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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Dec 11. 2024

우울하면 연락하라 했지만 할 수 없었다

학회 참석차 싱가포르에 온 지 며칠이 지났다. 아침 8시에 학회장에 도착해 저녁 6시까지 세션들을 듣는다. 중간중간 커피 브레이크, 런치 등 주는 것들을 다 받아먹고 세션장에서 열심히 듣는다. 이번 학회에서는 구두발표를 잘 마치고, 발표들을 들으며 하나 정도는 좋은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게 주된 목표였다. 전날 발표를 끝냈으니, 한 가지 목표는 달성한 거다. 다른 하나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어제 들었던 내용 중 하나가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어서 좀 더 조사하며 내용을 정리해보려 한다. 어쩌면 여기 온 목적은 거의 다 달 성한 걸 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부터 너무 오기 싫었다. 가야 하니 억지로 짐을 싸고, 억지로 집을 나서, 지긋지긋한 공항의 기다림과 비행 늘 거쳐 싱가포르에 왔다. 전반적으로 기운이 없고, 피곤한 느낌이다. 잠은 여전히 3 시간 자면 깨고 있고 오랫동안 깨지 않고 자본 것이 너무 까마득해지고 있다. 한 달도 더 되었다. 불면증인가? 하기엔 누우면 금세 잠들고 깨어나도 개운하다. 약을 밤에 자기 전에만 복용해야 하는데, 한 번 두 번 빼먹고 어쩌다 보니 2주째 먹지 않고 있다. 약을 먹지 않는 건 거의 20년 만일 거다. 그냥 어찌어찌 지낼 수 있다면 약을 좀 그만 복용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가끔은 언제까지 복용해야 하는 마음에 지치는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지친 시간인 것 같다.


친구에게 조금 우울함이 찾아오는지 지난 한 달간보다 에너지가 없고 피로하다 말했다. 친구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원래 좋은 날, 나쁜 날은 오고 가고 하는 거니, 뭔가 의미를 부여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우울한 기분이 들거나, 싱가포르에서 집에 가고 싶거나, 그런 기분이 들 때는 자기가 있는 카톡방으로 오라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다면 자기네 집으로 놀러 오고, 자신도 서울로 놀러 가 테니, 그렇게 만나면서 우울함 따위 느낄 필요 없이 그렇게 살아가자고 말하더라. 고마웠다.


이른 아침에 학회장에 도착했다. 첫 세션까지 시간이 넉넉히 남아있어 가만히 구석의 소파에 앉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저 앉아만 있었다. 힘이 없다.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만 있고 싶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곳은 이 글에서 뿐이다. 친구는 힘이 들 때 자신을 찾으라 했지만, 각자가 자신의 일상으로 바쁘고 어려움이 있음을 아는데, 그저 기댈 수는 없다. 그렇게 맘이 열리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다시 기운이 나길 바랄 뿐이다. 친구는 자신에게 오라 했지만, 갈 수가 없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분일 때 느낀다. 나는 혼자다. 다가갈 수가 없다.


더블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붓는다.

커피를 마신다.

조금은 머리가 더 깨어나고, 에너지가 솟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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