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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Oct 31. 2023

마음이 넘어져 생긴 상처가 더 아프다

Emotion _self _3.회복탄력성

공감을 잘하는 사람들이 상처도 잘 받는다. 타인의 고통, 아픔, 슬픔 까지도 속절없이 자기 것인 양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같아선 고난의 종합 선물세트를 받아 든 것만 같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기득권의 준동, 해묵은 이념논쟁, 철 지난 유행가 마냥 매년 반복되는 취업난, 국밥 한 그릇에 1만 원은 기본인 치솟는 물가, 작년 이맘때 일어난 가슴 아픈 참사의 기억까지(유가족에 마음을 다한 위로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런 인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행인 건 뛰어난 공감능력 때문에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치유력도 높다는 점이다.


EQ감성지능 권위자 다니엘 골먼은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의 특징으로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동기 부여를 하고, 좌절에도 앞으로 나아갈 줄 알고, 만족을 뒤로 미루며 충동을 억제하고, 자기 기분을 통제하고, 걱정거리 때문에 사고력이 저하되지 않게 하며, 감정이입을 할 줄 알고, 희망을 품을 줄 아는 기질

8가지를 거론했는데,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름 아닌 회복탄력성이다.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이란 웬만큼 마음의 상처를 받아도 거뜬히 이겨내고 더 나은 상태로 거듭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중요한 건 이런 마음의 상태가 단순히 정신적인 측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물리적 신체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독일의 신경과학자이자 내과, 정신과 의사인 요하임 바우어는 암이나 심장마비 등 치명적 질병을 유발하는 인터루킨-6 라는 염증인자를 최초로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공감하는 유전자]에서 의미지향적인 삶, 이른바 에우다이모니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체내 인터루킨-6의 발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단언한다.


반면 자기 자신의 이익과 현재의 쾌락을 추구하고 단편적인 성과에 매몰되어 극단적 경쟁에 심취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등의 영향으로 위험유전자 유발률이 높아지고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확률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고 주장했다.


요하임 바우어는 연구를 통해 만성 염증이 생기고 퍼지는 이유는 두뇌의 불안 중추(편도체)의 과잉 활성화에 있었는데, 실험 대상자의 스트레스 수준이 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덧붙여 좋은 삶과 명백히 대척점에 있는 것, 예컨대 의도하지 않은 고독, 사회적 소외 또는 고립, 과도한 요구 혹은 고강도의 압박, 굴욕이나 위협, 부당한 대우나 학대, 영양 부족이나 확실한 거처의 부재, 의도치 않은 실업 등 의문의 여지가 없는 부정적 일들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일으켜 만성 염증 유발 요인을 높인다고 확언한다.


단순히 긍정적인 자세로 의미 있는 삶을 살면 좋아질거야라는 마인드셋의 차원을 넘어, 타인과 유대적 관계를 맺고 공감력을 발휘하고 더 높은 차원의 의미를 부여하는 '좋은 삶'의 영위가 실제 인간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돕고 궁극적으로는 목표한 바를 달성케 하는 중요 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회복탄력성을 이루는 삶의 태도는 무엇보다 긍정성, 낙천성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그저 낙천적이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때때로 낙천성은 현재를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채 근거도 없이 무작정 좋아질 것이라는 예단에 머물게 한다. 여기에는 미래가 결여되어 있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지를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 상황 탓, 남 탓으로 떠넘기고 종내에는 자기 합리화에 빠져 상황은 더 악화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인간이 처한 최악의 환경에서 어떻게 삶을 유지하고 끝내 살아남는가? 에 대한 통찰을 담은 사례로 널리 알려졌다. 스톡데일은 2성 장군으로 베트남 전쟁 당시 가장 고위직 포로였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10년 가까운 포로 생활을 하며 동료 포로들을 관찰했다. 혹독한 포로 생활을 견디고 끝까지 살아남아 송환된 사람들의 특징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들은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벌벌 떠는 비관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낙관론자도 아니었다.


비관론자는 이해가 가는데 낙관론자는 왜?

