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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Nov 14. 2023

MeMeMe 세대. 정말 자기밖에 모를까?

Emotion _ Social _ 2. 이기주의

MZ 말고 잘파세대가 등장했다. 1990년 중반 ~2000초 Z세대와 2010년 이후 출생자인 α(알파)세대의 합성어란다. 잘파세대의 아이덴티티는 한마디로 MEMEME, Me first 로 규정되는 모양이다. 집단을 거부하고 개인적 선호에 의해 사고하고 행동하는 신인류란다. 그놈의 신인류.


MEMEME? Me first? 이게 이기주의냐? 하면 뭔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좋다 나쁘다는 가치 판단보다는 이전 세대보다 개인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라는 해석이 더 타당하다. 합리적 개인주의가 더 합당할지 모르겠다. 물론 잘파세대 모두가 이런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있다. 어떤 세대에 속했다고 동일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일반화시키고 보는 오류는 뭔가 불편하다. 공통의 생활양식 예를 들어 칼 같은 더치페이라던가, SNS를 통해 숨 쉬듯 주고받는 관계, 환경과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가치 소비 따위 새롭게 등장하는 세대가 갖는 기본적 특징은 있겠지만 누구나 예외 없다 간주하는 순간 오해가 생긴다. M세대, X세대, 베이비붐 세대라고 MEMEME, Me first 가 없을까? 아닌 척하면서 사실 속마음은 이기적인 음흉한 인간들은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다.


세대를 나눠 특징 지우고 일반화하는 일, 때로는 추켜세우거나 때로는 악마화하는 일 이 모두가 사실은 마케팅 상술임을 이제는 안다. 앞으로 뭔가를 팔아먹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가열차게 쓰일 테고 그 안에서 긍정과 부정의 영향이 공존하게 될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굴뚝 산업사회에서 지식 산업사회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와중에 그 과도기를 경험하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변화된 시대의 열매를 온전히 누리는 세대의 생활, 사고, 행동 양식은 그 이전 세대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 분명하다.


아무래도 걸리는 것은 Me first, MEMEME 라는 특성이다. 합리적 개인주의를 넘어 자칫 나밖에 모르는 극단적 이기주의, 결과주의로 흐를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협업과 희생, 양보, 과정의 의미 따위 무형의 가치가 자칫 고리타분한 데다 시대를 역행하는 걸림돌로 간주될 가능성 또한 농후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개인의 취향이 강하면 개인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합의되지 않은 상식이 난무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인간은 가족이든 학교든 회사든 어떤 형식으로든 사회에 소속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감안하면 개인과 전체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그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어쩌면 애덤 그랜트의 명저 [기브 앤 테이크]에서 개인과 전체 사이의 황금 균형, 골디락스 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덤 그랜트는 주고받음과 관련하여 세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바로 Giver, Matcher, Taker 다. 주기만 하는 사람, 주고받는 사람, 받기만 하는 사람 정도 되겠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받는 만큼 주는 Macther로 산다. 가정, 학교, 직장이라는 사회를 거치는 동안 4대 종교 경전의 공통 주제인 황금률을 상식으로 배우고 행동으로 옮긴다. 이렇게만 살아도 평생 별다른 문제없이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Taker와 Giver는 비주류다. 소수다. 상식의 선에서 벗어나는 존재들이다.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존재들이다.


애덤 그랜트는 직장 내에 성공의 사다리가 있다면 실패의 가장 하단에 Giver들이 위치한다고 주장한다. 역시, 주기만 하는 사람은 '호구'라는 말이 맞았어! 라는 인식이 팩트임을 증명한 셈이다. 그러면 성공하기 위해선 뭔가를 주면 악착같이 받아내야 한다 라는 결말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걸까?


그렇다면 성공 사다리의 가장 꼭대기에는 누가 있을까? 애덤 그랜트는 이 역시 Giver라고 말한다. 아니, Giver로 살면 성공 사다리의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꼭대기에 오를 수도 있다? 허를 찌르는 반전. 그 비밀은 바로 베풂을 행하는 주체가 누군가?라는 점이다. 최소한 받은 것을 되돌려 줄줄 아는 Matcher들과 주로 관계를 맺는다면 좋은 평판을 얻고 마침내 그 진가를 인정받아 성공 사다리의 꼭대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반면 받을 줄만 아는 Taker들과 엮인다면 착취의 대상이 되어 '호구'라는 불명예를 쓰고 성공 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자기밖에 모르고 제 이익에 혈안이 되어 타인을 이용하는데 탁월한 '생각하는 하이에나' Taker들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한다는 의미다.


