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 전부터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가 하는 글쓰기 합평 모임을 나가고 있다.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덕질하다 김봉현 작가와 그가 하는 합평의 존재를 알게 됐고, 망설임 없이 바로 합평을 시작했다. 사실 게으르고 재능 없는 나에게는 일종의 판타지 같은 프리랜서의 삶을 엿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첫 시간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이라 여러 문단을 할애하고 싶다. 학창 시절 '글짓기'에서 떠나온 지 너무 오래인 나는 글을 쓰는 것부터가 너무 힘들었다. 꼬박 네 시간을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지만 두 문단도 못썼다. 그래서 맥주만 왕창 마시고 썼다기보다는 갈겼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수준의 글을 써서 냈다.
어색한 첫 합평 시간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나이 서른 넘어 처음 글이라고 써온 것에 상처받을까 에둘러 좋은 표현들로 나를 다독였다. 마치 메일 하단에 best regards처럼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善)의 피드백을 했다. 마지막 김봉현 작가의 순서... "초등학생 일기 수준의 글이네요" 그의 입에서 실제로 나온 평가였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근 몇 년간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못했다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었나..?! 없다. 완곡하고도 비굴한 표현에 익숙해진 삼성전자 간부가 박살 나는 시간이었다. 이후 글쓰기 합평은 나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보고 신랄한 평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 됐다.
사람들의 날카로운 피드백에 굳은살이 배길 무렵 합평은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일요일, 한 주간 있었던 일들로 글감을 떠올리고 글을 쓴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진 글을 합평하면 그게 진짜 한 주의 시작이자 월요일 마무리이다. 어쩌면 합평 덕에 월요일 출근길이 그리 싫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일주일에 하나의 글을 써와서 읽고 합평한다. 나에게는 이 시간이 꽤나 소중하다. 이곳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 해요'라는 말을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이지 존경스러운 열정맨도 있다. 또 일터에서는 멀게만 느껴지는 사회 초년생도 여기서는 바로 내 옆자리다.
10년 넘게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 회사는 이제껏 내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정말 끊임없이 매초, 매분 단위 평가를 당해왔다. 나 역시도 함부로 간섭하고 수시로 평가했다. 내 모든 행동거지와 말 한마디는 평가대상이 됐다. 그러나 합평에서는 그저 내가 쓴 글로만 평가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내 계약 연봉이 얼마인지, 집은 샀는지, 남자 친구 직업이 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곳에는 더 잘 쓰고 싶은 열정과 좋은 글만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글을 잘 쓰고 싶다. 솔직하고 신랄하게 평가받고 싶다. 글로 평등한 이곳이 좋다. 회사 밖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세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