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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Dec 12. 2024

누군가의 부정적인 말들이 머릿속에 박혔어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학회 세션도 충분히 들어서 시간을 내고 조금 관광에 시간을 썼다. 식물원 같은 곳을 가는데 티켓도 저렴하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한 곳에 모네 전시회까지 있길래 선택했더니 모네 전시회는 레플리카 작품들에 디지털 전시회더라. 시간 낭비와 같았다. 프린트된 레플리카에서는 오리지널 작품과 같은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모네의 진짜 붓터치가 느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한 곳은 인공적인 식물원이 마치 아바타의 세계같이 느껴지며 아름다웠다. 누군가는 이런 인공적인 모습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런 모습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보수 공사 중인 곳이 너무 많아서 보지 못한 게 많아 작품수가 적었다. 스페셜 전시회들도 보려도 더 비싼 티켓을 샀는데, 두 전시회 모두 ‘이런 게 예술인가?’하는 생각이 들게 내가 딱히 좋아하는 작품 스타일이 아니었다.


기운이 나지 않았다. 딱히 만족스러운 관광도 아니었기에 더 집에 그만 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먹으며, 말할 상대가 없으니 머릿속으로 혼자 맛 평가를 했다.

- 누들은 중 화면 같네. 제일 인기 많은 면으로 달라했는데, 이게 인기가 많구나.

- 돼지꼬리는 생각보다 별로구나. 더 바삭할 거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지방이 느껴지네. 식감이 별로다.

- 아, 매콤한 맛으로 시킬걸 그랬다. 고기 육수에 새우 육수를 섞었더니, 새우에서 나온 단맛이 조금 질리게 하네…

- 아 여기도 돼지꼬리 있네..

- 이 별로인 뒷맛은 뭐지?

그렇게 생각할 때쯤, 얼마 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잠깐 알았던 사람에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깐깐하게 맛평가하지 마세요. 남자들 그런 거 싫어해요. “

들을 당시에, ‘꽤나 건방지고 자의식과잉이네 ‘’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이 모든 남성을 대변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게다가 나는 ”맛있다 “ 한마디로 음식을 평가하는 것은 만든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얼마 전 갔던 식당에서도 셰프에게 최대한 이 요리는 이렇고, 저것은 이렇다고 세세하게 말했다. 셰프가 고마워했다. 내가 이런 말을 들었노라 했더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아마도 주는 대로 그냥 먹는 사람일 거라 했다. 그렇다. 무시해도 될 지나갈 이의 말 한마디였다. 그런데 그런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 박혔다. 무언가를 먹고 맛을 평가할 때마다 얼굴 없는 이가 말한다. 사람들이 그런 거 싫어한다고..


얼굴 없는 이의 말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말로 나에 대해 평가를 했다. 고쳐야 한다고 말한 게 많았다. 그전까지 생각지 못했던, 내가 문제라고 의식조차 하지 않던 것들이었다. 나를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내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의 말은 잘 받아들이지도 않는데, 지나간 이의 부정적인 말들이 잊히질 않는다. 나도 내 사람들이 말해주는 것을 더 믿고 싶고, 그들의 말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남긴 말들이 머릿속에 박혀 종종 나를 괴롭힌다. 어차피 모른 채 살아갈 거라면 아예 모르는 게 나았을 텐데, 얼굴이 지워질 거리면 차라리 모든 게 지워지지 왜 나를 부정하는 말들만을 간직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싫다.

지나가는, 기억도 사라져가는 만남 덕분에 나를 더 싫어하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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