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수필
요즘은 더위 먹은 개가 여름을 살아내는 법을 연구하고 있다. 여기서 더위 먹은 개가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글쓴이인 나를 가리킨다. 늘 그래왔다. 여름만 되면, 혹은 여름의 열기가 스멀스멀 다가올 때면, 방 안에 틀어박혀 나를 꽁꽁 가두었다. 여름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는 계절이라고 느껴왔다. 바지 아래로 차오르는 찐득한 땀방울들, 온몸을 짓누르는 습기의 무게감, 일출부터 아스팔트를 달궈두는 뙤약볕. 여름은 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잡아먹으려 들었다. 더군다나 좋아하는 R&B 곡들을 듣기에는 영 어색하기까지. 그래서인지 여름보다는 늘 겨울을 좋아했다.
오래도록 여름이라는 단어 앞에만 서면, 늘 인상을 찌푸리며 곱지 못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여름을 아무리 욕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여름이라는 계절은 죽어버리지는 않는다. 그것이 태초부터 자명한 자연의 법칙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여름과의 공존을 택해야만 했다. 아마 나를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썸머 헤이터'라면 동감할 테다. 여름이 싫지만, 여름의 품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근 서너 달 동안의 욕구 불만족의 시기. 아주 길지. 더군다나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이제 6월의 초입에 불과하기에, 많이도 남은 여름의 나날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가 막막할 따름이다.
여름은 앞서 말했듯, 길다. 서너 달. 한 해의 3할 정도를 차지하는 시기. 더욱이,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여름은 더욱 길어지기까지 하고 있다. 더는 피할 수 없다. 내가 신이 되어 한반도의 위치를 오호츠크해 근처로 옮기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도 이렇게 길고도 긴 여름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여름과, 그것이 품은 여러 존재에게 정을 붙여보려 하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선조의 격언을 한 번 적용해야 할 때가 내게도 오고야 말았다.
나름의 '여름 극복 방안'이라고 하면, 음, 사실 아직도 노하우를 터득하지 못한 상태다. 여전히 여름이면 한낮 동안의 외출을 꺼리고, 청바지 대신 얇은 슬랙스를 입는다. 나의 에어팟에서는 발라드 대신 청량한 K-POP이 들려온다는 정도? 그 외에는 아직까지 특기할 만할 노하우는 없다. 그렇기에 초심자의 마음으로 하나둘씩 노하우를 쌓아가보려 한다. 나의 한 해 동안, 여름이라는 긴 시간을 뭉그러진 기분을 품은 채로 보내고 싶지 않다.
앞으로 내가 겪을 여름이 몇 차례나 남았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여름에도 잘 지내보려 노력하려 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그간 지나온 여름들을 되돌아봤을 때, 그 여름들의 시간을 '버텼다' 대신, 잘 지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잘 보내고 싶다. 이런 욕심은 부려야 이득일 테니. 일단, 지난번 마트에서 사온 파인애플 맛 콤부차 가루를 얼음물에 타 마셔야겠다. 본격적으로 행복한 여름날을 시작하는 기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