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사는 취준생의 심경을 담은 리들리 자전적 수필
'지방에는 먹이가 없고, 서울에는 둥지가 없다.'
지방 소멸이나 저출산 문제를 논할 때면 공식처럼 인용되는 유명한 비유다. 지방은 집값이 낮아도 일자리가 없고, 서울은 일자리가 넘쳐도 집값이 높기에 어디든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자명한 사실이다. 일자리와 집값의 조화가 어긋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소위 무언가 물려받을 게 있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어디서 살든 일자리 또는 고향을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 그렇다고 먹고사는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으니 고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괜히 '서울에서 태어나 사는 게 스펙'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평생을 고향에서 살았다. 이사를 두 차례 거치긴 했어도, 기껏해야 옆 동네 아파트로 옮겨 사는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처음 살던 아파트 단지로 돌아오긴 했지만. 초중고 교육 모두 한 동네에서 받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자취 기간을 제외하면 쭉 한 곳에서 지냈다. 덕분에 어릴 적에 사귄 동네 친구가 많다. 몇몇은 떠났어도, 여전히 고향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가 많다. 익숙한 사람이든, 익숙한 장소든, 하다 못해 대부분의 추억이든, 모두 나의 동네에 머물러 있다. 너무 오래 살았기에 질린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나름 살기 좋은 동네였기에 근래에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나의 고향에서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현실을 마주하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당장 '사람인'이든 '잡코리아' 같은 구직 어플만 둘러봐도 현실을 알 수 있다. 다른 지방이 그렇듯, 나의 고향에도 일자리가 없다. 있어 봤자 저임금의 단순 반복 업무나 서비스직 정도. 임금만큼이나 기업의 낮은 평점은 덤. 모집하는 직업군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적어도 조건이나 처우는 수준 미달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원하는 직업군은 아무리 범주를 넓게 설정해도 전멸 수준이었다. 더욱 문제인 지점은, 검색 범위를 나의 고향으로 제한하지 않고 근처의 위성 도시들까지 포함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문과를 선택하고 문화와 콘텐츠를 좋아하는 나를 비난해야 하는 건지. 지역 설정을 수도권으로 설정하면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고민은 더는 문제 되지 않았다. 일단 양질의 일자리는커녕, 계획해 둔 나름의 커리어조차 꾸려나갈 환경 이 되지 못했다. 뉴스로만 간간이 접하던 지방 소멸이라는 현실을 체감케 되었다.
아버지의 직장 동료가 업무 도중 손가락이 잘리는 일이 있었다. 사장은 다음 날, 직원들 앞에서 산재 처리 문제를 운운하며 다친 직원을 비난하며 화를 냈다고. 내가 일하던 식당이나 대형마트의 하청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을 부품 취급하고, 자기 잇속 채우기에 만 혈안이 된 대표와 임원(대체로 임원은 대표와 혈연관계 혹은 친구 관계였다). 거기다 낮은 임금과 부적절한 직원 처우. 나의 고향과 근처의 도시에는 수준 미달의 '꼰대'와 '이기주의자'가 많다. 여러 업체와 협업을 진행하며 받은 존대나 대우는, 적응이 안 될 만큼 나와 타인이 받아온 일개 직원으로서의 처우와 비교되었다.
어느 지역을 가도 비슷하겠지만, 적어도 통계상으로 나타난 수치들로 바라봤을 때 더는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는 일은 무리라고 판단케 되었다. 저임금이나 주 5일제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지방일수록 주휴 수당과 같은 법과 제도는 지켜지지 않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시급을 최저에도 못 미치는 7천 원만 줘도 많이 준다는 인식이 만연하면 말 다 했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의 고향은 내게 살기 좋은 동네다. 나의 동네는 조용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집 근처에는 강과 산책로, 교통 편도 잘 갖춰져 있다. 친구들마저 집 근처에 살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지. 꽤 자주 더 큰 도시로 떠나 더 큰 세상을 경험해야 좋다는 생각을 한다. 우물 밖 세상을 경험한 우물 안 개구리는 평생 미련을 품고서 살 수밖에 없으니. 그렇지만, 내가 고향을 떠난다면 그때의 선택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자의로 점철된 선택이어도 고심할 텐데, 타의가 섞인 불순한 선택을 등 떠밀리듯 이곳을 떠난다면 마음이 꽤 불편하지 않을까. 세상 어느 하나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없다지만, 모든 이의 삶 또한 그렇다지만, 씁쓸한 마음과 어느 정도의 불안은 사실이다. 기대되지만, 그만큼 불편하다.
아마 그동안 내가 '리들리'라는 이름으로 써온 글들을 모은 책을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 이상은, 그래서 인기 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나는 나의 고향을 자의와 타의가 뒤섞인 선택으로 떠날 확률 이 높다. 설령 책을 출간한다고 해도, 소위 대박이 나지 않는 이상은 무리겠지. 현실적으로 나는 나의 고향을 떠나야 밥이라도 벌어먹을 수 있을 테다. 자아실현을 하며 커리어를 쌓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다. 설령 고향을 떠나 올라간다고 해도, 알을 품기는커녕 제대로 된 둥지라도 만들 수 있을지. 혼란스럽고, 안타깝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님의 좌우명처럼,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사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먹이와 둥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사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