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감정은 몰라도 내 감정만은 제대로 알고 있으며 또 충실할까? 무엇보다 어떤 관계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라면 생성될 수밖에 없는 온갖 감정을 잘 파악해 내고 처리하고 관리하고 있을까? 섣불리 yes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우리 모두 감정에 서투르고 타인은커녕 내 감정도 잘 모를 때가 많으니까. 감정에 대해 잘 모른다는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계기가 되어 얼마든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
개인의 타고난 감정감수성 격차를 감안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집단 전체가 감정 무지성 상태에 빠져 버린 데는 성장과정에서의 사회적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유치원, 초중고, 대학에 이르는 학창 시절부터 회사생활을 포함한 사회인이 되기까지 우리네 인생의 주요 변곡점 어디에도 '나'를 중심에 두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감정을 본격적으로 다뤄본 경험도 별로 없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스스로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배움의 과정은 온통 이성지능 중심의 IQ test와 그 변형 형태인 국영수 중심의 학습능력을 익히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 들어가는 평생의 비용과 시간, 노력을 감안하면 감정이나 인성 등 인간의 또 다른 주요지능인 감성지능 개발과 투자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거기에 '빨리빨리 문화'라는 기괴한 형태의 신념을 장점이자 특징으로 내세우는 우리 사회는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여유조차 장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악마화했다. 그 시간에 영단어 한자라도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한 문제라도 더 풀라며 압박받기 일쑤였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학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취업문이라는 또 하나의 허들을 통과하기 위한 줄 세우기 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어렵게 취업의 문을 뚫어도 드라마틱한 인생 역전은 없다. 뉴트로 열풍도 아니고 AI 와의 실시간 대화가 가능해진 시대에 근면성실이라는 전근대적 가치를 신봉하는 경영진들이 단단히 자리 잡은 회사 조직은 여전히 빈틈이 없다. 이들은 쥐어짜야 결과가 나온다는 신념을 고수하며 은근한 압력으로 야근과 주말근무를 부채질한다. 좋은 평가, 승진, 마침내 고용을 보장받으려면 줄을 잘 서시오 라는 가스라이팅은 거침이 없다. 마치 하나의 문을 열었더니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는, 도대체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경쟁과 줄 세우기 속에 생존이 유일한 미덕이 되어버린 마당. 감정이니 인간성이니 창의성이니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마음의 여행은 죽어서나 가능할까?
감정과 관련해 기껏 듣는 이야기라곤 남자는 대범하게 행동하고 눈물을 보여선 안된다는 것, 여자는 조신하고 단정해야 한다는 것,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스테레오 타입 강요뿐이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반문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 결과 상대의 감정은 물론, 당장 내 감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감정 무능력자들이 세대를 막론하고 도처에 양산됐다. 그 과정에서 양적 성장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속을 까보면 곪은 곳 투성이가 됐다. 그 안에 속한 개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감정에 짓눌려 스스로를 잃거나 부정당하거나 파괴당하고 그 병든 개인들이 모여 만든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얄팍하고 부실해졌다. 마치 탈피한 후 남겨진 곤충의 껍데기처럼 손가락만 까딱해도 부스스 무너져 내릴 위태위태한 공존이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날마다 이어질 뿐이다.
오늘날 눈에 띄게 증가한 현대 직장인들의 정신 관련 질환은 인간의 내면, 정서, 감정에 소홀한 데다 무지하기까지 한 소시오패스 경영진과 리더들에 의해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연한 우울증, 불안장애는 물론 연예인병으로만 알려졌던 공황장애를 겪는 직장인들의 수가 급증한 현실이 그 증거다. 숨 막힌다. 모두가 질식해 자신을 놓아버리기 전에 인간을, 감정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할 때가 됐다.
감정에 대한 가장 흔한 착각, 오해는 얼굴 표정만 봐도 대번에 감정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말 그럴까? '척 보면 압니다' 식 선무당들은 얼마나 많은 생사람들을 잡아왔을까? 간단히 실험을 해보자.
이 사람(테니스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번에 누구인지 알아볼 것이다)의 지금 감정은 무엇일까?
이 표정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당장 떠오른 각자의 답을 적어두고 일단 넘어가자(궁금하겠지만, 정답은 글의 말미에 공개).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감정의 실체, 대체 감정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감정은 크게 '즐거움, 놀라움, 슬픔, 공포, 분노, 역겨움' 여섯 가지로 분류된다. 이 말을 듣고 누군가는 '애개 내 감정이 겨우 그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 별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자는 감정입자도가 높은 사람일 가능성, 후자는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감정입자도? 그게 뭔데?
