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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Jan 03. 2019

#6 은혜 갚은 사자

감사함을 품은 '기버(giver)'가 되자

 어제부터 오른쪽 발바닥 어딘가가 불편하다. 냇가에 비춰봐도 티가 안 나고, 발바닥을 들여다보고 싶지만 젊을 때만큼 유연하지 못해 아크로바틱 한 자세가 나오지 못한다. 왜 이렇게 발바닥이 불편할까? 곰곰이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본다. 영양 한 마리 잡으려 초원 한복판을 대차게 달렸으나 공복이라 그런지 갈비뼈에 뭐가 걸린 듯 아파서 허탕 쳤고, 참나무 아래 자고 있던 토끼 한 마리를 운 좋게 발견했지만 그날이 무슨 친선 시합으로 상호 불가침 조약이 맺어진 장소니 어쩌니 해서 그냥 입맛만 다시면서 지나갔다. 그렇게 헤매다 보니 날도 꽤 어두워지고 저 멀리 비구름까지 보였다. 소나기나 피할 겸 동굴로 들어가던 차에 동굴 안에서 후다닥 튀어나오던 새끼 산양이 제풀에 못 이겨 바위에 부딪쳐 넘어졌다. 이때다 싶어 서둘러 달려가 한 끼 식사를 해결했다. 이런 기회는 정말 쉽지 않다. 이게 그날 통틀어 처음 먹은 끼니였다.


 나이를 먹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서열 다툼에서 밀린 후 사자 무리에서 쫓겨나 혼자 생활한 지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사자에게 은퇴란 결국 죽음 외엔 특별한 선택이 없다. 간혹 건너 건너 알던 녀석들은 서커스장에 취업해 편안한 말년을 보낸다고는 들었는데 사실 여부는 글쎄다. 앞으로 5년 후엔 내 힘으로 사냥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사자 말년이 이렇게 쓸쓸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최고 포식자 위치에서만 살아봐서 그런지 이런 두려운 감정을 사전에 준비하지 못했다. 현실은 이렇게 녹록하지 않구나. 내 등장만으로도 꽁무니를 빼던 녀석들이 지금은 눈치를 힐끔힐끔 보면서 간격만 유지하고 달아나지 않는다.  심란한 마음으로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자볼까 살펴보고 있는데 땅을 디딜 때마다 오른쪽 발바닥에 이질적인 거슬림이 느껴진다. 대수롭지 않게 한숨 자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다음날 일어나니 증상이 더 심각해졌다. 이젠 앞 발바닥 주변이 부어서 벌겋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 어두웠던 그 동굴 앞에서 새끼 산양에게 뛰어가다가 무언가를 밟은 느낌이 있었는데 그게 고슴도치였나 보다. 허기엔 장사 없다고 그때는 배고픈 고통이 더 심했다. 자가 치료를 해보려 뾰족한 나뭇가지를 사용하려 했으나 여간 쉽지가 않다. 체면 불고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건만, 말도 건네기 전에 도망을 가버리니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그런데 저 멀리 여러 무리의 양 떼 소리가 들린다. 배도 고프지만 우선 발바닥 치료가 급선무다. 현 상태로는 양들이 코 앞에 있어도 쫓아가지 못할 판이다. 양 떼 소리를 따라 가보니 양치기 소년이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 소년에게 다가갔다.  멍하게 하늘을 보던 소년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역시나 겁에 질려서 그런지 손에 쥔 뿔나팔을 제대로 입에 대지도 못한 채 얼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다행이다. 지금 내 몸상태에서 저 소년이 달아나면 아마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발바닥이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서 그 소년 앞에 섰다. 어차피 사람인지라 내 말을 못 알아듣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가갔는데 갑자기 소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순간 사자 갈기가 쭈뼛해졌다. 사자인 내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다니...


