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퐈느님 Apr 28. 2016

한 번쯤 카리브해의 공주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다

지상천국, 바라데로에 다녀오다

앞선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먼 땅에서, 인종이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외모에 대한 칭찬은 신기함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10여 년 전 태어나서 비행기를 처음 탔던 그 나이에는 초면에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나를 너무 쉽게 보고 그런 말을 하나' 하는 이상한(?) 의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자비가 없는 나에게, 외국인들이 내게 하는 외모에 대한 칭찬은 언제나 Hola! 혹은 Hello! 정도의 인사로만 생각하고 넘겼다.


쿠바의 휴양지, 카리브해가 펼쳐진 바라데로

쿠바는 섬나라로 카리브해가 맞닿아있다. 쿠바의 해변 도시 바라데로(Varadero)라는 도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생소한만큼, 쿠바에서 가장 기대하던 여행지였다.

태어나서 가본 해변 중에 가장 맑았던 곳이 바로 바라데로 해변이었다. 기대를 넘어서는 곳이었다. 멕시코 칸쿤의 바다와 견주어보더라도더 아름답다고 느꼈을 만큼 아름다운 바다였다.

사진에는 잘 담기지 않았지만 물이 정말 맑은 해변이었다.
모든 것이 공짜라고? 세계에서 가장 싼 올인클루시브 리조트?

올인클루시브(All-Inclusive) 리조트는 숙박뿐만 아니라 식사 등이 포함된 형태를 말한다.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 모든 게 포함된다. 그러니까 돈 한번 결제하고 나면 식사 걱정, 마실 걱정 없이 리조트에서 머무르면 된다는 것. (물론 리조트에 따라 포함되는 것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는 가격이 꽤나 비싸 그런 건 신혼여행에서나 하는 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를 꽤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다.

듣기로는 쿠바 바라데로의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저렴하다고 한다. (전 세계 모든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의 가격을 비교해보지 못했으므로 '가장' 저렴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지구 반대편에 머물렀던 2015년 12월, 현지 예약을 기준으로 봤을 때 칸쿤의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는 최소 150달러에서 중급 이상이면 5~600달러까지 예산을 잡아야했는데 쿠바의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는 대략 30달러선부터 시작했으니 충분히 저렴한 가격이라고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배낭여행자라고 혹은 혼자라고 미뤄왔던 호사는 바라데로 부리면 된다. 바라데로의 초성수기, 12월 중순 이후에 방문해 예약이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6~80불이면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있는 4성급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에서 1박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성수기라 미리 알아본 가격보다는 비쌌지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1박은 아쉽고 3박을 하자면 예산상 리조트 등급을 낮춰야 했다.


그래, 2박3일이다.



리조트에서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조식을 먹는다. 어제 저녁 Bar에서 친해진 사람들도 조식을 먹기 때문에 인사하느라 바쁘지만 수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적당히 먹고 일어난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bar에서 맥주를 주문한다. 뜨거운 햇살 아래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썬베드 옆 테이블에 올려놓고 수영을 한 바퀴 하고 돌아오면 보냉 기능이 있는 텀블러를 가져올걸, 하는 생각이 들게된다.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를 다시 올 일이 있으면 내 꼭 보냉기능 있는 텀블러를 챙기리라.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 지겨우면 바닷가로 걸어나간다.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바다가 리조트 바로 앞에 펼쳐져있으니 뚜벅뚜벅 걸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정말 맑은 물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물에 가만히 떠있기도 하고, 그러다 목마르면 리조트의 해변가 Bar에 가서 칵테일을 한잔 주문해 썬베드에 누워 마시면 된다. 쿠바니까 모히또, 다이끼리, 쿠바 리브레 같은 칵테일에서부터 달달한 피냐콜라다까지! 세 잔, 네 잔, 다섯 잔 마셔도 된다. 다 무료니까 더 마셔도 된다. 그래도 어쩐지 좀 미안하다 싶으면 팁을 주면 칵테일 장식마저도 달라질 수도 있다.

누워서 햇살을 즐기고 있으면 무겁다고 두고 온 책들이 간절해진다. 누워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 좋을 텐데. 다음에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를 다시 온다면 아이패드에 e-book과 음악, 동영상을 가득 넣어 챙겨 오리라.

그런 물놀이가 지겨워지면 같은 처지(?)의 투숙객들과 비치 발리볼을 하면 된다. 비치 발리볼이 아니더라도 해안가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이 준비되어있다. 그냥 하면 된다. 하지만 난 누워있으련다.

그리고 나면 점심시간이 온다. 약간 알딸딸한 상태로 점심을 간단히 먹고는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을 피해 잠시 에어컨이 나오는 방에서 열기를 식혀준다.

열기가 식었다고 생각될 때쯤에 다시 Bar에 가서 음료를 주문해 다시 바닷가의 썬베드로 간다. 논알콜도 좋고 알콜도 좋다. 오전에 실컷 칵테일을 먹었으니 맥주 당첨이다! 해변가에 누워 하늘도 보고 사진도 찍다 보면 아름다운 일몰이 눈앞에 펼쳐진다.