인간은 다양성이 표준이다. 유전자가 거의 100%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라도 서로 다르다. 하물며 인간의 내면, 감정이 고작 6개로 갈무리될 리 없지 않은가? 구성된 감정 이론 theory of constructed emotion 으로 유명한 리사 팰드먼 패럿은 '인간의 감정은 내면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패턴이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흔히 감정이 마치 지문처럼 인간의 내면에 저장되어 있어 상황에 따라 적절한 표정이 드러나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고 믿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6가지 기본 감정은 확정된 패턴이 아니라 수많은 세부적 감정들이 파생되는 재료로 쓰인다. 커피로 치면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를 그냥 마셔도 되지만 여기에 물을 타거나 우유를 타서 아메리카노, 라떼 등 파생 음료를 만들어내는 원리와 같다. 감정은 6가지 기본 재료로 놀라울 만큼 세분화된다. 리사는 "감정은 정동적 적소에서 감정이 분류되는 기준인 '유인성valence 유쾌한가 불쾌한가', '흥분도 arousal 평온한가 동요하는가'라는 두 축을 이용해 구분된다" 라고 주장했는데, [감정의 발견]의 저자 마크 브래킷은 이를 이용해 아래와 같은 mood meter 를 만들었다.
Mood Meter, 마크 브래킷
보라, 얼마나 많은 감정이 각각의 이름으로 존재하는지? 리사와 마크는 이를 '감정 입자도'라고 불렀다. 비유하자면 감정 입자도가 높은 사람은 4K UHD TV의 해상도로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지만, 감정 입자도가 낮은 사람은 네모 픽셀이 고스란히 보이는 흐릿한 해상도로 감정을 보는 것과 같다.
감정은 뇌의 작용을 통해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감각을 재료로 '생성'되는 결과물이다. 먼저 우리가 가진 5감으로 내외부에서 전해지는 감각을 지각하면 내수용 interoception 신경망을 통해 최종 내수용 감각을 만들어낸다. 그 다음 정동적 적소 affect niche 의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쳐 쾌감 또는 불쾌감으로 감각을 구분해 감정에 이름을 입힐 준비를 한다. 이때 감정 입자도가 풍부한 사람의 전두엽은 미리 학습되고 입력된 감정 사전에 따라 다양한 감정의 이름을 붙여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보다 깊고 풍부하게 포착해 낸다.
상대의 감정을 읽는 공감능력 역시 상대로부터 받은 각종 언어적, 비언어적 신호와 감각을 대뇌 거울뉴런을 통해 내부 감각으로 전환하고 전운동뉴런을 촉발시켜 마치 내가 직접 겪는 것과 같은 '느낌'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생긴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모르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심지어 사랑한다는 일련의 말들이 위선이고 가식인 이유다.
감정이 만들어지는 궁극적 목적은 결국 인간의 생존과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감정은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해 안정적이고 편안한 연쇄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타인과의 유대관계를 만들거나 유지하도록 돕는다. 반면 불안, 두려움,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은 아드레날린,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몸을 일시적인 비상상태로 전환시키고 고도의 집중력과 효과적 근력 사용을 가능하도록 만들어 그 자리에서 재빨리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도록 작용한다.
어떤 경우에서건 인간의 의사결정은 이런 감정 생성 프로세스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의사결정 당시의 감각이나 느낌은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고1아들 성적에 영향을 받는 박 팀장의 경우처럼 카페인이나 두려움 수면부족 따위 부정적 감각이나 느낌에 더 휘둘리기 쉽다. 숫자나 데이터는 기껏해야 감정적 동요에 올라탄 이성을 달래고 그에 끼워 맞추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문제는 대다수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이런 사실 자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대단히 이성적인 사람인양 착각에 빠져 있는 데 있다. 기존의 경험과 현재의 감각, 느낌이 빚어내는 사적 감정이 현재의 행동과 판단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데도 그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 부하직원들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와 모욕 등 관계의 문제를 유발한다. 무엇보다 결정적 순간, 숫자와 데이터에 가려진 통찰을 포착하지 못한 채 치명적 실수를 유발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조직과 그 안에 소속된 개인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숫자와 데이터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가장 최선의 수가 있음에도 숫자와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말하자면 윗선을 설득하기 용이한 차선, 차차선을 선택해 스스로 기회를 놓치고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는 일상업무에서 부지기수다. 누군가 '당신은 스마트하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그 오만과 착각이 일과 관계를 망치고 있는 원흉'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주거나 스스로 시간을 두고 자신의 내면을 잔잔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본질적 변화의 계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 퀴즈의 정답을 확인할 차례다. 사진 속 표정의 인물은 짐작했겠지만 테니스계의 유명스타인 세레나 윌리엄스다. 그 표정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을까?
