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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Dec 20. 2018

#2 토끼는 여전히 토끼다

다시 일어서는 용기

  오늘은 거북이와 경주가 있는 날. 오전부터 날씨가 후끈후끈하다. 어제 오랜만에 집토끼 친구 녀석이 고민이 있다고 찾아와 집에 있는 복분자주로 열심히 달렸다. 안정적인 집안 생활에 길들여져 야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배부른 소리를 들어주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나도 배운 토끼인지라 거북이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평상시보다 자제했다. 그 덕분에 조금 피곤한 것 빼곤 오늘 컨디션은 그리 나쁘지 않다.


  점심을 가볍게 샐러드로 먹고, 어제 만난 집토끼랑 카톡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벌써 경주 시간인 오후 2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털 사이로 뜨거운 땀방울이 매달려있다. 저 멀리 거북이가 보인 지 한참인데 아직도 출발선에 도착하지 않았다. 거북이는 이미 지쳐 보인다. 경기도 하기 전에 기권하는 게 아닌가 염려된다.


  이 경기는 친목을 도모해 만들어진 이벤트성 대회다. 요 근래 바다 쪽에서 육지 동물 납치 시도가 있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오면서 용궁 쪽에서 먼저 상호 친목을 위해 이런 이벤트가 개최되는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이번 경기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하나의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년 이맘때쯤 2마리의 여우에 쫓겨도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아서 나름 초식동물 세계에서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토끼발이 땀나도록 뛰었는지 나 자신이 놀라울 뿐이다.


  시작 총소리가 울렸다. 거북이의 페이스를 맞추기 위해 천천히 출발했건만 거북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느린 동물이었구나. 천천히 달리는 게 이렇게 곤혹스럽고 힘든 일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된다. 1/3 지점까지는 페이스를 조절해 달렸는데 오히려 이게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차라리 속력을 내서 미리 가있다가 골인 지점 근처에서 길을 잃은 척 헤매다가 들어가면 품위 있게 마무리할 수 있겠다. 본격적으로 스피드를 내니 거북이가 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 열심히 달리다 보니 점으로 보이던 거북이가 보이지도 않는다.  비록 날씨는 뙤약볕이지만 간혹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겨울 하늘의 상쾌함으로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게다가 친선경기라서 오늘만큼은 불가침 조약으로 무서운 천적이 덮칠 염려가 없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편안한 레이스이다.


  어느새 골인 지점이 저 멀리 보인다.  너무 신나게 달렸나 보다. 날씨는 더 뜨거워졌다. 주위를 살피니 산들산들 바람에 흔들리는 참나무가 내게 손짓하는 듯하다. 언덕도 적당하니 나무 그늘 아래서 거북이가 오는지 지켜보다가 거북이가 근처에 도착하면 경로를 잃어버린 척 연기하면서 합류하면 되겠구나. 천적 걱정이 없으니 오늘만큼은 긴장의 끈을 놓게 된다. 저 멀리 큰 바위를 기준으로 바위 근처에 거북이가 나타나면 슬슬 움직일 계획을 세워본다. 나무 그늘 아래 토끼털이 물결치듯 흐트러진다. 땀으로 범벅된 털이 어느새 마르고 윤기가 흐른다. 토끼는 태어나서 오늘만큼 평안하고 행복했을 때가 있었나 생각하면서 바위를 지켜본다. 지켜본다. 바위가 점점 작아지고 흐려진다. 기분이 나른해진다. 참으로 평안하고 고요한 오후다.


  한기를 느껴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깜박하고 졸았구나. 토끼는 잠시 당황했지만 큰 바위를 보니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결승 지점을 살펴보다 갑자기 ‘토끼 간’이 덜컥 내려앉는다. 거북이가 결승선을 코 앞에 두고 발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토끼는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결승선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여우에게 쫓기던 그 심정이다. 머릿속은 이미 하얗다. 이제 체면도 뭐고 없다. 최선을 다해 달린다. 아까 본 거북이 스피드라면 분명 막판 역전할 가능성도 있다. 거북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다. 점점 간격이 좁아진다. 숨 쉬는 것도 잊고 달린다. 이제 30미터 앞이다. 잔뜩 건조해진 거북이 등껍질과 피멍으로 보라색이 된 발바닥이 자세히 보인다. 10미터 앞이다. 거북이는 거품을 물고 달리고, 아니 걷고 있다. 마침내 보라색 뒷발이 결승선을 통과한다. 나는 5미터가 아직 남아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이 뒤집혀 털썩 뻗어버린 거북이가 보인다. 그렇다. 내가 졌다.


  그날 이후로 난 죄인처럼 육지 동물을 피해서 다닌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동그란 뚜껑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잠든 자신에 화가 나기도, 전날 찾아온 집토끼 녀석도 원망스럽고, 잠든 자신을 깨우지 않은 대회 관계자와, 잠든 사이 비웃고 지나갔을 거북이 녀석한테도 화가 난다. 누구든 붙잡고 "거북이는 상대가 안돼요. 아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빠른지. 여우한테서도 살아남았잖아요." 하소연하고 싶다. 재대결을 원한다고 용궁쪽에 연락을 해봤지만, 거북이가 잠수(?)를 타서 연락이 안된단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불쑥불쑥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마음이 꽤나 불편하다. 거북이한테도 진 토끼로 모든 동물들에게 기억될까봐 두렵다.


  다들 알다시피 토끼는 거북이에게 졌다. 이유불문하고 경기에서 패배했다. 우리도 가끔 토끼처럼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순간의 방심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죄책감이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심리적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자기 합리화' 작업에 들어간다. 프리젠테이션 상황에서 핸드폰 소리로 집중도가 떨어졌다거나, 그런 예산에는 이 정도 밖에 준비할 수 없다거나, 어차피 그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행되면 엄청 피곤해서 몸이 상할 수 있으니 차라리 안된게 더 낫다라든지... 등 등


  '자기 합리화'는 온전한 해결책이 아닌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 기제로 사용되지만, 현실적으로 복잡다난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어느 정도는 갖춰야할 덕목(?)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기 혐오(self-hate)'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 '자기 혐오'는 말 그대로 자신을 미워하고, 자학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가끔 크고 작은 좌절을 경험하게 되면 '자기 혐오'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나 반복되는 실패, 어처구니 없는 실수 등에 놓일 경우가 그렇다. '자기 혐오'는 더욱 더 자신을 늪에 빠지게 만드는 나쁜 습성이다.


  나 역시 그랬다. 2년 전에 기획한 ‘코칭으로 다시 쓰는 이솝우화’를 부지런히 올렸으면 100개나 되었을텐데...쓸 수 없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가 게으른 자신을 보며 ’자기 반성’에 들어가 본다. 그리고, 항상 다짐만 하고 끝까지 실행하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해 ‘자기 혐오’ 단계에 이르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나도 그래.”하며 끄덕끄덕 하는 분이 있다면 반갑다. 서로 위로가 될 것 같다. 나를 포함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매일매일은 마법같은 날이라고. 새롭게 리셋(reset)하기 좋은 날이라고. 이 땅에 인간의 죄를 리셋하기 위해 태어난 한 남자를 기억하면서, 이것저것 해보다 안되면 최종적으로 컴퓨터 버튼을 꾸욱 눌러 리셋하듯 실패한 경험, 불편한 감정들 모두 리셋하고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래도, 토끼는 시속 80km 까지 가능한 동물인 건 변함이 없다. 토끼는 여전히 토끼다. 나는 여전히 나다.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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