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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Aug 09. 2019

모든 남자들이 다 나처럼 생각할 걸?

한 남직원의 당당한 주장

 점심시간이었다. 밥을 먹는데 앞에 있는 남직원 둘이 자식 이야기를 했다. 한 명은 아들만 둘(이하 아들 둘), 다른 한 명은 딸만 둘(이하 딸 둘)이었다. 이들의 아이들은 아직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은 정말 어린 아들, 딸들이었다. 이 사실로 이들의 나이대를 가늠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들의 대화는 세대차이로 이해하려 노력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아들 둘: 아 딸을 낳고 싶은데, 둘째도 아들이래.

 

딸 둘: 아들이 좋아. 아들을 낳아야지. 00씨가 아들만 있어서 그게 귀한 걸 모르나 본데 아들 낳아야 하는 거야.


아들 둘: 아 그런가?

 

딸 둘: 아내가 둘째 임신했을 때, 병원 갔는데 의사가 얘기하다가 분위기가 좋다 싶었는지 딸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똥 씹은 표정으로 '아이 씨.' 이랬지. 그랬더니 아차 싶었는지 아직은 모른다고 하더라고 하하하. 아내도 내 눈치를 보더라고. 에이 정말, 김샜어.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말이야.



 단순히 딸 가진 부모의 아들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아니었다. 아내 앞에서 딸이라서 싫은 티를 본인도 모르게 내비친 것에 대한 미안함도 없었다. 아니, 이 정도면 본인도 모르게 내비친 것이 아닌 고의라고 봐도 무방해 보였다. 저건 임신한 아내 앞에서 한 실수담이 아닌 자신이 의사를 주춤하게 한 모험담일 뿐이었다. '대를 이어야 하니 아들이어야 한다.', '장모님도 나에게 미안해했다.' 등등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듣다 보니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최선을 다해 말을 골라서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 하고 뱉었다.



나: 정말 가부장적이시네요.

 

딸 둘: 아니, 대를 이어야 할 것 아니야. 딸만 낳으면 나중에 우리 무덤 찾아올 사람이 없어.


나: 아니 그게 왜 아들만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세요? 딸도 자식인데. 부모님 모시는 일도, 나중에 무덤 관리하는 일도 모든 자식의 의무죠. 같이 하는 거죠. 그리고 딸도 부모님 무덤 관리하는데요?

(내 안에선 '딸도 그쪽 성 물려받은 자식이거든요. 그렇게 싫으시면 엄마 성 따르라고 하시죠. 무슨 조선시대인 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딸 둘: 무슨 소리야. 솔직히 다른 남자들은 여자들이 이런 얘기 싫어하니까 입 밖으로 안 꺼내는 거지, 모든 남자들이 다 그렇게 생각해. 다 아들 낳고 싶어 한다고. 나처럼 밖으로 내뱉는 사람이 흔하지 않을 뿐이야. 우리 장모님도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니까?

 

아들 둘: 뭐 집안 분위기 상 그렇게 생각 수 있. 그럼 한 명 더 낳으면 되잖아? 하하하.


딸 둘: 에이 이제 나이 들어서 안돼. 아들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낳는데, 또 딸이면 아휴.



 이 남자들에게 아이를 가진다는 건 아이를 사랑하고 잘 길러낼 계획과 의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 그냥 원하는 장난감 나올 때까지 뽑기 하는 정도의 개념인가.


 '아니, 중학교 때 과학 안 배웠어요? 여자의 난자는 X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그 난자에 결합하는 남자의 정자가 X 혹은 Y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이의 성인데 그럼 님 정자가 잘못된 거잖아요. 왜 장모님이 미안해하는걸 당연하게 말해요? 그리고 뭔 아휴 세요. 그렇게 아쉬우면 병원 가서 Y정자 대량으로 이식 받으시던가요.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안의 나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아들 둘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군도 없는 것 같고, 아무리 순화해서 말한다 한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사람도 아니고 괜히 10살 많은 남자와 대결 구도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가진 경력과 인맥 상 불리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중에 결혼하고 남편한테 물어봐도 물론 00씨 남편은 싸우기 싫어서 아들도 딸도 좋다고 할 거야. 하지만 속마음은 다를 걸. 남자들은 무조건 아들이야.


 그 뒤로도 그는 딸이 쓸모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굳이 여직원 앞에서 계속 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건 '이건 정말 논리적이고 정당한 이야기이니 너도 잘 새겨듣고 사고방식을 바꿔라.'는 뜻이었을까. 정말 대책이 없다 싶어서 그냥 대꾸하지 않고 밥을 먹었다.



 우리 아빠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내가 아들이었으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딸인 걸 알면서도 아빠가 실망할까 봐 나를 낳을 때까지 그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그래서 내 태명은 남자 이름이었다. 어린 내가 엄마한테 왜 아들이 갖고 싶었냐고 물었을 때 는 아가 아들을 원한 이유가 첫째가 딸이어서 아들도 키워보고 싶어서였고 그건 엄마도 동의하는 바였다고는 하셨었다. 물론  아빠도 사실은 그저 아들을 원했던 마음을 엄마와 내가 상처 받지 않도록 잘 포장하셨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님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미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분들의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고, 아빠는 티가 날 정도로 언니보다 나를 더 예뻐하셨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아이와 얼마나 큰 사랑을 하게 될지는 성별에 달린 것이 아닌데 그 남직원은 아이가 딸이라는 이유로 그 아이를 향할 가늠할 수 없는 예쁜 마음들을 시작도 전에 모두 잘라버리는 것 같았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의 어머니가 남편 몰래 딸을 지운 사건이 그저 옛날 일이 아닌 지금까지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를 이어야 한다.'라. 이런 사람의 대는 별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 걸. '아이 씨.' 라니. 그걸 자랑스럽게 모험담처럼 말하다니. 장모님과 아내가 미안해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다니.


 '하여간 여자들은 감정적인 게 문제야.'라는 말의 표본인 나는 이 날 하루 종일 도저히 감정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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