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한 번씩, 아니 여러 번씩 우울의 바다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자유형도, 배형도, 개헤엄마저도 할 수 없는 이 우중충하고 깊은 바다에 빠지면, 당신이 국가를 대표하는 수영 선수일지라도 한참을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숨이 이렇게 멎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고 생각한 바로 그때, 우리는 저마다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유영하기 시작한다. 혹자는 책을 읽고, 혹자는 노래를 들으며, 또 다른 혹자는 베갯잇을 붙잡고 침대 위를 뒹굴며 끝을 알 수 없는 상념에 빠지곤 한다.
'우울의 바다'에 빠지면 고마운 이들의 걱정도, 소중한 이들의 관심도 필요 없게 된다.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자연히 외면하게 된다. 이기적으로 보여도 상관없다. 바닷속에서는 내 숨을 트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데 누굴 신경 쓰랴. 그 누구의 도움도 외면한 채 수심은 계속 깊어져만 간다.
우리는 갖가지 이유로 이 바다와 마주하곤 한다. 처음에 머릿속 행선지가 그곳이 아니었음에도 생각이 꼬리와 꼬리를 물어 긴 동아줄이 되면, 그 끝엔 항상 거무튀튀하고 고요한 우울의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마주쳤다면 벗어나려 애쓰기보다는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취하는 편이 낫다. 빠져나올 생각 없이 몸에 힘을 추욱 빼고 점점 더 깊은 곳까지 숨을 참고 내려가 보자. 도착한 그곳엔 당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는 휑한 그 공간에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요상한 감정과 생각들만이 바다의 물결을 타고 당신의 몸을 스쳐간다.
여기가 이 바다의 바닥이구나 싶은 그 순간, 딱 한 번 더 깊숙이 내려가 바닥을 밟고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아프고, 목은 타는 듯이 갈증이 날 것이다. 더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깊은 물속에 잠수했을 때, 도망치듯 머리를 수면 위로 들어 올려보자. 그러면 내려온 만큼 수면 위로 천천히 부유하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우울의 바다에서 나오는 그 즉시 온몸에 달라붙은 우울의 물기를 털어내야 한다. 완벽하게 몸을 말리지 못하면 감기에 걸린 듯 머리가 무거워질 것이고, 다음 입수 때는 더 깊은 수심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물기를 터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람을 쐬러 동네 한 바퀴를 휙 걸어보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하고 싶은 행동을 하면 된다. 내 경우에는 보통 영화 한 편을 본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킬링타임용 영화도 좋지만, 나는 오히려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영화가 더 좋다. 깊은 몰입이나 몰두는 가장 좋은 탈수 방법이다. 당신이 떠나온 칙칙한 바다 생각이 다시는 나지 않도록 뭐든 좋으니 일단 깊게 몰입해보자.
물기를 털고 몸이 건조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바다를 벗어나 발에 붙은 모래를 털어내고, 사람들이 많고 햇빛이 밝은 *화창의 광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
비릿한 우울의 냄새와, 무거운 피로감, 괴로운 호흡 때문에 우울의 바다는 성가시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저항도 할 수 없고, 가쁜 호흡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닥까지 잠수해야만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는 가혹한 내면의 공간, 우울의 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울의 바다는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다. 지구 상 그 어떤 곳보다 고요한 이곳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사적인 충전의 공간이다. 우울의 바다는 누구에게나 있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를 찾아온다. 자신의 인생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인생만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우울의 바다는 꽤나 공평한 파도를 일으킨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부정적으로만 느껴지는 이 공간도 이용 수칙만 제대로 지키면 유용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1. 우울의 바다에서는 언제나 조용히.
급하게 몸부림치다간 더 깊숙이 빠져들어 익사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 바닷속에 빠졌을까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팔과 다리에 힘을 빼면서 호흡을 가다듬자. 내면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2. 우울의 바다에는 혼자뿐.
이 고요하고 어두운 바다에는 혼자뿐이다. 누굴 데려올 생각도, 누구와 함께 빠질 생각도 하지 말고 고독을 즐겨보자. 어릴 적 혼자서만 맛있는 것을 몰래 먹을 때처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해수욕을 즐겨보자.
3. 우울의 바다에는 끝이 있다.
칠흑같이 어둡고 깊어 보이는 이 바다에는 이상하게도 끝이 있다. 놀라운 깊이에 혼란스러워하지도, 언제 바다의 끝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하지도 말고 장편영화 끝에 언젠가 올라올 엔딩크레딧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받아들이자.
4. 우울의 바다에서 나오면 깨끗이 몸을 털자.
손발이 퉁퉁 불 정도로 깊은 잠수를 하고 나오면 깨끗이 몸을 털어야 한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바다에서 실컷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 반대편에 위치한 화창의 광장으로 가 몸을 말리자.
안전한 물놀이를 위해 위의 이용 수칙을 잘 준수하자. 언젠가 찾아올 우울의 바다는 우리 몸에서 보내는 예방 신호이자, 생리현상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우리 몸과 마음을 공격하는 쓰나미가 아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마음 피서'가 되시길 바라며..
*화창의 광장: '우울의 바다' 반대편에 위치한 장소. 사람들이 많고 시끌벅적한 공간이다.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음식점이나 백화점, 카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