 오늘도 언제나처럼 구름은 두둥실 떠내려가고, 난 초점 없는 눈으로 구름을 좇다가 문득 흐릿하게 무언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 어랏... 사… 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사자는 그림으로만 봤지 실물은 처음이다. 순간 아무런 생각도 안 나고 다리가 풀려 움직일 시도조차 못했다. 어느새 사자는 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사자는 아마 양보다 내가 더 먹음직스럽다고 결정했나 보다. 별 볼 일 없이 태어나 별 볼 일 없이 사자밥으로 생을 마감하는구나! 그런데 갑자기 혼잣말이 들린다. "에잇, 발바닥이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네. 사자 가오도 안 나오게…" 내 귀를 의심했다. 맞다. 그건 분명 사자의 목소리였다. 난 용기를 내서 사자에게 말을 걸었다. "사자님, 혹시 몸이 불편하세요?” 사자도 깜짝 놀라며 나에게 물었다. "너 내가 하는 소리가 들려?", “아! 제가 별 능력은 없어도 동물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듣자 갑자기 사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마도 사자가 웃는다면 그 표정일 것이다. “오호!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내가 이유는 모르겠는데 지난밤부터 오른쪽 발바닥 때문에 제대로 뛰지도, 걷지도 못하고 있다. 처음엔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영 거슬려서…”, "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저도 손가락에 가시 하나 박혀도 신경이 곤두서는데요. 그 마음 충분히 압니다." “흠... 알아주니 고맙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 발바닥에 무슨 문제가 있나 살펴봐 줄 수 있겠나?” 그때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이죠. 사자님, 그런데 제가 발바닥을 보다가 그 발로 저를 내려치지 않는다는 걸 제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봐 소년, 지금이라도 당장 왼발로 내려치면 그 이야기가 쏙 들어갈 걸… 허허 농담이야. 긴장하지 말게.” 소년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사자가 내민 오른쪽 앞발을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두툼한 발바닥 사이 애매한 위치에 고슴도치 가시로 추정되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뿔나팔에 있는 뿔을 사용해 가시를 건드렸다. 뽑을 때 사자의 꿈틀거림이 앞발로 자신을 내려치는 것 같아 온 몸이 움츠러들긴 했지만 무사히 가시를 제거했다.


 사자는 만족한 얼굴로, “고맙네, 소년, 내가 이 은혜 잊지 않을게. 내가 뭘 해주면 좋겠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교육 좀 시켜줄까? 늑대한테 앞으로 양 괴롭히지 말라고 겁이라도 줄까?”, "괜찮습니다. 그냥 사자님한테 살아난 것 만해도 영광입니다.", “근데 나름 명색이 사자인 내가 나타났는데 마을 사람들은 왜 달려오지도 않나? 이거 은근히 사자 자존심 상하네.", "그럼 난 가보겠네. 자네 오른쪽 눈 밑에 상처 기억하겠네. 사자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네. 반드시 기회가 되면 내가 꼭 이 은혜 갚겠네."라고 말한 후, 한결 가벼워졌는지 껑충껑충 뛰어갔다. 사자가 시야 밖으로 사라지자 소년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면 또 거짓말한다고,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고 한 마디씩 할 거야…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동네 심마니 할아버지다. 멀리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봤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동네에 내려가 이 소식을 전했고, 난 마을의 영웅이 되었다. 그 덕분에 양치기 신분에서 수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양치기 소년'에서 '수의사 청년'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한편, 아테네는 폴리스 정치 체제에 분열이 생기면서 페이시스트라토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 정치 체제의 일종인 '참주정'을 수립하고 본인이 스스로 참주가 되었다. 강력한 독재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사자 사냥에 나섰고, 이때 많은 사자들이 죽거나 포획되었다. 포획된 사자들은 로마 콜로세움에서 이뤄진 처형 도구와 같이 사용되어 '참주 정치'에 반대하는 시민을 비롯해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시민들까지도 모두 사자밥이 되고 있었다.


 그 날 역시 처형이 있던 날이었다. 광장에 모든 시민이 모여 처형을 구경했다. 반역죄부터 시시콜콜한 죄로 엮인 죄인들이 한껏 허기진 사자 3마리에게 던져졌다. 사자들이 죄인들에게 달려드는 순간 가장 노쇠해 보이는 사자 한 마리가 다른 사자들에게 소리쳤다. "다른 사람은 해쳐도 되지만 저기 오른쪽 눈 밑에 상처가 난 사람은 내 몫이니 건드리지 말아 주게." 사자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살육의 시간이 지나간 후 잔인한 현장을 확인한 참주와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갈기도 듬성듬성 빠져 노쇠해 보이는 사자 한 마리가 한 청년을 지키고 서있는 게 아닌가! 청년은 사자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인사를 나누었다. 낯선 풍경에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시민들은 무자비한 공포 정치로 참주에 대한 불만이 날로 쌓여가고 있던 중이었다. 참주는 그 청년에게 물었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보거라. 넌 무슨 죄로 여기까지 온 것이냐?" 그 청년은 비틀거리며 참주 앞으로 가서 말했다. "저는 아테네에서 제법 떨어진 산동네에서 수의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저희 동네에 사자 사냥을 하러 병사들이 왔다가 사자에게 물려 치료가 필요했는데 하필 동네 의원님이 옆 마을로 왕진을 가신 바람에 제가 불가피하게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가 결국 과다출혈로 죽어서 의사가 아닌 수의사가 치료를 했다는 죄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허허... 그건 그렇고 어떻게 저 사자 무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냐?", "못 믿으시겠지만, 저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지금 저를 살려준 사자는 몇 년 전 제가 도움을 준 사자입니다. 그래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저 사자 입 속에 제 머리를 넣었다 빼보겠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자 입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참주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놀랍도다. 자네에게 좋은 제안을 하나 하겠네. 조만간 '아테네 시립 서커스단'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자네가 서커스 단장을 맡아주게. 여기 사자들과 몇몇 동물들을 훈련시켜서 앞으로 아테네 시민들을 위해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줬으면 좋겠네."


