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스 leex Aug 21. 2023

39세 김 과장, 희망퇴직 대상자 되다

신한은행이 지난 1월에 이어 7개월 만에 희망퇴직을 또 실시한다. 이번에는 직급과 연령을 부지점장 아래와 만 40세 이하 등으로 확대했다. 이는 2021년 1월 초 우리은행이 실시한 1980년생 희망퇴직 대상보다 더 젊다.

출처 : 시장경제(http://www.meconomynews.com)

은행권을 중심으로 80년대생 희망퇴직이 이슈인 모양이다. 80년대생 보다는 39세, 30대라는 키워드에 더 눈길이 간다. 4~50대의 희망퇴직이야 이미 보편화된 마당에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지만 83년생 39세는 뭔가 뉘앙스가 다르다.


4년 전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회사를 나온 경력자(?)로서 희망퇴직 이슈는 긍정적이기보다는 아무래도 부정적 소식에 가깝다. 두어 달 전 LG생활건강의 희망퇴직 소식을 듣고 씁쓸한 마음을 담은 글을 올린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쏟아진 39세 희망퇴직 뉴스들은 의외로 정반대여서 내심 놀라는 중이다.


부제 자체가 '역대급 호황 맞은 은행권, 수억 위로금 챙겨 제2 인생 러시'인데 부제만 보면 희망퇴직은 재앙이 아니라 그 이름대로 새로운 희망쯤 되는 것처럼 들릴 지경이다. 아니 희망퇴직에서 새로운 희망이라니? 기사에 따르면 은행권이 최근 실시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오히려 노조가 나서 대상자를 확대해 달라 요청하기도 했고 역대급 성과를 바탕으로 위로금을 대폭 늘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 액수가 무려 5억에서 11억에도 달한다면서 희망퇴직을 부추기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사실이라면 정말 제2의 인생도 그럴듯하게 시작해 볼 수 있는 거액 아닌가? 그 정도 액수만 보장받는다면 나라도 당장 그만둔다는 댓글들도 수두룩하다. 와 이거 새로운 발견이다. 어차피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진 마당에 왕창 땡겨받고 새 출발을..그런데? 그 돈으로 뭘 하지?


부푼 마음도 잠시, 현실이 불쑥 개입한다. 이런 정도의 위로금을 받는 사람들은 정작 얼마나 될까? 정신을 차리고 기사를 찬찬히 뜯어보니 보일 듯 말 듯 구석 어딘가에 그 숫자를 적어놨다. 고작 수십 명 안팎. 그것도 최대로 받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수 억의 위로금이 일상적이진 않다는 팩트를 마지못해 명시한다.


이것들이 지금 장난하나? 일단 상식적으로만 생각해 봐도 대략 답이 나오지 않는가? 우리나라 대기업 종사자는 기껏해야 15% 안팎. 대다수인 85%가 중소, 중견 기업 종사자인 점을 감안하면 이거 침소봉대도 이만저만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이라도 그 정도 퇴직금, 위로금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 텐데, 전통적으로 고임금에 퇴직금 역시 두둑했던 금융권을 예시로 5억이니 11억이니 자극적인 타이틀을 뽑아 직장인들을 낚은 셈이다.


정작 문제는 위로금이 얼마인가? 가 아니라 회사가 구성원을 중간에 내치는 일에 30대라는 숫자가 공식적으로 튀어나왔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지 않은가? 금융권에서 시작했지만, 이미 전례가 만들어진 이상 산업계 전반에 희망퇴직 연령하한선이 30대로 내려가는 일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39세라는 상징성은 인위적 구조조정 대상 확대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이라면 회사에서 자리 잡고 한창 열정적으로 일할 때다. 20대 중후반에 들어와 대략 10여 년 이상 회사에 헌신해 과장, 차장 직급을 달고 몸이 무거워질 때다. 한창 여기저기 옮길 수 있는 금값 사원~대리 시절을 희생한 대가다. 그런데 이들에게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위로금을 받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라고? 그때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며 몇 푼 되지도 않는 위로금을 받아 선뜻 회사를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액수가 수억에 달하더라도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런 일을 예상하고 수년 전부터 미리 준비하지 않은 이상 평생 회사원이었던 사람이 밖에 나가 뭘 할 수 있을까? 회사에 다니면서 그런 준비를 미리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희망퇴직 연령이 30대까지 내려간 '사건'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에 대한 우려보다는 제2의 인생 운운하며 극히 소수만 누릴 수 있는 수억의 위로금을 마치 보편적인 현상인양 기사화하다니. 이는 기업들에 '회사가 어려워지면 이제 마음 놓고 30대까지 자르세요!' 일러주는 음흉한 시그널이자 조회수에 눈이 멀은 황색 미디어의 도덕적 해이라고 볼 수밖에. 기자들에게 묻는다. 기업들의 희망퇴직대상 확대라는 현상의 진짜 본질은 무엇인가?


이제 30대도 안심하지 못하게 됐다. 차라리 잘됐다. 이참에 실력도 없으면서 운 좋게 들어간 회사에 들러붙어 아무런 자극도 발전도 없이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잉여들이 수면 위로 드러날 테니 말이다. 기업들에 이들까지 아무 조건 없이 품어야 한다고는 못하겠다.


각자도생의 시대다. 스스로 현실을 파악하고 철저한 대비를 하는 수밖에.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이 아니라 대체 불가가 되는 수밖에.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No'라고 말하라.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고민하라, 매일 똑같은 얼굴, 똑같은 불평불만 속에 숙취외에는 남는 게 없는 술자리는 줄이고 몸 관리하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어떤 일에서 성취를 느끼는지 온전히 '나'에 집중하라. 가만히 있으라! 는 강요에 반발하라. 성과든 실패든 모든 것이 나부터 비롯된다는 以기주의자가 돼라.


39세 김 과장, 지금이라도 멈춰 서서 걸어온 경로를 되짚어보라. 내 동기는, 내 감정은, 내 환경은, 내 신뢰는 어떤 상태인가? 그 길 위에 무엇이 남았는가?


지금 당신의 이름값은 얼마인가?


 



작가의 이전글 광복절에 얻은 보물 '작은 땅의 야수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