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코치 Dec 31. 2018

#4 나그네의 외투와 제비의 죽음

매사에 모든 판단이 성급한 사람에게

 “아버지, 이제 저도 제 앞가림은 제가 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어차피 누나랑 저한테 물려줄 거 미리 땡겨서 주세요. 저 자신 있어요. 진짜!”


 이름 : 아폴론. 나이 33세. 직업 : 사업 구상가(라고 쓰고 백수라 읽자)


 아폴론의 아버지는 아테네에서 의료기기 관련 사업으로 성공한 중견 기업인이다. 그가 아들을 낳았을 때 태양, 음악, 시, 예언, 의술, 궁술 등 다방면으로 뛰어난 ‘아폴론’ 신과 같이 되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다. 특히, 본인이 의료기기 관련 사업을 하고 있으니, 아들이 크면 의술의 신인 ‘아폴로’ 답게 본인 사업을 물려줄 큰 그림도 갖고 있었다.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부족함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디서부터 문제였는지 끈기가 부족했다. 음악 학원에서는 부주키(그리스 전통악기)를 배웠지만 계이름만 겨우 외우고 포기, 플라톤 아카데미에선 시를 배우다 따분하다고 도망쳐 나왔다.  청년시절엔 ‘아카데미아’ 대학 후원 입학제를 활용해 아버지의 강요로 생물학과에 입학했으나, 개구리 해부 수업이 있던 날, 이건 내 길이 아니야 판단하고 자퇴해버렸다.


 그래도 야심은 있어서 항상 ‘한 방’을 노리며 다양한 분야에 어슬렁 거리지만, 아쉽게도 ‘아폴로’ 신의 다양한 ‘능력’이 아닌 다양한 ‘관심사’만 이름으로 물려받은 듯싶다. 유흥비라도 벌어야 하기에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항상 입버릇처럼 '인생 한 방’을 외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페르시아’에 있는 헬스케어 기업과 큰 계약에 성공해 기분이 한껏 좋은, 가족 축하파티 자리에서 아버지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입을 떼 봤다. “아버지,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이제 아테네 의료사업은 조만간 아버지 회사가 넘버 원이 되겠네요.”, “이 녀석아, 아버지 회사라니… 우리 회사지. 너도 한 몫하고 있잖아.” 아버지는 포도주를 몇 잔 드시지 않으셨는데도 한껏 상기된 얼굴로 껄껄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아버지,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그동안 아버지 기대에 제대로 미치지 못했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 아이템들이 있고 반드시 성공할 확신도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에 큰 계약도 따셨으니 한번 믿고 지원 좀 해주세요.", 아버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폴로를 타일렀다. “아들, 난 아들이 회사에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회사에서 경험을 좀 쌓고, 특히 이번에 페르시아랑 하는 사업을 아들이 잘 처리해주면, 결국 아들이 이 회사 주인이 되는 거야.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참으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단다.”


 “아버지, 이제 저도 제 앞가림은 제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어차피 누나랑 저한테 물려줄 거 미리 땡겨서 주세요. 저 정말 자신 있어요. 진짜! 만약에 제가 구상한 사업이 실패하면, 아버지 회사에 뼈를 묻는 각오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아버지는 상당한 금액을 아폴로에게 건넸다.  아폴로는 이 돈으로 먼저 아크로폴리스 신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근사한 사무실을 오픈하고,  아테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유명인들과 교류하며 ‘인싸’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류하는 유명인사 중 대부업에 종사하는 한 지인이 아폴로에게 슬며시 찾아와 “아폴로 대표, 조만간 페르시아랑 교역을 강화하려고 드라크마 은화를 페르시아 은화 가치랑 맞추기 위해서 은 함유량을 낮출 거야. 그니까 지금 화폐사업을 하면 대박 나는 거지. 이거 당신한테만 말해주는 거니까 아직 비밀이야” 눈을 찡긋하며 속삭였다.


 “와우! 이거 대박이네요. 저한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거 민감한 사업이라 이 비즈니스는 조심스럽게 준비해야겠네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끼리 암호라도 정할까요? ‘암호화폐’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결과만 말하자면, 비밀리에 준비하느라 다른 누구에게도 조언을 듣지 않고, 한 사람에게만 의지해 쉽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준비하지 못한 아폴로는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빈털터리가 되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제안한 그 사람은 페르시아에 넘어가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제안하다 붙잡혀 '사기죄’,’ 간첩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아폴로는 아버지 낯을 볼 수가 없어서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낡은 외투 한 벌과 가방 하나 둘러메고 산으로 향했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그렇게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이름 모를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날은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며 고등어회 한 접시에 소주나 한 잔 하며 어떻게 다시 '한 방'을 만들지 고민할 계획이었다. 어느 정도 산을 내려온 것 같았는데 중간에 방향을 놓쳤는지 바닷가 길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때마침 한 무리의 양을 치고 있는 한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년을 발견했다.


 이 마을 사람이라 그런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다. 내가 타고난 직관이란 게 있는데 이 소년 관상을 보니 오른쪽 눈 밑에 상처가 하나 있어 조금 험상궂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 한번 안 해본 성실한 친구라 확신한다. 나이만 맞아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산 위로 발을 돌렸다.  


