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어려워 루틴을 만들어 보지만 그것도 어려운 게으름뱅이 이야기
처음 습관과 루틴은 같은 의미인 줄 알았다. 검색해 보니 습관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의 집체이며, 루틴은 의식적으로 반복하기 위해 세운 계획 혹은 일련의 행동_구글 가라사대
라 한다.
나만의 거창한 습관을 생각해 내고 싶었지만 도통 없다. 이왕 글로 남기는데 숨쉬기, 배고프면 밥 먹기, 계절성 비염, 변비는 만성적. 이런 얘길 쓸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습관을 만들기 위한 루틴은 무엇이 있나. 또한 없다. 시도한 것은 많지만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해 쌓인 미완성, 내일의 내가 언젠가 하겠지 목록이 산을 넘는다. 시도를 많이 했다는 다른 증거는 작심삼일 다이어리도 샀는데, 보면 이틀째 이후로 아무것도 안 쓰여있어 그 부분만 때내고 당근에 팔았다.
뭔가를 시도하려고 굳은 다짐으로 관련 장비를 사고, 언젠가 꾸준히 하게 될지 몰라 구석에 먼지와 함께 쌓이고, 어느 날 물건에 치여 천장에 붙어 자는 나를 발견하고 중고로 팔아버리는 악순환.
(은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이렇게 된 이상 최근 몇 년간 기억을 다 발골해 습관 비슷한 걸 찾아본다.
행운 찾기
존재의 이유가 없으니 안 타는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지배할 때 가진 의식적 행동이다. 처음에는 꽤나 열심히 했지만 지금은 문득 '이것이 오늘의 행운! 아싸!'로 귀결된다. 다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행운이라 생각했던 순간은 기억한다. '산책 중 길에 핀 꽃이 너무 예뻤다.' 아름다움은 옳다는 르네상스식 가치관이 2% 정도 있는 나에겐 길가에 핀 꽃이 그땐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이름을 몰라 네이버에 꽃 검색도 해보고, 꺾으면 오래가지 못하니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쳐다봤다. 우주의 스포트라이트가 한 곳으로 집중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이런 아름다움이 내 눈에 보이다니 정말 행운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행운 찾기는
'길가 강아지풀을 가져가니 고양이가 2만 원짜리 장난감보다 신나게 놀았다.'
'감자탕의 감자가 구황작물 감자가 아닌 걸 40년 만에 알았다.'
'안 쓰는 오래된 핸드폰에서 하고 싶은 최신 게임이 잘 돌아가서 게임폰이 따로 생겼다.'
등 끝도 없이 자주 발견했다. 내 정신건강에 얼마나 유익한지 모르겠으나 누군가 운에 대해 물어보면 '꽤나 괜찮은 운을 갖고 사는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습관 없는 습관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라 뭐든 하려고 하면 시작도 안 했는데, 스트레스를 받는다. 머릿속으로 일 진행과 가설을 세워 혼자 평행 우주 속 스스로를 보며 고통받는다. '루틴을 만들어 건강한 인생 만들자!'란 구호가 나에겐 삐빅! 용량 초과입니다. 같았다. 연약하고 비겁한 변명 같아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겉으론 호응하고, 속으론 '응, 나는 그냥 알아서 할래. 못하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심장을 한 움큼 쥐어짜는 압박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명명하는 '습관 없는 습관'이 만들어졌다. 실패하거나 중도 포기해도 처음부터 '만약 안되면 나는 인간 아님.'이 없었기 때문에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는 비겁한 변명이자, 정신 승리라고 비웃을 수 있지만, 그게 내 최선인 걸 어쩌랴.
이 글쓰기는 올해 세 번째 접어들고 있다. 클하대 산업스터디 3조 안에서 진행되는 '키워드 글쓰기'다. 자율성을 보장받고, 글에 대한 비난이 없어 세 번째까지 쓸 수 있었다. 작심삼일을 이뤘다. 잘했다 스스로 칭찬한다. 이런 기회가 생겨 세 개의 얼렁뚱땅 글을 완성하게 만들어 준 N님이 오늘의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