스톡데일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수의 낙관론자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크리스마스가 오면 특사로 풀려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지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정작 당일이 되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좌절감에 빠져 상심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 죽어 나갔다는 것이다. 반면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졌지만 보다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현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인 후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생활했고 이들은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신 역시 포로로서 똑같은 고초를 겪으며 그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하루하루 의미 있는 삶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 박사 역시 악명 높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감 생활을 통해 얻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통찰을 이야기한다. 방금 죽은 동료의 신발을 벗겨 제 발에 옮겨 신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된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인간으로서 존엄을 포기하지 않고 의미 있는 삶을 끝끝내 지켜낸 존재의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역시나 현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한 상태로 때로는 환경에 순응하고 협조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려는 정신력과 공감능력에 기반한 회복탄력성에 있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각자 베트콩의 포로에서, 아우슈비츠의 수용자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질, 본성을 목격한 후 남긴 기록은 그 자체로 끔찍한 실상을 전해주지만, 한편으로는 극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 삶을 이어가는 동력이 무엇인지 결코 가볍지 않은 깨달음을 준다.


오늘날 아우슈비츠와 베트콩 포로 생활을 겪어 보지도 않은 이들이 '직장을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라고 떠드는 현실을 빅터 프랭클과 스톡데일이 마주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생명력을 높여 마침내 목표한 바를 달성하게 하는 회복탄력성, 높은 감성지능의 힘을 인정하고 이를 조직 내에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쩌면 오늘날 회사조직들이 겪고 있는 모든 형태의 관계의 문제의 대부분이 저절로 해결될지 모를 일이다.




헛된 기대도 지나친 좌절도 말고 그저 오늘의 삶에 집중하라

감성지능은 학습이 가능한 영역이다. 애초에 대뇌 편도체부터 전두엽으로 이어지는 감정 인식 시스템에 문제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공감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도 의도적이면서 지속적인 감정이입 노력을 거치면 마더 테레사급 공감능력자가 될 수 있다.


전문적인 훈련도 필요 없다. 시작은 객관적인 자기 인식부터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5~10분 정도의 시간을 내어 명상하는 기분으로 하루 전체를 그려보고 일상을 정리해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단한 계획이나 성취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저 매일 흘러갈 뿐인 하루를 붙잡아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뿐이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씁니다"

[아웃오브아프리카], [베트의 만찬] 작가인 이자크 디네센이 한 말인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용함으로써 더 유명해졌다. 실제 무라카미는 이 명언으로부터 매일 원고지로 200페이지를 쓰는 원동력을 얻는다고 했데 그 과정에서 꽤 괜찮은 작품들이 툭툭 떨어진 것뿐이라고 겸손해한다.


이런 대단한 사람들도 그저 하루하루에 의미를 담아 최선을 할 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에 얼마나 심각한 좌절과 벅찬 희망이 번갈아 오갈 수 있을까? 작은 성취에 감사할 줄 알고 작은 손실에 대범한 자세로,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면 그뿐.


마음먹기를 연습하라

어느 날 제자가 와서 물었다.

"제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개가 삽니다. 한 마리는 매우 사납고 공격적이고 또 한 마리는 얌전하고 평온하며 협조적입니다. 두 마리 중 어떤 개가 살아남을까요?"

현자는 말했다

"네가 밥을 더 많이 준 쪽이 살아남으리라."


이 일화는 사실 여러 버전이 있다. 석가모니와 그 제자의 대화라는 썰도 있고, 공자와 그 제자의 일이라는 썰도 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인생사 마음먹기 달렸다'라는 뻔한 교훈을 존경할만한 누군가의 이름을 빌어 확실히 심어 줄 수 있다면.


내 마음을, 관점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한 가지 사건을 두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볼지, 부정적으로 볼지는 내가 결정하기에 달렸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보기를 선택한 것일 테다. 관점을 바꿔 좋은 방향으로 트는 것 역시 본인의 의지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긍정, 부정은 세상에 없다. 다 자기 주관이 반영된 이후의 결과물 들이다.


문제는 이 당연한 진리가 현실에서 쉽게 발현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이미 앞에서 이야기한 감성지능을 저당 잡히고 살아온 사회적 문제 탓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방법은 하나다. 시간을 두고 pause 버튼을 누르고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찬찬히 들여다볼 때 가능한 일이다. 지나고 나면 별 것도 아니다.


마음관리를 제도화하라

신체적 정신적 고통경험은 전방 대상 피질 ACC를 동일하게 활성화시킨다. 마음의 상처가 단지 어떤 휘발성 부정적 감각을 불러일으키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몸에 생물학적 흔적을 남긴다는 뜻이다. 다리가 부러지는 아픔을 정신적 고통에서도 느낀다는 말이다.


