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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Oct 05. 2019

거기서 왜 결혼 이야기가 나올까

입이 심심한 사람들의 도마 위에서 나는

 일이 없을수록 입이 바쁘다고 했던가. 이곳은 결혼하지 않은 남녀의 사생활에 너무나 관심이 많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게 하는 기적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휴가를 낼 때마다 "어디가? 누구랑 가? 남자 친구?"라고 묻는 말에 "친구들이랑 놀러 가요."라고 대답하면 "에이, 그건 부모님한테 하는 대답이고, 솔직하게 말해봐. 남자랑 가지?"라고 물고 늘어지는 통에 "아이코 들켰네. 네 남자 친구랑 모텔에서 하루 종일 있으려고요! 아주 뜨거운 하루를 보내려고요!" 같은 원하시는 대답을 거짓말로라도 해 드려야 하나 싶고 어쩌다 식당에서 남자 직원과 둘이 밥이라도 먹는 날엔 "둘이 뭐야? 친구랑 밥 먹는다며, 그게 남자 친구라는 거였어?" 시작해 "그러다 오빠 되고, 아빠 되는 거지." 여기저기서 토스하다가 "이야깃거리 하나 생겼네. 이거 퍼트릴까?"라고 결론을 낼 때면 "그럼 00 씨는 00 씨랑 둘이 술 마셨으니까 불륜이겠네요?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도 돼요?"라는 말을 결국 내뱉지 못한 나의 소극적인 대처를 후회하곤 한다.


 게다가 말도 섞어보지 않은 다른 과 사람들이 나를 두고 새로 들어오는 남자 직원들에게


00 씨 어때? 둘이 잘해봐. 나이도 딱 맞고 잘 어울려. 안에서 같은 공무원 만나서 결혼하면 좋잖아.


 라고 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면 당장 전화기를 들어 그 과 내선번호를 누르고 "저기요, 저 아세요? 저랑 뭐 대화라도 해 보셨어요? 본인이 뭔데 자꾸 저를 다른 사람이랑 엮어요? 저랑 친하세요? 제가 남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시고 하는 말씀이세요?"라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겨우 가라앉힌다.



 나의 연애를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이제 나는 인정한 적 없는 '결혼 적령기'의 틀 안에 나를 넣고 나의 결혼을 궁금해한다. 한 번은 퇴근을 하려는데 갑자기 다른 과 직원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고 나는 또 한 대를 맞아주었다.


"00 씨, 과장님이랑 저녁 먹으러 안 가?"

 이 날도 역시 과장은 5시 30분에 갑자기 윗사람과의 술자리에 함께할 멤버를 찾았고, 선약이 있었던 직원들은 모두 거절했다. 다른 과에도 연락했지만 결국 멤버를 못 구한 것 같았다. 모두가 거절했지만 과장은 유독 나를 보며 "에이 씨."라고 화를 내며 퇴근했다. '내가 무슨 수행비서도 아니고 미리 말해주면 일정 비워두겠다고까지 했는데도 늘 당일에 명령조로 불러놓고 '에이 씨'는 무슨 '에이 씨'야. 몇 번 맞춰줬더니 사람을 원할 때마다 가져갈 수 있는 무한리필 취급하네. 어휴.' 이런 기분이 피어오르는 중인데 퇴근 후 전화를 걸어 과장을 안 모시냐는 물음이라니.


 "네, 저 안 가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가나? 누가 가?"

 "아뇨, 아무도 안 가는데요. 당일에 갑자기 말하면 다들 일정 있는데 어떻게 가요."

 '대체 이 사람은 뭐가 궁금한 거야. 안 가면 안 가는 거지 왜 안 가냐고 한소리 하려고 이러나. 그럼 자기가 대신 가든가. ' 하는 생각에 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00 씨는 무슨 요일에 시간이 돼?"

 "네? 저요? 모르죠. 퇴근하고 할 게 많아서."

