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전문가 되기] 8
책이 없어도 가능한 독서모임?
요즘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약하는 카페나 서점, 스터디룸 등이 많이 있습니다. 독서모임을 넘어 문화모임으로 영역을 확장한 곳들도 있죠. 과거에는 독후활동의 하나로 여겨지던 것들이 주객전도되어 책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과거 처음으로 영화 토론모임을 진행하게 된 과정이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독서모임답게 책을 선정하고 같이 보면 좋을, 비슷한 주제의 영화를 추천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함께 보며 비교하기도 했죠. 종종 책을 완독하지 못한 참가자에게, 영화라도 보고 오도록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관심 있으면 그 이후에 책을 보는 구성원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책과 거리를 두고 영화 자체에 집중하며 토론하는 자리도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소모임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아 시행착오도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런 영화토론모임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분위기 좋은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바로 감상을 나누거나, 영화를 각자 미리 보고 온 후에 대화를 하거나,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관람을 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등 형태도 다양해졌어요. 접근성 높은 영화 모임은 유연하게 진행되며 점점 더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독해력을 걱정하지만, ‘중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생각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영상 미디어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오로지 책에만 종속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책은 거들 뿐’ 사람과 특정 주제가 중심인 모임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정 도서냐 자유 도서냐 보다 어떤 활동을 하는지가 중점이 되죠.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을 사례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앞에서 살짝 언급한 종합 미디어 활용 모임입니다. 책과 영화, 드라마, 웹툰 등 미디어들은 서로 원작의 경계를 넘어 큰 영향을 받고 있어요. 많은 책이 영화화되는 것을 시작으로 드라마와 웹툰, 웹소설, 연극, 뮤지컬 등으로 재탄생하거나 역으로 다른 미디어가 책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책에 국한하지 않고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한 뒤에 다양하게 경험하는 모임들이 많습니다. 책 <안나 카레니나>는 두꺼워서 엄두도 안 나지만, 영화와 뮤지컬은 부담 없이 즐기고 만나서 토론할 수 있는 것이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나 애니매이션도 큰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학교 수업에서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 <괴물들이 사는 나라>, <샬롯의 거미줄> 등 책과 영화를 잘 활용하면 아이들의 상상력을 새로운 방향으로 자극할 수 있습니다.
◦ 책 <위대한 개츠비> - 영화 <위대한 개츠비>
◦ 책 <아름다운 아이> - 영화 <Wonder>
◦ 책 <작은 아씨들> - 영화 <작은 아씨들>
◦ 책 <파이 이야기> -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 -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
◦ 책 <자기 앞의 생> - 영화 <자기 앞의 생>
특정 주제를 바탕으로 한 스터디 모임의 형식도 있습니다. ‘재테크’를 공부하기 위해 경제관련 도서를 함께 읽고 공부하거나, ‘육아’를 공부하기 위해 교육관련 도서를 읽고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식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도 특정 과목에 특화된 도서들이 많기 때문에 ‘과학 동아리’에서 과학에 대한 책을 읽고 함께 이해하며 실험을 한다거나 ‘역사 동아리’에서 역사 관련 책을 읽고 내용 이해와 함께 현장 답사로 마무리하곤 합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커피’와 관련된 책을 다룬 모임이었어요. 커피에 관련된 책을 읽고 대화를 하며 커피에 대해 알아보고, 인문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직접 카페를 탐방하며 커피 맛도 보는 기획이었는데, 참 흥미로웠습니다. 관심사가 세분화됨에 따라 개성 있는 모임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 책 <커피 인문학>,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 활동: 카페 탐방
◦ 책 <트렌드 코리아 2022> - 활동: 소개된 트렌드 실천하기
◦ 책 <메타버스> - 활동: 메타버스 가입하고 아바타 만들기
◦ 책 <스마트스토어 마케팅> - 활동: 스마트스토어 개설하고 첫 수익내기
바늘과 실처럼 읽기와 쓰기는 긴밀한 관련이 있죠. 많이 읽는 분들은 쓰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글쓰기 모임도 많아요. 독후활동으로써 독서감상문이나 서평을 조금씩 활용하는 경우도 있 지만, 책을 소재 삼아 글쓰기에 집중하는 모임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상처 받은 현대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감성 에세이와 함께 내면을 치유하는 글쓰기 모임은 감정의 배출구로서 글을 쓰게 합니다. 또 감성적인 시집의 일부나 좋은 문장을 함께 필사하며 정서적 안정을 얻기도 하죠.
다양한 콘텐츠 생산을 장려하는 이 시대에 창조적인 활동으로서의 글쓰기는 책쓰기 열풍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학생들도 동아리 형태로 글들을 모아 문집을 넘어 책을 출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죠. 독립출판의 활성화와 함께 ‘나도 작가다’라는 타이틀이 만인에게 열린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쓰는 사람들만 많아지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읽고 쓰기가 하나의 덩어리라는 의미에서 쓰기 모임의 형태로 전이된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 지정 도서 / 자유 도서 필사 인증 모임
◦ 독후감 / 책리뷰 / 서평 공유하고 합평하기
◦ 매달 새로운 주제어로 에세이 쓰고 공유하기
◦ 독서모임에서 나눈 내용 정리하여 공동 출판하기
책의 장르에 따라 다양한 예술과의 콜라보도 이어집니다. 음악에 관련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음악회에 참여한다거나 미술에 관 련된 책을 읽고 미술관을 함께 가는 것이죠. 한 권의 소설에 다양 한 음악이 소개되었을 때, 그 음악들을 찾아 듣고 이야기하는 모임의 형태로 신선한 조화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책이 다루는 주제가 다양해질수록 모임의 형태도 무궁무진합니다. ‘체험’과 ‘경험’을 중시하는 사회적 트렌드도 취향 모임 문화 확산에 큰 기여를 합니다. 우리가 고상하게 둘러 앉아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만이 독서토론이라고 규정짓기 힘든 시대적 흐름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작품으로도 다양한 결의 모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느 영역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죠. 작가의 생애에 집중해 그가 남긴 전작을 함께 읽으면 작가의 세계관과 가치관, 작품 세계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작가가 살았던 집, 인터뷰, 삶의 흔적들을 좇으며 사람을 이해해 보는 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죠. 저 또한 <토지>를 읽고 통영에 있는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왔으니까요.
또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과 사건들, 유적지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 시대를 이해해 보는 형태도 가능합니다. 역사 소설 같은 경우, 당시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 움이 돼요. 문학은 교과서와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 이외에도 작품의 형식, 독자의 취향 등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모임을 진행할 수 있고, 이런 모임을 2~3개월 ‘시즌제’의 형태로 운영하는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짧은 호흡으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하나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