결국 제 이익에 진심인 Taker들이야 말로 진정한 승자인 것일까? 다행히 이들 역시 자신들에게 이용당한 Giver들과 마찬가지로 성공 사다리의 가장 아랫단에 위치한다. 당장은 알량한 눈앞의 이득을 챙기고 경쟁에서 악착같이 이겨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곧 그 실체가 드러나고 만다. 마치 머리만 풀숲에 처박으면 몸전체를 다 숨겼다고 믿는 꿩의 어리석음처럼 사회적 평판이라는 축적의 힘, 상식과 함께 살아가는 이로움의 무게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는 지능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현재, 주변의 상황, 공기를 읽지 못하는 정서 지능의 결여, 이는 때로 치명적인 생존의 위기를 야기한다. 이들은 성공의 사다리 가장 밑바닥에 처박혀 고립되면서도 제 탓이 아닌 남 탓, 사회 탓으로 일관하며 누군가를 향한 분노를 표출할 따름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다. 아니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대로 인간이 삶 그 자체가 자신의 DNA를 후대에까지 전하기 위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이타심은 사실상 그 본능을 거스르는 일과 다름없다. 상당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선천적으로 이타심을 타고난 사람도 있는가 하면 대개는 사회생활, 관계를 통해 그것을 배운다. 자신의 이기심을 드러내고 눈앞의 이득을 챙기는 일이 당장은 이로울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스스로에게 불리하거나 내가 속한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끼쳐 결국 내 생존과 안위에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라도 깨닫게 된다.


이타심은 결국 극한 이기심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사사로운 욕구 일부를 희생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행위. 그리하여 내가 속한 조직 전체가 부강해지면 역설적으로 자신이 내려놓은 것들을 두 배 세배 혹은 그 이상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하여 서로의 생존과 안위가 지속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기주의자가 돼라

시작은 자신을 향한 사사로운 이익으로부터다. 최소한 홀로 설 수 있는 역량과 기본적인 동력을 갖추기 위함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신념, 애정 없이 타인에게 닿을 수 없다.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사랑하고 행복을 빈다는 말을 꺼내는 일만큼 가식과 위선도 없다. 우주는 내 중심으로 돌아야 마땅하다.


내 내면이 가득 차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할 때 비로소 사사로운 이익의 좁은 굴레에서 벗어나 타인과 조직 어쩌면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진심을 더해 애쓸 수 있다. 이기심의 본질이 利에서 以로 변하는 순간이다. 결과는 물론 책임 역시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以기주의다. 좋을 때 좋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 성과는 그 누구의 탓이어도 다 좋지만, 나쁠 때 나쁜 건 최악이다. 실패에도 내 탓이오가 절로 나와야 한다.


헌신하라. 그렇다고 헌신짝 되지 않는다

타인을 위해 고개를 숙여본 적이 있는가?

드라마 [미생] 오 과장은 징계 위기에 처한 김 대리를 위해 자신이 증오해 마지않는 최전무를 찾아간다.
"영업 3팀 김동식 대리 징계위원에 대해서 제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오 과장, 이 장면을 우연히 지켜본 김동식은 마음에 무언가가 내려앉는다.


오 과장의 부탁 때문이었는지 징계위원회는 취소되고 두 사람은 곱창에 소주 한잔을 기울인다.

"그냥 놔두지 그러셨어요. 그까짓 감봉 몇 개월 받는다고 회사 잘리는 것도 아니고...고과야 뭐 승진 좀 늦어지면 어때요."

"아이, 그 짜식 그냥 고맙다 해~"

"과장님이 전무님한테 아쉬운 소리 하시는 거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아니까 그렇죠"

"알면서 하니까 실수인 거야, 같은 실수 두 번 하면 실력인 거고..."

"과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이런 과장님이라면 평생 존경하는 마음으로 곁에 있고 싶지 않을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라. 헌신짝 돼도 좋다는 마음이라면 더 좋다. 아낌없이 주는 기버가 성공의 사다리 꼭대기에 오른다는 계산은 접어두자. 그 과정에서 진정성은 도드라지고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내 이익, 내 체면, 내 성공을 앞세우고 그에 몰두할수록 관계는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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