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굳은살
우리는 평상시에 잘 신경 쓰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특정 신체 부위에 굳은살이 딱딱하게 돋아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발바닥이 주로 그렇고 운동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손바닥에 그것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 굳은살은 지속적인 자극에 의해 흔하게 발생한다. 기계적인 마찰로 인한 자극에 살이 길들여져 두껍고 단단한 피부층이 형성된 것이다. 비슷한 과정으로 발생하는 티눈과 달리 굳은살에는 통증이 거의 없으며, 뾰족한 물건으로 찔러도 별로 아프지 않을 정도로 두껍게 돋아나기도 한다.
갑자기 굳은살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마음의 맷집을 열심히 기른 당신에게 바로 다음 단계, '마음 굳은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날카로운 도구로 제거하려고 난리인 굳은살이 오히려 필요하다는 것이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마음에 생기는 굳은살은 당신을 그 어떤 고통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든든한 방어막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고통을 버텨낼 맷집만 있어도 충분히 안전한데 방어막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생기겠지만, 맷집과 방어막 둘 모두 안정적인 인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어막은 맷집이 어느 정도 길러졌을 때부터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마음의 굳은살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고통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할 때 사용된다.
우리는 살면서 '예상한' 고통과 '예상치 못한' 고통을 마주한다. 예상한 고통은 이전에도 느껴본 고통일 경우가 많고,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 통증과 고통의 회복기가 일정하다. 마음의 맷집을 적당히 이용한다면 예상한 고통은 당신에게 그렇게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고통은 다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통을 갑자기 마주치기 때문에 그 수위나 깊이를 예측할 수 없으며, 설사 잘 버텨내더라도 잠복한 또 다른 고통들이 후유증과 함께 밀려와 쉽게 극복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굳은살이 필요하다. 어느 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는 고통들에 미리 대비해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굳은살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우리가 발바닥을 의식하지 않으며 걷다가 굳은살이 생긴 것처럼 마음의 굳은살도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진다. 바로 당신에게 벌어지는 상황과 현상들을 의식하지 않고 그것에 '초연'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성에 무뎌지고, 초연해지는 것, 마음에 굳은살이 박이는 과정이자 '자기 객관화'의 첫걸음이다.
초연해지는 것은 쉽게 말해서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절대로 보잘것없다는 뜻이 아니다.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곧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삶의 핵심은 따분함과 지루함에 있지 않다. 일반적인 삶의 핵심은 내 인생과 내 존재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욕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있다. 내 존재에 무뎌지면 내 존재에 실망할 일도, 내 인생에 우울할 일도 적어진다. 우린 모두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내 인생이 너무 특별할 거라는 과장된 기대감이 당신을 오히려 지치고 실망하게 만든다.
과도한 기대감은 예상치 못한 고통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불어나기도 하고, 직장에서의 성과에서 부풀어지기도 한다. 상대가 나에게 절대 상처를 주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 내가 노력한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큰 보상이 내게 돌아올 거라는 과장된 기대와 믿음은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고통으로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고통의 끝은 '자기 비하'라는 후유증이 되어 자기 자신을 최악의 상황으로 끌고 간다. 당신이 새로운 삶에서 안정된 정착을 꿈꾼다면, 그리고 그 꿈을 이루고 싶다면 마음의 굳은살을 만들자.
마음의 굳은살을 만들고 나서 관리를 잘못하면 '마음의 티눈'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마음의 티눈은 말 그대로 마음 위에 돋아난 티눈이다. 티눈은 굳은살과 달리 살짝만 만져도 고통이 느껴진다. 마음의 티눈은 잘못된 자기 객관화로 만들어진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자기 객관화를 시작했지만, 방법과 방향의 오류로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절대로 스스로를 비하하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소중하고 특별하다. 하지만 과도한 기대로부터 발생하는 쓸모없는 걱정과, 예상치 못한 고통들을 막기 위해 자아를 잠시 동안만 속이는 것이다. 내 존재에 대해 무뎌진다는 건 오히려 나를 믿고 사랑하는 방법이다. 나의 실수나 실패를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기대하지 않았던 나의 성공에 온몸으로 감탄하며 자축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자아는 더욱 단단해진다.
다가오는 고통 앞에서 내 잘못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초연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단단해진다. 자신의 존재와 인생에 대해 초연할 수 있게 되었다면 당신은 새로운 삶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당신의 인생은 더 이상 새로운 인생이 아닌 당신만의 인생으로 굳어져간다. 고생했다, 당신. 다음은 머리를 식히며 당신만을 위한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