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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ul 17. 2024

수입0원 무명작가, 1년 만에 특강요청이 왔다 ③

1년 만의 출근, 익산 가는 KTX

②편에 이어서

https://brunch.co.kr/@hurator/656


이전 메일에서

5월 31일까지는 확답을 주겠다 했으니

무려 한 달 반만의 회신이다


당장 다음 주로 직원 조회일정이 잡혔다며

급히 전화를 달라는 요청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은근 부아가 치밀었다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여기저기 재보다 날짜가 임박해

부랴부랴 연락한 티가 역력했다


기회에 목마른 프리랜서 입장에서

자존심만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


마음을 가다듬고

약간의 시간텀을 두었다가(최소한의 자존심이랄까?)

전화를 걸었다


기다렸던 듯,

그럼에도 목매고 있지는 않았던 듯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반가움을 표하고


7.11일 목요일로 일정을 확정했다

시간은 오전 9시 반부터 1시간 30분,

장소는 전주 혁신도시 내 국립 XX연구원 청사


나름 잘 나가는 강사라면

지방의 1~2시간 이내 일정은

그다지 달갑지 않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왔다 갔다 소비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한 달을 지나

내 손에 공이 다시 넘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감사히 받기로 했다

돈보다는 경험에 대한 갈증이 컸으므로


평소 전주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수입 0원 프리랜서 주제에 여행은 언감생심이겠지만

이 기회에 발이라도 디뎌보는 게 어디냐 싶어서다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KTX 예매앱을 열었다

불과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


문제는 시간이다

나는 평소 강의가 잡히면

최소 1시간 전에는 강의장소에 도착한다

분위기를 먼저 익히고 청중을 파악하기 위한

나름의 루틴이다


그러려면 익산역(담당자는 전주역보다 익산역 도착을 추천했다)

늦어도 8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선택지는 딱 하나, 서울역에서 오전 6.22분에 출발하는 KTX 뿐이다

다행히 역에서 강의장소까지는 주최 측에서 이동수단을 제공하기로 했다


KTX예매까지 마무리하고

강의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수백 번 쓰고 읽고 말했던 강의안이지만

1년여 만에 펼쳐보니 뭔가 새로웠다


정말 성장한 것일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빈틈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고치고 다듬고 빼고 추가하는 과정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조직문화 밑 MEET 강의안

그렇게 완전히 몰입돼

꼬박 이틀 만에 버전업 된 교안을 완성하고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17년간 겪었고 퇴사 후 5년의 시간 동안 연구해

비로소 만들어낸 나만의 이야기

그것을 듣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고

심지어 돈을 받으며 전할 있다는 그 사실에

마음이 벅찼다


이제 관건은 어떻게 잘 전하느냐의 문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 강의를 했던 그날처럼 교안을 들고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면서도

머릿속에 넣어둔 교안을 떠올리며

중얼중얼


아마 누군가 나를 마주쳤다면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강의 전날

KTX일정을 다시 확인하고 새벽 4시 알람을 맞췄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년여 만에 출근하는 느낌

그 기분 좋은 설렘


언뜻 잠이 들었다 싶었을 때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샤워를 하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아직 어두컴컴한 세상밖으로 나왔다

아직 전철이 다니기도 전인 새벽 5시


평소라면 절대 타지 않을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새벽녘의 강변북로는 한가했다

쌩쌩 달려 용산을 지나 서울역에 도착하니 5시 30분

택시비는 무려 2만 원이 나왔다

그래도 좋으니 이런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 싶다


이 시간에도

서울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많았다

여행객이라

출퇴근하는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물결

새벽의 여유로움 속에

한 안도감 그리고 생동감이 느껴졌다


어느덧 시간이 되어

열차에 탑승하고 자리에 앉았다

앞자리에 꽂혀 있는 안내책자를 보니

마치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는 기분도 느껴졌다


6.22분 열차는 서울역을 출발했고 곧 푸른 자연이 펼쳐졌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리고 안개 낀 창밖의 풍경이 기분을 차분하게 만든다

1년 만의 특강, 잘할 수 있을까?

수도 없이 연습한 내용을 또 다시 중얼중얼 거려본다



7월의 어느 날,

나는 기회의 땅 전주로 가는 KTX 를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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