 청년은 참주의 어두운 속셈을 눈치챘지만,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더 이상 사자밥이 되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또한 이것으로 노쇠한 사자의 은퇴를 연장해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어린 시절 관심받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던 그 양치기 소년이 이제 이타적인 마음으로 자신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이제 진정으로 같은 양치기 출신 '다윗'과 비견할만한 영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담 그랜트는 '기브 앤 테이크(Give&Take)'라는 저서에서 사람을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기버(Giver)'와 '테이커(Taker)', 그리고 '매쳐(Matcher)'로 구분했다. 이 셋 중 어떤 유형이 기업에서 가장 높은 자리(혹은 성공)에 오르는지 조사해봤더니 '기버(Giver)'였다고 말한다. 테이커(Taker)와 매쳐(Matcher)는 이익을 주고받기 위해 관계를 형성하지만, 기버(Giver)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돕기를 힘쓴다. 물론, 기버(Giver)가 맹목적으로 이타적인 이들은 아니다. 자신의 이익만큼 상대방의 이익을 생각해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윈-윈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책에선 말한다. 굳이 끼어 넣자면 '은혜 갚은 사자'와 '양치기 소년'은 '매쳐' 관계였으나, 최종적으로 '양치기 소년'은 이타적인 '기버(Giver)'가 되어 시민들과 동물들을 구했다.


 그렇다면, 결국 '기버(Giver)'가 성공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솔직히 말이 쉽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보자. 여러분은 기꺼이 여러분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받는 것 없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인가? 당장 나만 보더라도 무언가를 주게 될 때, 순수한 마음보다는 '주고받음(Give&Take)'을 나도 모르게 계산하게 된다. 또한, '주는(give)' 행위 역시 최종적으로 '이익'이나 '성공'을 염두에 둔다면,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은 쉽게 퇴색될 수도 있다.(안타깝게도 실제로 그러한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결국,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나는 '감사(Thank)'라고 생각한다.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 먼저 감사한 마음이 채워져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존재/환경/시간에 대한 온전한 감사함이 가득할 때, 우리는 기꺼이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이미 받은 것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내 안에 받은 것이 없다면 줄 것도 없다.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 감사는 우리 생활 곳곳에 널려 있다. 사소하게는 늦은 밤 아파트 주차를 위해 헤매다 하나 비워있는 주차 공간을 발견했을 때, 10km 단축 마라톤 도착선을 통과할 때, 3시간 동안 작성한 문서가 날아갔는 줄 알았는데 자동 백업되었을 때, 아파트 현관으로 뛰어들어오는 순간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질 때, 잠결에 딸이 내 머리를 감싸 안으며 '아빠'라고 불러줄 때 등 등...     


 또한, 감사는 상대적이지 않고 비교우위에 있지도 않다. 저 사람은 아픈데 나는 건강해서, 저 사람은 가난한데 나는 풍족해서, 저 사람은 못생겼는데 나는 잘생겼기 때문에 감사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마라톤을 달릴 수 있는 체력이 있어서, 지금 이 순간 친구(또는 연인/가족)와 즐겁게 외식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서, 샤워하고 비친 내 얼굴이 그저 마음에 들어서 감사할 뿐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를 돌이켜볼 때 감사할 일 3가지를 떠올려 보자. 어떠한 사람에게서/특정한 상황이나 장소에서/기억될만한 시간 속에서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이렇게 감사함의 '게이지'가 마음속에 가득해질 때 우리는 진정한 '기버(Giver)'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은 그다음 차례다.


당신이 행한 봉사에는 말을 아껴라.
하지만 당신이 받았던 호의들에 관해서는 이야기해라.
- 세네카(고대 로마 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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