일반인들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감내할 수 있었다는 본질이 들어있다.


조심스럽지만, 서장훈이 국내에서는 견줄 바 없는 신체조건과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연습량, 승부욕을 가지고도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통하지 못했던 이유는 농구라는 제 일을 즐기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앞서 언급했듯 전문직들에 비해 일반 회사원들은 직무 전문성을 압도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한다.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순간부터 one of them으로 '그저 가늘고 길게만 가자'라는 마음가짐을 무의식 깊은 곳에 품었을 여지는 매우 크다. 초중고는 물론, 심지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내가 진정으로 뭘 하고 싶은지'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본 적도 없다. 그저 대세에 따라 '이름 있는 회사에 들어가고 본다'라는 두루뭉술한 목표만을 가졌다면 그 목표를 이룬 그 다음은 또 무엇을 기약할 수 있을까?


첫 단추를 그렇게 꿰었다면 그 안에서 5년 10년 20년을 일해본들 크게 변할 것은 없다. 결국 그 어떤 영역에서도 전문가 혹은 1인자라는 타이틀을 얻지 못하고 특색 없는 회사원으로 커리어를 마감하는 범인의 삶이 그려질 뿐.


MBTI열풍이 한동안 뜨거웠는데, 그 신빙성이나 유효성 논란과는 상관없이 나는 이 열풍을 꽤 긍정적으로 본다. 나와 상대를 제대로 알기 위한 전초작업으로서 꽤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툴이든 일단 나를 알게 된다면 큰 힘이 된다. 나는 뭘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한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면 고무적이다.


분명 개인마다 자신이 잘하는 영역이 있고 상대적으로 편한 업무가 있게 마련이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하는 강점강화가 약점을 힘들게 고쳐서 그저 평범한 수준으로 만드는 일보다 백배 낫다. 일은 자신과 맞는 것이어야 한다. 잘하지도 못하고 불편한 일을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연습하면 다 된다는 식의 억지를 부려선 답이 없다. 이왕 하는 일 그 안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도록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먼저다.


명분, 맥락, 본질로 일하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알아냈고 운 좋게 그 일을 하게 되었다면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답은 명분, 맥락, 본질의 순서로 일하는 것이다.


명분은 왜 하는가? 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일할 때 왜 하는지 그 의미를 모른 채 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그저 팀장님이 시켜서, 이전에 하던 일이니까 와 같은 생각으로 하루하루 쳐내기에 바쁘다. 보고서에 의의와 목적이 기재되어 있지만, 지극히 일반적이고 관념어 투성이라 손에 잡히는 의미를 잡아내기 힘들다. 시간을 들이면 해결되는 루틴 한 일들이야 상관없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반드시 그 의의와 목적을 구체화해야 한다. 일을 지시할 때는 물론 받는 경우에도 서로의 생각이 일치해야 한다. 왜 하는지 그 명분을 알 수 없는 일 치고 제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없다.


맥락은 왜 지금인가? 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일을 해야 하는 명분은 충분하지만 타이밍이 아닐 수 있다. 신규사업 실패로 대규모 손실이 났는데 조직문화팀에서는 문화주간이라며 큰돈을 들여 유명인을 초청하고 체육대회를 기획하는 등 팀 간 화합을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면 승인이 날 턱이 없다. 물론 힘들 때일수록 '으쌰으쌰' 해봅시다! 역발상으로 받아들이는 경영진도 간혹 있겠지만, 대개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고립된 상태에 놓인 부서에서 저지르는 무맥락 촌극에 그치고 만다. '정신이 있는 거냐?'라는 불호령과 함께


본질은 이 일을 하면 무엇이 좋아지는가? 에 대한 이야기다. 명분도 있고 맥락에도 맞지만 정작 실행하는 일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무의미하다. 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일을 하면 정말 이게 돼?라는 본질을 수시로 망각하기 때문이다. 목적을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명분에서 출발해 기존에 해왔던 수준의 일을 답습하기 때문이다.


일을 앞에 두면 명분, 맥락, 본질 이 세 요소 순으로 생각하라. 이 중 단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일의 의미를 잃고 헤매게 된다.