 "퇴근하고 뭘 그렇게 하는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하면 주 3일은 차고, 그 외 시간은 친구들 만나고요. 그러다 보니 3주 정도는 계속 약속 미리 잡혀있어요. 그 뒤는 아직 몰라요."

 딱 봐도 저녁 약속을 잡으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개인적인 일정은 그때그때 달라져서 요일을 정할 수 없기도 했고 친한 친구들과의 약속도 3주 전에 잡는 마당에 이들의 급작스러운 호출을 위해 스스로 여러 요일을 먼저 내주고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다.


뭐 그렇게 바쁘게 살아. 결혼을 하려고 바쁜 거야, 결혼을 안 하려고 바쁜 거야?


 "아 예. 안 하려고요."

 "하하하. 에이, 그럼 안되지. 암튼 퇴근 잘해"


 '아니 잠깐, 이 전화의 목적은 분명 나와 저녁 약속을 잡기 위함이 아니었나. 약속을 잡을 거면 본인이 원하는 요일을 말하고 안 잡을 거면 그냥 끊지 왜 거기서 갑자기 결혼이란 단어가 나오지? 사람이 사는 이유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와 결혼을 안 하기 위해서로 나뉘는 거야? 아니 뜬금없이 거기 왜 결혼이란 단어가 들어가? 그리고 뭔 마무리가 이래?' 굳이 길게 나의 예민함을 드러내 봐야 이해도 못할 사람임을 알기에 단답으로 끝냈지만 "거기서 결혼 왜 나와요?"라고 한마디는 해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시작은 현안을 이용한 안부인사였다 칠 수 있어도 잡으려는 약속은 안 잡고 마지막을 결혼 안 하려고 바쁘게 산다는 이야기로 끝낸 건 굉장히 별로였다. 시작도 끝도 기분 나쁜 전화였다.



 이들의 대화 주제가 잘 흘러가는가 싶다가도 결국 나의 결혼으로 향할 때면 나와 할 이야기가 그렇게 없나 싶다. 건강 이야기, 운동 이야기, 최근 개봉한 영화 이야기, 집안일 아이템 이야기, 음식 이야기, 새로 산 옷 이야기, 미세먼지 이야기 등등 세상에 나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데 오랜만에 만난 직원들은 꼭 "요새 재미있는 일 없어?"라며 나의 연애사를 궁금해하고 "별 일 없다."라고 대답하면 "잘 좀 해봐"라는 도대체 뭘 잘하라는 건지 모르겠는 대답이 다시 돌아온다. 

 처음에 멋모르고 연애사실을 공개했다가 내 남자 친구에 대한 품평회가 시작되었고 나의 연애는 이들의 신선한 놀잇감이 되었다. 여름휴가기간엔 '둘이 여행 가면 방을 하나 쓸거냐 두개 쓸거냐.'는 저급한 질문까지 퍼부어댔다. 그러다 연애한 기간이 좀 길어지니 결혼은 안 하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 연애가 끝난 뒤에 나는 청첩장을 돌리기 전까지는 이들 앞에선 철저히 독신이 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혼자인 나에게 이들이 쏟아내는 '눈이 너무 높다.', '그 나이 됐으면 적당히 포기할 것 포기하고 맞춰서 가야 한다.' 등의 말들을 듣고 있자니 그 또한 굉장히 거슬렸다. 최근에는

 

더 늙으면 데려갈 사람이 없으니 빨리 찾아서 가라.


는 말을 하길래 '그럼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 사람 사서 부릴 테니 걱정 말라.'라고 안심시켜 드리기도 했다.


 20대 후반의 4년제 대학을 나온 안정적인 고정수입이 있는 형광등 정도는 고등학생 때부터 알아서 갈 줄 알았던 이 여자는 충분히 혼자 살 능력이 되는데 왜 다들 우리 부모님도 안 해도 된다는 결혼을 본인들이 못 시켜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N수생도 아닌데 적당히 맞춰서 어디를 그렇게 가라고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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