이 사진을 보자.
정답은 바로 '환희'다. 여러분들의 답은 무엇이었나? 짐작컨대 대다수는 고통, 슬픔, 억울함 따위 부정적 감정을 떠올렸을 것이다. 정답을 확인한 후에는 의외라는 탄성을 내 뱉엇을 것이다. 아닌가?
감정이란 얼굴 표정뿐 아니라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모두 종합할 때야 비로소 판별이 가능하며 그 판단은 그 사람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달라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테니스 경기라는 배경, 한 손을 불끈 쥐고 있는 비언어적 신호가 표정과 함께 제공되었을 때야 비로소 공격 성공 후 환호하는 장면임을 알아챌 수 있다. 감정은 이렇듯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감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 만들어내는 복합 생성물이다. '척 보면 압니다' 수준의 선무당식 직관만으로는 놓치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감정이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을 감안하면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의 내면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여유와 시간을 가지는 일은 감정 학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에 틀림없다. 그 과정에서 전체의 맥락을 파악해 주어진 정보들을 종합하여 비교적 정확한 감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감정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상대의 감정은 물론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종합적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렇듯 감정이 자신과 타인, 관계와 경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미치는 영향은 상상외로 지대하다. 왜 우리가 직장생활을 포함한 관계에서 감정을 제대로 다뤄야 하는지, 그렇지 못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래도 감정, 감성보다 이성이 경영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을까?
출근 후 10분. 무드 미터로 내 감정을 점검하라
나는 매일 아침 일과를 시작하면서 10여분 간 명상을 한다. 벽면 어딘가에 무드미터를 출력해 붙여 놓고 머릿속으로 한 번 더 그것을 그린다. 그리고는 지금의 감정이 4 사분면의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개 아침나절의 감정은 두 축의 중간 지점에서 형성된다. 유쾌한가 불쾌한가, 활동적인가 침체되어 있는가, 그 어느 한편으로 크게 치우치지도 않는다. 다만 전날 화를 냈거나 우울한 감정이 들었다면, 어느 지점쯤에 위치하는지 그려보고 그 감정이 촉발된 원인을 곰곰이 되새긴다.
직장인이라면 출근 후 최소 5~1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자신의 책상에 앉아 눈을 감고 자신만의 감정 수업을 해보길 바란다.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되도록 정확한 이름을 붙여보는 시도는 마치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과 같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그런 시간을 가지면 감정 입자도는 눈에 띄게 세밀화 된다. 점심 식사 후 여유가 된다면 산책을 겸해도 좋다. 계절의 바뀌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람의 방향과 그날의 온도와 주변 사람의 체온을 5감을 통해 느끼고 집중해보자.
소설가 김영하는 '짜증 난다'라는 단어 하나로 부정적 감정을 퉁치지 말라고 충고한다. 나 역시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짜증 난다'라는 표현 하나로 퉁치기에 그 안에 들었을 세부 감정이 꽤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화가 났을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고, 두려울 수도 있다. 각각의 감정에 따른 대응 역시 달라진다. 화는 풀어줘야 하고, 슬픔은 위로해줘야 하고, 두려움은 해소해주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는 감정적으로 더 탄탄해지고 상대방과의 관계는 더 돈독해진다. 각각의 감정을 하나로 퉁쳐서 표현해 버릇하면 결국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진다. 적절한 대응 역시 어려워진다.
타인의 감정은 그다음이다. 스스로의 감정도 제대로 파악 못하는데, 남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오죽할까? 의도적 노력을 통해 구체화된 감정 입자도는 상대의 언어적, 비언어적 신호를 비교적 정확하게 짚어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관계의 기본은 자신을 먼저 알고 타인에 연결하는 능력이다. 타고나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전 내 감정의 이름을 확인하라
우선 단언한다. 우리는 절대로 100%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존재다. 스스로를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위험한 착각에서 먼저 벗어나라. 당신은 AI가 아니다. 설사 만에 하나 그에 가깝더라도 대놓고 자랑은 말라. 이성 지능은 AI에 압도적으로 밀릴 것이고 부족한 감성 지능은 마음 따뜻한 진짜 인간들에게 밀릴 테니 말이다.