스펙만 보지 말고 적성과 다중지능을 살펴 인재를 뽑아라

우리가 일의 재미와 의미를 잃고 워킹좀비가 된 데는 개인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탓도 크지만, 그런 분위기는 사실 회사가 만들었다는데 이견이 있을까? 그 중심에는 의외로 엘리트 경영진들이 있다. 이성지능 만능주의를 신봉하는 그들은 일과 사람에 대한 오해가 크다. 그들의 신념은 비교적 명확하다. 조직은 자신들과 비슷한 스펙을 가진 공부 잘하고 똑똑한 몇 사람의 엘리트들이 이끌어가고 일반 구성원들은 그저 부품에 불과하며 일은 데이터와 숫자를 중심으로 한 이성적 판단으로 대부분 해결된다는 신념 말이다.  


오늘날 기업이 사람을 뽑아온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그 사실은 명확해진다. 최근 들어 블라인드 채용이니 열린 채용이니 스펙중심의 인재선발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학이름을 기준으로 줄을 세우고 서류를 필터링하는 기업들이 수두룩하고 대기업 공채들은 소위 1류 대학 출신들이 대다수다. 뽑고 나니 그런 걸 어쩌란 말인가?라고 하기엔 수능, IQ테스트나 다름없는 필기시험을 인적성이라는 명목으로 또다시 치러 그 점수를 근거로 한차례 더 거르는 전형절차를 보면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짐작하겠지만 필기시험 점수가 대체로 대학서열순대로 나온다는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니다.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채용과정에 적게는 수백 장에서 많게는 수천 장에 이르는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소수의 실무자가 일일이 체크할 수는 없는 노릇. 일정 부분 자동 필터링을 거친 결과물에 한해 채용 담당자들의 정성적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점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그 방식으로 수십 년간 사람을 뽑아왔고 그렇게 성장해 온 기업들은 일류 대학 출신의 고스펙, 엘리트들이 일을 잘한다는 경험적 확신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근면성실, 효율적 생산성이 최우선시되던 노동집약적 성장 사회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이 최고의 덕목인 지식산업사회로 체질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데 있다.


기존의 엘리트들은 인간이 가진 9개 다중 지능(하워드 가드너가 주장한)중 언어와 수리논리지능에 특화된 사람들이었다. 오랜 시간 집중력을 발휘해 지식을 습득하고 빠른 시간 내에 그것을 풀어내거나 정답을 골라내는 능력, 즉 시험에 특화된 사람들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는 최적화되었을지 모르지만, 적절한 질문을 하는 역량은 글쎄? 의문이다. 사무실 곳곳에 왜 스펙은 좋은데 일머리는 없는 사람이 그리 많은지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성지능에 특화된 엘리트들이 기존 산업사회의 성장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앞으로도 그럴까?라는 질문에는 예스라는 답이 선선히 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다중지능 중 새로운 시대에 눈여겨봐야 할 영역이 바로 감성지능이다. 감성지능은 자기 인식과 사회적 지능으로 구성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돌아보고 파악하는 능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감성지능을 오래 연구해 온 다니엘 골먼 Daniel goleman 은 "감성지능은 모든 지능의 우두머리"라고도 했는데, 문제는 이성지능과 감성지능 사이의 관계다. 이 두 지능은 완전히 별개인 데다 대체로 trade off 관계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즉 어느 한쪽 지능이 특별히 높으면 다른 한쪽 지능은 특별히 낮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채용 프로세스가 힘을 주고 있는 인재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 물론 이성지능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중요한 지능 중 하나일테지만, 이전처럼 극단적인 이성중심 엘리트주의는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바삐 성장하느라 그동안 간과해왔던 사람에 대한 기본적 공감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 좌절에도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능력, 현재의 만족을 유예하는 능력 등 감성 지능과의 균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허울좋은 학벌과 차가운 숫자로 도배된 스펙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꿈꾸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묵묵히 노력하고 실패해도 웃음을 머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으로 나설 때가 됐다. 그 다음 그들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맡겨 보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은 분명 재미있어야 한다.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라는 끔찍한 가스라이팅에 스스로를 가둬서 좋을 것 없다. 회사는 Battle feild 가 아니라 Play Ground가 되어야 마땅하다. 회사의 사람은 워리어Warrior가 아니라 플레이어player가 되어야 옳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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