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수필
'문사철'의 맏이이자 취업 안 되는 전공의 대표적인 학과. 가끔 같은 과 동기가 '너도 성적 맞춰서 입학했냐'라는 말을 건네는 학과. 입학과 동시에 먹고살 걱정부터 하며 상경 계열을 복수 전공할 계획부터 세워야 하는 학과. 교수는 줄어들고, 그에 따라 강의 수마저 가뭄. 등록금을 대신 내주는 아버지가 탐탁지 않아 하는 학과. 전공에 맞춰 '보여주기식 해외 유학'조차 떠날 수 없는 학과. 공대는 고사하고 같은 어문계열인 영어영문학과에도 은근히 무시당하는 학과. 이외에도 단점이 지천으로 널린 학과. 국어국문학과다. 나는 그런 국어국문학과 입학 5년 차 화석이다.
다시 수험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느 학과에 가고 싶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돌아가도 당연히 국문과에 가고 싶다는 말을 늘 꺼낸다. 아마 내가 특이 케이스일 테다. 과장 좀 보태, 국문과 동기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자기가 성적 맞춰서 국문과에 왔다는 말을 서슴없이 꺼낸다. 국문과를 원해서, 글이 좋아서 학과를 택한 내게 실례되는 말인지도 모르고서 말이지. 동기가 그렇게 말하는데, 학과 바깥의 사람들의 말과 생각은 오죽할까.
첫 문단에 나열했듯, 국문과의 단점이야 널리고 널렸다. 어느 학과든 단점이 없겠냐만, 국문과는 비인기 학과의 설움과 전망이 좋지 못한 학과의 고뇌가 혼재되어 있다. 물론 장점이야 있다. 그것도 글쓰기 좋아하고, 문학 좋아하는 학과 내 소수의 학생에게나 허용되는 장점이지만. 질리듯이 쓸 수 있고, 질리도록 읽을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읽고 쓰는 글이 마냥 흥미가 가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글이 좋으면 장점으로 다가올 테다. 그 외의 장점은 딱히 없다. 기껏해야 공부할 거리가 타 학과에 비해 적다는 점과 여초과라는 이유로 과 CC도 마다하지 않을 '여미새' 신입생에게 한정된 장점 하나 정도.
개인적으로 봐도, 국문과 진학을 후회하지 않는 나조차 학업 성취에 있어 학과에서 얻은 건 많지 않다. 글이야 의지만 있다면 학과 밖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고, '현대시론'을 비롯한 작문 수업은 가물에 콩 나듯 많지 않다. 전체 강의의 절반 이상은 국어 문법 수업과 고전 문학을 배운다. 글 좋아하는 학과 내 소수의 학생들조차도 고전 시가들의 옛 한글과 한문(원문)을 보면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수요는 많지 않다. 문법 수업과 고전 수업이 불필요하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지만, 현실에 비춰봤을 때 수요는 그리 많지 않다. 냉정하게 말해, 많은 학생에게는 학점 채우려고 듣는 수업에 가깝다. 성적보다는 적성에 맞춰 입학한 나조차도 기대되지 않는 세부 커리큘럼이 태반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각자도생의 경우가 많다. 누구는 공시 준비, 누구는 교직 이수를 위한 교생 실습, 누구는 어려운 자격증 공부, 나는 꾸준히 글쓰기만. 각자 살 길을 도모하는 방식이 달라지지만, 어느 하나 미래를 단언할 수 없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특출난 개인기가 없다면, 그저 세상에 널리고 널린 '일개 국문학도 936번'쯤 되어 졸업하겠지.
단점 많다. 인기는 없다. 안타깝게도 전망마저 어둡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도 국문과를 외면하지 않을 테다. 신랄하게 국문과를 깠어도, 나는 나의 전공이 좋다. 경영학 수업을 들었어도, 무역학 수업을 들었어도, 국문학의 수업만큼 애정이 가지는 않았다. 애석하게도 다른 전공에 그리 소질이 많다고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국문학을 원하지 않는 세상에서 여전히 국문학을 지키는 사람이 된 기분이지만, 나는 국문학이 좋다. 19살 시절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순리였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나의 전공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현실마저 순리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