직장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주범은 회사와 경영진 그리고 리더다. 그들이 내린 의사결정과 소통의 방식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다.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 등 사람을 해고하는 일, 불공평한 인사제도, 강압적이고 비인간적인 리더십 등의 문제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생긴다.


문제는 이런 상처가 당사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 이후 남은 사람들 역시 큰 상처가 남는다. 어제까지 함께 울고 웃고 동고동락했던 동료가 한순간에 잘려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정말이지 고통스럽다. 혹여 '경쟁자가 줄었다' 며 내심 웃는 자가 있다면 인간의 탈을 쓴 외계종족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이런 일을 자행해 온 회사와 경영진은 정신력을 강조하며 마음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 외려 정신력이 나약한 사람 취급 했다. 몸이 아플 경우를 대비해 의무실을 마련하고 물리적 상처가 생기면 즉각적인 치료를 해주는 것이 상식인 반면 마음이 다치는 일엔 별다른 조치가 없다. 저 스스로의 마음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외계종족(소시오패스) 경영진들은 우리도 그랬으니 너희들도 알아서 이겨내라는 식이다.


"여러분과 내가 가장 다른 점이 뭔지 압니까?"

모 대기업의 전무는 신입사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연봉이요"

"능력이요"

"바로 얼마나 많은 모욕을 견뎠느냐?라는 차이입니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능력의 차이라던가 연륜의 차이 같은 게 아니라 '모욕'의 차이라니. '허'를 찔렸고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점점 불쾌해지지 뭔가? 이 세상은, 회사는 얼마나 많은 모욕이 일상이 되었을까? 싶어서다. 모욕을 견디지 못하면 팀장, 상무, 전무까지 오르지 못하는 세상이란 말 아닌가?


이제 막 시작하는 신입사원들 앞에서 우리 회사는 '사내 모욕이 일상'이라는 선언에 다름 아닌가? 한 회사의 전무로서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모욕이라는 부조리를 없애고 인격적으로 건강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메시지도 아니고 여전히 그것을 견뎌야 된다는 메시지라니. 회사 생활이 만만치 않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라는 메시지였겠지만, 전무씩이나 되어서 아직도 그런 부조리를 뿌리 뽑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백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모욕을 말한 전무의 마음은 건강하긴 한 걸까? 겉으로 보기엔 대기업의 전무씩이나 됐으니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이겠지만 그 많은 모욕을 견딘 대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을 리 없다.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인간성 상실의 문제, 인격모독의 문제, 인간을 부품화 하는 문제 따위 그 수많은 부조리에 마음을 다치고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채 감정 불능자가 된 경영진들이 또 다른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회사는 마음 치료에, 아니 마음 관리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 전문 심리치료사를 채용해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마음 치료/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사정이 여의치 못할 경우 외부 전문기관에 연계해서라도 진정성 있는 멘탈 케어 서비스를 상시화 해야 한다. 특히 감정 노동이 빈번한 서비스업종이나 TM등 업무를 하는 구성원들에게는 필수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할 예정이라면 멘탈 Revitalizaiton 프로그램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관리해주지 않는다면, 집단으로 정신적 교통사고를 일으킨 채 방치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왜 이런 의사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CEO와 핵심경영층 차원에서 명확한 이유와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고 구성원들의 사전 공감을 확보해야 한다. 대상자를 선정하고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도록 진정어린 대화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개인 능력의 문제나 잘못이 아닌 회사의 경영상 문제로 결정된 사항임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구조조정 대상자의 보상과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한 진심어린 조언과 지원 방안을 제시헤야 한다.


구조조정이 완료된 이후에도 남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CEO와 경영진 차원의 대화가 이어져야 한다. 구조조정 이후의 Blue print 를 새로 마련해 제시하고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을 천명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남겨진 이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있음을 인정하고 개인차원에서 극복하기 힘든 구성원이 있다면 회사차원에서 전문가를 활용한 개인화된 care방침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상당한 인풋(돈, 시간, 노력)이 투입되는 일이며 단순히 한번 털어내고 마는 이벤트로 접근되어서는 안된다. 외상 후 증후군이 지속되면 조직 전체에 장기적인 해를 끼치지만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고 극복해낼 수 있다면 외상 후 장애는 외상 후 성장으로 거듭나 개인과 조직 모두 퀀텀 점프할 수 있는 계기로도 작동할 수 있다.


멘탈 Revitaliztion 을 결코 허투루 여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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