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좋구나 하고 느꼈다.
글을 써서 친구와의 일을 담고 있었기에 친구에게 글의 링크를 보냈다.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비 오는 날 아침 선물 같은 글이네!
전날 친구의 표현으로는 '어쩐지 홍상수 영화 같은 날이야'라고 했던 그날, 평소와 다르게 함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온 게 기뻤던 나였는데 친구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정말 그런 기분이었어. 어제 자기 전에 사진을 보고 웃음이 났거든. 때때로 보면 우릴 웃게 해 줄 거 같아.
그런 후, 나를 위로하는 친구의 말들이 이어졌다.
-너는 좁지 않아
라는 말을 시작으로 말이다.
내게 내 삶은 확장되었고 이동되었다고 말했다. 강이 흘러 바다가 되는 그런 물길과 같다고 표현을 하면서 말이다. 넓은 호수 위의 물가에는 많은 풀들과 꽃들이 있다면서 그렇게 나에게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해주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그런가? 하고 단순하게 생각이 전환될 즈음, DM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나를 좋아해 주었던 한 자매의 메시지였다. 나에게 잘 지냈냐고 물으면서, 한국에서의 주소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내게 보내주고픈 선물이 있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나에게는 새로운 인연들이 생겼었다. 좁아진 만큼, 조금은 다시 넓어지기도 했었다. 프랑스에 있으며 꽤나 친해져 지금도 종종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가 다른 일이 생겨 자리를 뜰 때까지 얘기를 나누는 친구도 있다.
나는 한국에 돌아온 후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데 이는 오기 직전 너무 많은 술을 마셔 그만 질려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에 대한 걱정도 있기도 하고 말이다. 프랑스에서 내가 떠나던 3월에만 나는 21일을 술을 마셔야 했다. 모두 사람들과의 약속에서였다. 처음의 시작은 기껏해야 5일 정도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나고 헤어질 때에는 만났던 모두가 아쉬워했다. "이대로 헤어지기 너무 아쉽다. 아직 갈 때까지 시간 좀 있지? 한번 더 만나자." 그렇게 5일이 21일이 되었다.
조금은 나 자신에 대해 의문과 걱정을 지니기도 했던 며칠간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건가, 그런 걱정이 나를 흔들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나의 세계에 대한 의심 같은 게 느껴진다 하니, 친구가 말했다.
-모든 세계는 견고하고 연약해. 괜찮으면서도 안 괜찮고. 완전한 건 없지만 우린 잘 살아가고 있잖아.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너무 내 위주로 생각한다고. 사람들이 나를 배려해 주고 이해해 준다고 표현하지만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이타적이지 않다고. (물론 이타적인 점도 있기는 하지만-이라고 덧붙이는 게 친구다웠다.) 각자 이기적인 점들이 있기에, 자신에게도 내가 주는 좋은 점들이 항상 많았다고 말해줬다. 나에게 계속해서 좋은 사람이라고 나는 자격이 있다는 말들을 해주었다.
친구와는 언제나 거의 매일 메시지를 나누며 연락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홍상수의 영화 같던 날의 영향인지, 영화 속 세상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인지 평소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을 둘만의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 한참을 얘기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알아온 우리인데 싸운 적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우리는 결코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우리는 어째서 싸움이 없는 걸까? 하고 내가 물었다.
-싸울 일이 없었거나, 서로를 그냥 인정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라고 친구가 말했다.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려는 자연스러운 마음 씀씀이가 아닐까-라면서.
-서로의 배려가 비슷한 거 같아.
나는 말했다.
마음이 불안하고 울적할 때는 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듯하다. 그 불안과 우울에 마음이 휩쓸려서 내 세상이, 모든 게, 많은 것들이 잘못된 것만 같은 느낌이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벗어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해 준다. 그러니 조금은 나의 기분을 벗어나게 해 줄, 나의 친구 같은 그런 존재가 많은 이들에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곤함이 몰려와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침대에 누웠다. 잠에 들기 전 생각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