 2시간 남짓 걸어서 올라가니 넓은 들판이 나왔다. 고등어회 생각에 힘을 내서 걸으려 했는데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날씨를 그날 그 들판에서 경험했다. 도대체 몇 차례나 일어섰다, 기었다, 걸었다 했는지... 강렬한 햇볕에 땀범벅이 되었다가 그에 못지않은 바람에 땀이 식어서 오들오들 떨었다. 낡은 외투 단추는 바람에 다 뜯어져서 엉망이 되고, 나중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혼자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들판을 힘겹게 통과하고 났더니 정말 오솔길이 보인다. 역시 친절한 소년이었다니깐. 그런데 조금 전 엄청난 바람에 쓰러진, 얼추 500년은 넘어 보이는 커다란 참나무가 오솔길을 가로막아 힘들게 지나갔다. 이제 배도 슬슬 고프다. 한 달간 여행하다 보니 여비도 부족하다. 이런 심란한 마음으로 오솔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바다가 안 보인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디서도 바닷가의 비릿한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소년이 분명 거짓말을 한건 아닐 텐데 혹시 아직 어려서 동서남북을 잘 몰랐던 게 아닐까? 애써 그 소년을 변명해주면서 산을 빠져나오니 저 멀리 불빛이 보인다.


 불빛을 향해 서둘러 걷다 길가에 죽은 제비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아! 드디어 봄이 왔구나! 정말 그 들판이 비정상적이었어. 혼잣말을 하며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죽은 제비는 추운 날씨에 새끼 제비 먹이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나왔다가 얼어 죽은 것이었다. 아폴로가 불빛이 보이던 그곳에 도착하니 마침 그 마을 5일장이 열린 게 아닌가! 시장 초입부터 부주카(그리스 민속악기) 선율과 함께 장터에 팔려고 가져온 황소, 백조, 수탉이랑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려 두리번거리는 떠돌이 개 무리, 흥정하느라 목청을 높이는 상인들로 활기차다. '죽으라는 법은 없군.' 하면서 여러 가지 시장 음식을 살펴보다 낡은 외투 안에 손을 넣어보니 돈이 몇 푼 안 남았다. '에라 모르겠다.' '아까 제비도 나타난 걸 볼 때 확실히 봄이 온 거야.' '이제 외투는 짐만 되고 당분간 입을 일도 없으니 팔아버리자.'라고 생각하고, 남루하게 옷을 입고 앉아있는 한 어르신한테 그 자리에서 바로 팔아버렸다. 외투 상태가 양호하지는 않았으니 생각한 만큼 돈을 받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 돈으로 시장에서 든든하게 요기를 채웠다.


 밤이 깊어지자 온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살펴보니 모두 두터운 외투를 입고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외투도 없이 지나가는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서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 앞뒤 안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는데, 어랏! 다시 산속으로 들어왔나 보다. 하늘을 보니 까만 먹구름이 드리운 채 곧 엄청난 비를 쏟아낼 듯싶다. 산속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데 마침 동굴이 하나 보인다. 동굴을 향해 뛰면서 제비를 원망한다. "젠장할 제비 녀석, 봄이랑 겨울도 구별하지 못해서 내가 뭔 고생이냐?, "오늘은 정말 인생 최악의 날이다. 아! 집에 가고 싶다..."며 우울한 얼굴로 컴컴한 동굴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매 순간 판단을 하고 행동하게 된다. 사소하게는 "어제 비가 왔으니 짬뽕 먹고 싶지? 오늘은 짬뽕 먹는 걸로 결정!", "날씨가 추우니까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통일."부터 시작해서, "지금 2030 세대는 혼밥, 혼술, 혼행하는 1인 체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하는 비율이 낮아질 테니 현재 진행하고 있는 육아 관련 사업은 이제 접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중요한 사업 프로젝트 방향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비가 왔다고 모두 짬뽕을 먹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는 이들이 내 주변에 가득하다. 하물며 '육아 사업'은 단순히 결혼 비율뿐만 아니라 '남성 육아 휴직', '유연 근무제', '공유경제' 등 다양한 방면으로 접근해 신중한 결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코칭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대화 몇 마디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고,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복잡한 상황들을 단정 지어 말하곤 한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나마 코칭을 공부하고 나서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외향적인 선입견, 대화 중 맥락 넘겨 듣기 같은 '성급한 판단'을 최소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여전히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라는 속담은 정말 놀라운 직관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커뮤니케이션 코칭 관점에서 볼 때 그리 수긍하기 어렵다.  

 판단의 주체는 철저히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선 판단을 내리 전 가장 선행되어야 할 커뮤니케이션 덕목은 ‘현명한 질문’이다. 질문 없는 판단은 방향 없는 달리기 시합과 같다. 여러분이 죽은 제비를 본 나그네라면 스스로에게 무엇을 물었을까? "봄에 나타나야 할 제비가 왜 길 한가운데 죽어있지? 다른 천적에 공격을 받은 걸까? 요 며칠 이 산에 계속 머물렀는데 제비를 본 적이 있었나? 제비는 원래 무리로 모여서 다니던데 왜 한 마리만 여기 있을까?"... 등 등 현명한 질문을 통해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스로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해선 솔직한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건강한 의심과 함께 질문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더욱 나은 판단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여러분이 진짜 누군지에 대해 더욱 분명히 알아감에 따라
처음으로 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프라 윈프리 -


나그네가 들판에서 왜 그런 험한 꼴을 당했는지 궁금한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이전 03화 #3 나그네는 태양과 바람 중 누구의 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