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반면교사 삼을만한 일들이 생겼을 때 임직원에게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삼성인 이러지 맙시다'라는 제목의 전체 메일을 보내왔었다. 그러나 삼사 년 전부터 삼성인 이러지 맙시다는 사라졌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를 삼성인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다.
25살에 입사해서 이제 벌써 10년 나는 삼성인 중에 삼성인이었다. 라떼만 해도 입사 후 실무 배치 전 한 달가량의 합숙교육인 SVP(Samsung shared Value Program)를 했었다. 한 달 동안 신입들끼리 합숙을 하면서 파란피로 수혈하는 시간 그야말로 삼뽕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육 개월 뒤 삼성의 모든 계열사 신입사원이 다 같이 모여 각 사업부의 결속력을 다지는 하계수련대회까지 하고 나면 진짜로 피가 파랗게 변했다.
건조하게 출근한 11월 1일, 전자의 52번째 창립기념일이었다. 대표이사라는 사람은 임직원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지만 우리는 별로 감사하진 않고 어떻게든 돈을 덜 주고 더 부려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동료들과 볼멘소리나 하고 있는데 "ㅇㅇ야 나 퇴사해" 주황색 메신저가 번쩍였다.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던 동기 언니였다. 우리는 각별한 사이었다. SVP때 룸메이트도 했었고, 언니의 부케도 내가 받았었다. 서로 죽이 잘 맞아 뻔질나게 여행도 다녔었는데 한 여행지에서 서로 감정이 상한 뒤로 데면데면해져 연락이 소원했던 상태였다. 오랜만에 안부했고 언니는 더 이상 회사에 8시간을 매여있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적 자유가 생겼다 말했다. 부러웠고, 종일 마음이 이상했다.
4~5년 전 동기들은 책임 진급을 위해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너나없이 중국어 영어 그리고 고과 관리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언니는 달랐다. 진급은 진작에 포기했고 회사에서 있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그마저도 주식이나 경제 유튜브를 들으며 재테크에만 혈안이었다. 그때 난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동기들은 다 과장/책임이 되었는데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언니가 솔직히 한심하기도 했다.
입사 저년차에는 그저 밥값을 하는 내가 대견했었다. 연차가 올라가고 회사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날이 지속됐지만 본분을 다 하고 노력하는 내 삶이 나름 값지다고 생각했다. 성실하게 노력하며 얻은 내 직장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나를 갈아서 일해도 매 년 올라가는 연봉은 몇 백. 또래에 비해 많이 받고 있지만 서울 외곽에 집 하나 살 수 없는 현실. 업무능력을 인정받고 노력해도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 평가. 이런 것들이 나의 소속감을 자꾸만 사라지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분야에서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올림픽 선수단도 그랬고, 좋아하는 걸 꾸준히 좋아하고 자기 분야를 구축해나가는 뮤지션들도 그랬다. 직장인인 나는 내 업무 능력치를 끌어올려 내 노동을 더욱 가치 있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말을 시간당 노동가치가 높은 사람이 되란 뜻으로 이해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야근하지 않는 월급루팡이 되란 뜻이었던 걸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건 동기 언니가 아니라 나였을까? 땅에 떨어진 노동가치를 높이는 노력보다는 주식과 코인 그리고 호갱노노를 수시로 살피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게 미덕이 되어버린 지금. 오전 아홉 시 화장실 한켠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차트를 어설프게 보는 나에게 묻는다. 삼성인, 아니 직장인 이래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