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째 잠이 많지 않다. 3시간쯤 잠을 자면 눈이 떠진다. 수면의 질 자체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자고 일어나면 매우 개운하고 졸리지 않으니까. 다시 잠들려 해도 마냥 쉽지가 않아 그냥 이른 새벽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시간에 일어난 게 제법 되는 요즘이었다. 일찍 일어나면 늙은 거라는데, ’이 정도로 잠이 없어지는 건 늙다의 수준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연구가 잘 되어가고 있었고, 너무나도 일이 잘 풀려 나는 조금 들뜬상태였던 것 같다. 이랬던 적이 한참 전이었으니까. 자신감을 잃어가던 차에 오래간만에 좋은 결과에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라고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친구와 좋은 저녁을 하고 돌아왔다. 식사는 훌륭했고 우린 웃고 또 웃었다. 다음에는 이런 우리 이야기를 글로 써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좀 다르게 무언가가 우리에게 장난치는 것 같은 하루였다. 어차피 이왕 뭔가 이상한 날인데 평소와 다른 것을 해보자며 친구가 인생 네 컷을 제안했다. 평소 함께 사진은 잘 찍지 않던 친구였다. 어쩐지 오늘을 기억하고 싶었다. 오늘을 남기고, 이 친구와 함께한 순간을 남겨 손에 쥐고 싶었다.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인생 네 컷을 들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요즘 매일 바빠 힘들어하는 다른 친구가 오늘은 시간이 여유가 있었는지 메신저로 나를 상대해주고 있었다. 내가 소설을 썼다고 하니, 우리들 대학교 때 얘기들을 가지고 소설을 써보면 어떻냐고 물었다. 그렇다. 대학교 친구들 모임에는 사람도 제법 많고, 재미난 일도 제법 있었으니 소설로 구상하기 나쁘지 않을 터였다. 다만 주변인들을 가지고 무언가 써 내려간다는 게 모두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 헸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저 저장해 두고 나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책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써도 되려나? 너무 주변인이면 주변인들이 알까 봐 “ 친구는 이런 내 말에 ”뭐 어때. “라 말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서너 시간이 지니고 눈을 떴다. 잠들어 읽지 못한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아 내 말은 다들 자기 삶 사느라 바빠서 다른 사람에 크게 관심 없어한다는 의미였음 그게 친했던 대학동창이었다 해도 “
나는 어쩐지 울적해졌다. 작은 내 세상이 이제는 더 작아진 것 같아서. 나에게도 물론 더 가까운 이들이 있다. 그 더 깊은 관계에서 조금 벗어나 함께해서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있는 그래도 ”나의 사람들 “ 범위에 들여둔 그런 사람들이 더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얘기를 듣다 보니, 그리고 요즘 그들과 연락하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나는 이들이 아직도 ”나의 사람들 “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울적한 기분을 느꼈다. 나의 세상은 내 생각과 다르게 어느새 더 좁아져 있었던 모양이다.
친구와의 사진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았다. ”나의 사람“인 친구를 보며 내 좁은 세상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믿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