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우울감이 정점을 찍었다. 온종일 죽고 싶다는 생각과 삶에 관한 절망감이 나를 죽이려 들었다. 불 꺼진 방 안에 웅크리고 누워 축축 처지는 노래를 들었다. 물통을 껴안으며 심장의 열감을 식히려 했다. 커져만 가는 자기연민에 중독되어 우울감을 놓지 못했다. 악순환 속에서 얽매여 있었다. 마치 지난 겨울처럼 나는 두렵지 않은 죽음과 두려운 우울 앞에서 숨을 가삐 쉬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오길 간절히 원했다. 제발, 제발 빠져나오고 싶었다. 부디 이겨낼 수 있기를 신께 빌었다. 제발 이 벌레 같은 우울을 죽일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내가 이 터널을(다소 관습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세요. 간절히 자주도 빌었다.
아직도 내가 이 불행한 관념에서 빠져나왔다고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마 그럴 확률이 높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 나는 이미 완치의 문턱 앞에 서 있을 테니깐. 그렇지만,
언젠가 유튜브에서 나처럼 우울감에 허덕이던 사람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우울이 나의 삶을 망치는 게 싫다.”
머리를 때리는 말이었다. 아주 세게도.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도 나의 우울이 나의 삶을 망치는 게 싫었다. 하지만 멍청한 자기연민과 자학에 중독되어, 우울을 놓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우울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마음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늘 말했듯, 자학과 자기연민, 그리고 그로 인한 우울감은 쉽게 중독된다. 손을 놓고 싶어도 쉬이 놓지 못하는 감정의 관습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것들을 놓아버리려는 시도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것들을 놓아버리기로 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아주 완벽히 끝내주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변방을 벗어나 중심으로 가고, 그곳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기로. 카페에서 글을 쓰고, 구제샵에서 옷을 사고, 행복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래서 나 또한 행복해지기로.
여기서 두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 삶의 기본값은 원래 힘들다는 것이고, 석가모니의 말처럼 삶은 빗속에서 춤을 추는 과정이라는 것. 그렇지만 살아가야 한다는 것. 마냥 우울 속에서 청춘을 허비하기에는 청춘은 아직 아름답다. 그래서 결심했다. 끝내주게 멋진 삶을 살아보기로. 멋진 일을 하고, 멋진 글을 매일 쓰기로.
감사하다. 이제야 이런 깨달음을 얻은 나에게. 더는 우울에 잠식되지 않기로, 그렇기에 강한 마음을 먹기로 마음먹은 나를 응원하고 싶다. 우울이 나의 삶을 망치는 게 싫다. 그러니 나는 너 같은 개자식이 나를 죽이려는 걸 이제는 마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다.
이겨내자. 우울을 죽여버리자. 이런 나에게 무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