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알게 되고 조금 놀랐던 사실 들이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식용 돼지의 체지방이 15% 미만이라는 것. 그러니 난 돼지조차 아닌 것이다.
그다음은, 우울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까.
나는 종교를 믿으려고 해 보았지만, 내게 종교가 오지도 않았고 믿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사후세계에 대한 것들이었다. 나는 삶의 끝에서 마주하는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무-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말하는 종교에 대해 거부감이 생기는 듯했다.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언제나 일종의 희망이었다. 끝이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었다.
사실 나의 삶에서는 큰 문제랄 것은 없었다. 문제라는 그냥 나 자신이 문제겠거니 했다. 누군가는 지금 정도면 잘 사는 거라고도 할 거다. 다만 그게 내게 와닿지 않을 뿐이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 자신만을 평가할 뿐이다. 언제나 삶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했다. 태어났으니, 살아있으니 살아간다? 전혀 와닿지 않는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언제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저 지금의 내가 너무 하찮아서 죽는 것조차 부끄러운 기분에 죽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꿈은 단 하나다. 나 자신에게 온전히 만족하는 것. 그 순간이 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모든 것을 그만두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부터 변치 않는 꿈이었다. 이보다 오랫동안 간직해 본 꿈 따위는 없다. 종종 누군가가 나에게 아이를 갖고 싶지 않냐고 말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말해보지만 상대들에게 충분히 설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 나의 진짜 이유라면, 언제든 내가 떠나고 싶을 순간에 떠나기 위해 세상에 어떠한 책임감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조카들을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 책임감에 묶여 떠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사진을 찍자면 찍지만, 예전에 사진을 거부하고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언니와 한밤중에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던 중 말했다. 다음에 언젠가, 내가 스스로 떠난다면, 슬퍼하지 말아 달라고. 내가 그런 선택을 했다면, 나는 내 삶에 만족한 것이니- 기쁘게 보내줘도 된다고, 슬퍼할 필요 없다고 말이다. 언니는 약간 울먹이며 "그런 소리 하지 마"라고 했지만, 그 생각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오늘은 문득 얼마 전 보았던 보통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읽었던 게 떠올라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까. 이런 게 우울의 증상인 걸까.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다섯 명이 넘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왔고, 20년 가까이 약을 복용해 왔다. 이런 생각은 약을 복용하기 전이나 후나 달라짐이 없었다. 신경전달물질이나 수용체나 뭐 그런 호르몬이나 신경계의 문제라면,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면 현대 의학 수준에서는 안된다는 거다. 나는 애초에 이렇게 태어난 거다. 이게 나인 거다.
몇 년 전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 대학원생이 연구실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간단하게 자기 연구에 대해서 발표를 했고,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거기서 콜롬비아대는 박사과정이 5년으로 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5년 안에 끝내거나, 못하거나였다. 그렇기에 그는 대학원 생활이 힘들지만 이 힘듦의 끝이 언제인지 알기에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만의 데드라인을 정해보자. 내가 정한 데드라인이니, 충분치 못하면 그때 가서 연장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압박은 없다. 그저 나만의 데드라인을 갖는다면, 종종 숨이 쉬기 힘들어지고, 숨을 쉬고 싶지 않을 때에도, 조금만 더 숨 쉬면 된다는 생각이 위안이 되지 않을까.
끝을 안다는 것은 길을 보여주니까, 그때까지 살아갈 힘이 되어 주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나의 데드라인을 정해 본다.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
기간을 정했다.
그때까지만, 숨을 쉬어보자.
*이 브런치북에 여러 기분을 느끼며 관련된 내용을 적어오면서,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제목처럼 우울은 나의 일상이고, 일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일상이 곧 나 자신이기에 이 안에서 무언가 희망적인 얘기로 마무리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우울, 불안과 같은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 나를 조절하는 것- 그 정도의 얘기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