숫자와 데이터는 의사결정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지만 이것이 전부라는 판단은 매우 위험하다. 인간은 비합리적 존재이며 이성은 감정에 영향을 받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는 습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자신의 감정에 대한 객관적 이해다. 그 시기가 언제였든 특정 상황에서 느꼈던 감정의 흔적은 장기기억 장치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비슷한 상황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나 현재의 의사결정에 반드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중요한 판단을 앞두고 먼저 해야 할 일은 잠시 멈춤 버튼 pause를 누루고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감정의 주류가 무엇인지 판단해 내는 일이다. 내면으로 딥 다이빙해 들어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샅샅이 살펴 그 감정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한 후, 눈앞의 숫자, 데이터와 결합하면 보다 객관적이고 궁극적으로는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부하직원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적극 반영한다면 금상첨화다.
특히 분노의 감정을 잘 다뤄라
6가지 기본 감정 중 '분노'는조금특별하다.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이 명확히 구분된다. 보통 분노와 관련해 잘못 알고 있는 착각 중 하나가 화가 나면 화나는 감정을 표출해야 잠잠해진다는 속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는 내면 낼 수록 더 불타오른다. 에너지가 소모되어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격분이라는 임계점에 이르도록 기름을 붓는 격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흥분하고 유독 폭력적인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 역시 감정이 만들어지는 대뇌의 메커니즘에서 비롯한다. 격분은 특정한 내외부의 자극을 받을 경우 대뇌에 흥분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도파민 아드레날린 등)이 과다 분비되어 일종의 범람 상태에 이른 경우를 말한다. 모노아민 신경전달물질(monoamine neurotransmitter)이라 통칭해 부르는데, 보통의 사람들은 격분 상태에 이르더라도 모노아민 물질들을 산화시키는 MAO(모노아민산화효소)가 정상적으로 분비되어 빠른 시간 내에 격분상태를 완화시킨다.
문제는 MAO 발현의 유전적 결함, 이른바 전사유전자 Warrior Gene를 가진 사람들이다. 전사유전자는 X 유전자에만 발현되는데 그 확률이 약 30%다. 남자의 경우 유전자가 XY로 구성되므로 전사유전자 발현 확률은 그대로 30%가 된다. 남성 열 명 중 세 명은 격분에 이르면 분노조절이 잘 안 되는 부류라는 의미다. 여자의 경우 XX로 구성되므로 30%x30% = 9% 약 10명 중 1명 꼴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된다.
여자에 비해 남자들이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를 설명한다. 이들은 특히 술자리에서 자주 목격된다. 알콜은 그렇잖아도 낮은 이들 분노의 임계점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상습적으로 주폭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한다면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격분 상태에서 스스로를 컨트롤하거나 누군가의 개입으로 흥분 상태가 완화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기 때문이다. 분노 조절의 핵심은 분노에서 격분으로 촉발되는 임계점을 잘 파악하고 지혜롭게 관리하는 일이다.
사실 말이야 쉽지 어디 분노 조절이 마음대로 되던가? 사회가, 내 마음 같지 않은 인간관계가, 보잘 것 없는 내 처지가 수시로 분노의 임계점을 낮추고 분노 게이지를 쌓아올려 위험수위 근처에 도달하기 일쑤지만, 감정이 생성되는 원리를 되새기고 되도록 좋은 방향으로 마음 먹기를 반복하는 연습만은 게을리 하지 않는다. 노래를 듣고, 드라마를 보고, 버스를 타고, 우울할땐 술을 마시지 않고, 안좋은 기분으로는 말을 섞지 않는 구체적인 액속과 행동들을 지켜나간다. 이는 확실히 큰 도움이 된다.
분노의 감정만 제대로 다스려도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 문제의 8할은 잠재울 수 있다. 개꿀 아닌가.
내가 지금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잠시 멈추어 스스로의 감정을 깊이 있게 관찰해 보라. 혹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제3자적 관점에서 자신의 감정을 새롭게 들여다보라. 지금 '당신의 감정이 이성을 뒤흔들고 있어요.' 라는 사인만 주고 받을 수 있어도 사람이, 조직이, 회사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