일몰이 지나갔으니 저녁시간이다. 뷔페도 좋지만 아침도, 점심도 뷔페였으니 미리 예약해둔 정찬을 먹으러 간다. 이탈리안/멕시칸/쿠바 식당이 있어 미리 예약해두면 이용할 수가 있다. 와인이 빠지면 아쉽다. 레드 와인을 마셔도 좋고 화이트 와인을 마셔도 좋다. 까짓거, 둘다 먹지 뭐.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면 공연이 펼쳐진다. 매일매일 다른 공연이 펼쳐지는데 7~10일 단위로 바뀌는 것 같았다. 탱고 공연을 하기도 하고, 마술쇼를 하기도 한다. 전날의 마술쇼는 좀 유치했는데 탱고 공연은 훌륭했다. 쿠바인들의 리듬감은 타고나나 보다.

그렇게 공연을 즐거이 보고 나서 bar에 가면 한잔 하러 나온 투숙객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유럽, 북미, 남미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투숙하는데 아시아인은 없었다. (숙박객에는 있었겠지만 한잔 하러 bar에 나오진 않더라) 휴가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즐거워 보인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물론 대체로 연인이거나 가족들이다. 그래도 아시아인에 대한 관심 덕분인지 혼자라는 기분을 느낄 새가 없었다. 다들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리조트에서의 하루, 이 모든 게 내가 처음 냈던 요금에 포함되어있다. 그러니까 그냥 즐기면 된다. 신이 안 날 수가 없다.

리조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콧노래를 부르면서 일한다. 접시를 치우면서도 노래를 부르며, 내가 인사를 먼저 건네면 자신이 아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리에 앉으라고 의자를 빼내 준다. 직원들도, 투숙객들도 모두 다 행복해 보인다.

스카이다이빙이나 스쿠버다이빙을 예약할까 했는데 안 하길 잘했다.

하루 종일 은근히 바쁘다. 먹고 마시고, 또 마시고, 또 먹고, 간간이 누워있어야 하니까.

천국이 따로 없다.


바라데로에 리조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캐나다 사람 같았다. 상대적인 저렴한 물가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우리가 겨울에 따뜻한 동남아로 휴가를 가듯 캐나다 사람들은 가까운 바라데로에 모여드나 보다.

썬베드에 누워 있다보면 책을 놓고 왔음이 아쉬워진다.
액션캠으로 찍은 사진. 나름 셀카다.
바텐더 언니에게 메뉴판에 없는 특별주문을 해서 받은 칵테일. '바다색'같은 칵테일을 만들어달라 했다.
노을은 언제라도 아름답다.
매일 저녁 다채로운 공연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잠시 예쁘다고 착각해도 좋다

중미에 들어오면서부터 외모에 대한 칭찬이 시작되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인사치레 정도로 생각했다.

쿠바에서부터는 노골적이고 빈도수도 굉장히 많아졌다. 지나가다가도 꽃을 받는 일이 많았다.

냉장고 바지를 입고 조식을 먹으러 가도 아름답다고 칭찬해주는데 그냥 즐기기로 했다.

그래, 우리는 외모에 관대하지 못하잖아, 항상 어디가 부족한지 단점을 가리기에 급급했는데 잠시 놓아두고 '예쁨'에 취해보기로 했다.


지나가다 받은 꽃. 모르는 사람에게서 꽃을 받는 경험은 흔치 않기에 인증샷을 남겼다.


나에게 어디선가 하이힐을 얻어와 신발이 꼭 맞으면 30분만 자신의 '신데렐라'가 되어 이야기할 시간을 달라는 귀여운 캐나다 청년도, 취하기 싫어 물만 마시는 나를 위해 근사한 와인잔을 얻어와 물을 따라준 캐나다 청년도,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 온 독일 바리스타 아저씨도, 1시간 정도 즐거운 대화가 고맙다고 쿠바 마그네틱을 선물로 준 사업가 아저씨도, 집요하게 내 메일 주소와 페이스북을 묻던 스페인 청년도, 아들딸은 물론 손자 손녀 사진까지 자랑하며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하겠다던 우리 엄마와 동갑인 캐나다 아주머니도 모두 다 바라데로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바라데로의 리조트 직원이 만들어 준 나뭇잎 곤충(?)


얼마 전, 바라데로의 리조트에서 긴긴 대화를 했던 캐나다 아주머니에게서 메일이 왔다.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낸 이후 나는 여행 중이라 아주머니의 메일에 회신을 하지 못했는데 나의 근황이 궁금하셨나 보다.

아주머니 메일 덕분에  20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여행자일지라도, 잠시 공주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던 곳, 지상천국 바라데로에서의 행복한 추억이 떠올랐다.

바라데로에서의 2박3일은 정말 행복했다


고작 일주일 체류 해놓고 쓰는 쿠바 이야기들 더 보기

- 매력적인 나라, 쿠바 여행 인트로

- 아바나의 시간은 천천히, 하지만 생동감 있게 흐른다

- 특색 없지만 어쩐지 궁금한 쿠바에서 먹고 마신 이야기 1 (쿠바 커피)

- 특색 없지만 어쩐지 궁금한 쿠바에서 먹고 마신 이야기 2

작가의 이전글 [Cuba]아바나는 천천히, 하지만 생동감 있게 흐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